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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낙타

[진란]바람이 꽃잠을 자고 간 사이 외

by 진 란 2015. 12. 15.

 

바람이 꽃잠을 자고 간 사이

 

진란

 

 

 

몽개몽개 눈부신 꽃구름 겹쳐 입고요

물비늘 흔들리는 강물의 서쪽, 

매향의 허리춤에 숫바람 뜨거운

눈길 쏠리던 참이에요, 꽃불이 났는가 봐요

섬진강 은빛 모래에 새긴 이름 그립다

부르고, 부르다가

노곤한 햇살에 몸을 기대 졸고 있던

숫바람의 입술에도 물집이 잡혔다는 데요

그녀도 알았을까요 꽃잠을 자고 있는 바람의 바람을요

방심할 그 때, 간지랑간지랑 까불 때에요

꽃귀를 열고 가뿐 숨 몰아 쉬며 달려오던 길

꿈길인지

꽃길인지

칠십 리 나목들의 기다림도 지쳐 가는데

정작 뜨라는 눈은 뜨지 못하고

몇몇 그루만 화개, 화개 눈을 열었어요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으면 몇 몇만 눈을 한꺼번에 피웠을까요

십 리, 백 리, 천리길 강물로만 흐르던 봄빛도

잔뜩 야윈 모습으로

파닥이는 은어 떼의 비늘에 얹혔는데요

봄길의 끝, 따스한 그녀의 귀향이 아름다워요

바람이 꽃잠을 자고 간 자리, 뜨겁게 뜨겁게

볏을 세운 벚꽃들이 등을 켜는 날이었어요

 

 

 

 

 

 

 

 

 

 

귀신고래를 만나다

-반구대 암벽화

 

 

1

 

  옛고을의 무너진 담에서 메마른 푸나무들이 맨몸 부딪히는 호수에 갔네 백동의 갈라터진 등짝, 낮게 가라앉은 옛마을로 내려가는 구부정한 길이었어, 살금 발만 디뎌도 놀라 튀어 오르던 검은 점 청개구리는 청동의 전설, 살아 있는 화석이었다지 어머니의 둥근 배에서는 산새들이 깨어나고, 마침내 솟아오른 해돋이 때 보았지 간밤에 물소리 뒤채던 소란은 한실, 깊은 가슴에 귀신고래 떼가 자갈 굴리는 소리였던 거야 하얀 뼈와 투명한 등을 드러낸 눈부신 어족들이 헤엄치던 밤, 부서지던 별똥별 빛 속에 보았는지원시의 야성이 몽돌처럼 굴러다니던 그 밤, 바위 속으로 헤엄쳐간 석어의 몸에서는 푸른 물이 뚝뚝 돋고 있었지

 

 

2

 

눈썹달 맑은 접시 위로

헤엄치던 흰그림자는

인어였나

귀신이었나

팽팽하게

생생하게

역동하는 몸짓으로

물비늘 떨치며 일어서던 것

한실의 솟대가 되어

 

 

-2013년 미래문학 여름호   

 

 

*10여년 전에 쓴 시를 골라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