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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평·책속의한줄

조재영시인님의 메일

by 진 란 2011. 10. 23.

진란 님, 시집 잘 받았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웠던 9월과 10월 사이에 받은 진란 님의 시집은 하나의 각성과도 같이 메마른 가을을 적셔 주었습니다. 잠시 정열의 숲에서 벗어나 속세에 있다 보니 꿈결 같은 한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진란 님은 참 욕심이 많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욕심이 아니고 시에 대한 욕심입니다. '성형미인이 대세'인 이 시대에 온전히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려고 하시는 열정 때문인지 자연산 시집을 오래 읽었습니다. 

 

 근래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분들의 시집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무슨 느낌인지 알 수도 없는 고결한 정신 세계를 담아 구름 한 조각들이 흘러간 듯 하였습니다. 시가 독자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이 허언은 아니었습니다.

 

 진란님의 시집 중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2,3부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집중하고 정성을 들인 1부도 좋았지만 살짝 긴장을 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부분들이 마음에 더 남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을, 누가 지나갔다>, < Kiss>, <사랑법>, <그리운 귀>, <성형미인이 대세> 등을 외람되게도 시 제목에 붉은색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습니다.

 

 <가을, 누가 지나갔다>에서는 마치 프로스트의 시가 그러한 것처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개인이 느낀 그 어떤 느낌을 전달받았습니다. 말하여 질 수 없는 그 어떤 교감은 한참을 읽으면서 문자가 아니라 영감과 같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Kiss>도 잘 읽었습니다. 말하는 시라서 그런지 무겁지 않게 읽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연을 산문형으로 처리를 해 보았더라면 1연의 빠른 속도를 좀 줄일 수 있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사랑법>, <그리운 귀>, <성형미인이 대세>는 시창작에 관한 시이고, 시인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랑법>을 읽으면서는 잠시 가슴이 아려왔고, <그리운 귀>, <성형미인이 대세>에서는 공감의 끄덕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형미인이 대세>에서는 흐름을 타고 비슷비슷한 얼굴과 목소리를 내는 시류에 대한 일침이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시집을 두고 읽으면서 몇 개의 밑줄을 더 그어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저는 전형적인 슬로우스타터형이라서 아직 한참을 출발지점을 맴돌고 있습니다. 진란 님의 시집은 아침 일찍 숲에서 지저귀는 그 참새떼처럼 창문 하나를 열게 만드는 느낌입니다.

 

 

2011. 10월. 깊어가는 가을에

진란 님의 시집을 받고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띄웁니다.

-조재영-

 

 

 

 

 

 

 

답신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아주 오래전에 습작시절을 푸른노트에서 재미를 붙이면서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신춘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지요.그러면서 뼈대를 키웠는지... 아마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동인활동을 하면서 바람밭에 맨발로 서서 세상과 맞서기도 했고요.

 

우연하게 시집을 8월의 그 염천에 준비하면서 꼭 생각나는 분 두 분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조재영시인님이시고, 또 한 분은 돌아가신 대구의 고 김양헌선생님이셨습니다. 세상의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시고 중심을 잘 잡고 계셨던 선생님이라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김양헌선생님께 시집을 내게 되면 시해설을 해달라고 청탁을 드렸었는데, 내가 더 이상 아프지만 않으면, ... 그러시고 얼마 되지 않아 먼저 하늘로 가셨습니다. 치우지지 않고 올곧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른이시라는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참 그립고 그랬습니다.

 

시집을 읽으시고 답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쉬운 언어로 내 말을 썼지만 결코 쉬운 말들을 한게 아닌데...

천여편 중에서 고르다보니 첫시집이라고 편안하게 읽히는 시편을 엮다보니

세상에 시집을 내놓고 두근거렸습니다. 기쁨보다는 염려스러움이었지요.

이제 묵은 것들을 덜어냈으니 앞으로 어떤 시를 쓸 것인가 하는 것도

제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주저없이 수없이 발표했던 시편도 다 묻어버렸습니다. 언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 때에는 세상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제가 너무 기뻐서 말이 길어집니다.

세상을 널리 멀리 깊게 바라볼 수 있는 푸른노트와 신춘문예가 있어서

참 든든했습니다. 비록 큰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든든한 배경을 가진 것처럼

즐거운 곳이었고, 늘 편안한 어투로 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주신 조재영시인님께서 그런 자료를 모아둔 곳이 있어서 행복했지요.

 

제가 시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참 고민스럽고 많이 상처도 받았고

그것을 이겨내고 내 말을 쓰려고 애를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메일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어떤 시를 쓰든 시인을 이해하고 배려하시는 그 모습, 그 미소,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염화시중의 미소가 아닐까 가끔 생각했었지요.비록 저는 불자는 아니지만요.

감사합니다.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깊어지는 가을, 이제 곧 겨울을 또 준비하겠지요

저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숲으로 들어가겠지만

제가 어떤 시를 쓸지 기다려집니다.실망시키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평안하십시오

 

서울에서 진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