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기다리며/진란
그리움이란 막연한 것들의 이름이다
어떤 존재가 그 가치를 찾아내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지
숨 쉴 틈 없이 바쁜 중에도
그리운 모습, 그 표정은 중독처럼 살아나고
길을 찾는 일은 새롭게 길을 여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렵더군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은
두려움 없는 발걸음이야 그러니
그 걸음을 슬픔이라 부르지 말아다오
누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길 위에 서 있다는 그것이 좋은 것이지
이미 슬픔이라든가 우울이라든가
네 몸 안 어딘가 숨어있다 불쑥 튀어나와
잠깐의 간지름을 태우기도 하듯이
한없이 가라앉는 늪같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깃털같이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하면서도 자주
지배당하는 것
너는 이미 가고 있는 것이다
붉은 까치밥처럼, 툭
저녁의 시/진란
꽃을 많이 보고 들어온 날
발바닥과 무릎과 종아리, 목과 등과 팔뚝이 쑤시고 아파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귀인을 만난 날이라
심장까지 저미지 않는다
사람을 많이 보고 들어온 날
쓸 말은 하나도 없이 쓸모없이 주절거려 쓸쓸하다
사람꽃은 스치는 바람결같이도 상처를 남긴다
말 없이도 웃고 속 없이도 실컷 웃고
입술 끝이 귀에 걸리게 웃고 들어온 날
내 뒤를 따라 들어와 끝내 울게 하는 것은
사람꽃 함께 있던 바로 나, 내 그림자들이다
행여 지나치는 말로 과하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직설화법으로 말 한다며
깊이 박히는 비수를 꽂지 않았을까
내가 받은 비수들을 뽑아내면서 어쩐지 나는
다음 생에는 꽃으로 태어나졌으면 싶은 것이다
꽃을 본다는 일
사람꽃을 본다는 일
꽃과 꽃 사이에서 질서를 지킨다는 일
말하자면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지 않고
잘 지켜주면서도 서로 행복해지는 일
시퍼런 갈기를 휘날리면서 달려오는 무법자같은 말
향방없이 달려왔다가 달려갔다가
봄햇살처럼 뜨겁기도 하다
네가 나를 무시하면 그래 나도 너를 무시하면 된다
혼자 노는 숲의 독백의 깊어지는 시간
꽃과 사람꽃 숲의 길 잃지 않도록 귀 열어두는 일
홀로 피어나고 홀로 나부끼고 홀로 버티는 일
바람은 내 안 중심부터 소소하게 흔들리더니
꽃바람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회오리바람으로 몰아치기도 하고
내 귀가 바람의 중심이었다는, 그런 저녁이다
'혼자노는 숲/진란'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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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시인을 느꼈을때도 그랬었지만
종이 책 속에 씌여진 시로 그 분을 읽다보니
언젠가,
꼭 한 번,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눈 인사 나누며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언젠가가 실현되어 질지
바람으로만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던 글들이었다.
늘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도
절대 무거움을 느끼지 않으신다는 그 분
사진도 좋지만
시 역시 깊이가 느껴지는 게
읽고 또 읽어도 좋았다.
큰 욕심 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분 같이 느껴졌달까?
그래서 그 분의 공간이 '혼자노는 숲'이었나 보다.
나무와 꽃,
그리고 사유와 함께하는 그 분의 공간처럼
혼자노는 숲의 향기는 은은한 게 고즈넉했다.
아무나 침범하지 못할 것 같은 숲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그 숲엔 사람꽃보다 그냥 꽃. 그냥 나무들이 그득해야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구경만 하고 나오게 되는 온라인의 '혼자노는 숲'과
책꽂이에 꽂이게 될 종이책 '혼자노는 숲' 사이서
한동안 아름다운 사유를 즐기게 될 것 같다.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며....'참.산토끼똥과 성형미인이 대세도 참 좋았답니다')
한동안은 이런 놀이에서 멈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사람인지라 저에 대한 관심과 시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 비켜가지 못하네요.
한동안 이런 어설픈 짓을 해량해주시고 이해해 주십시오.
이제 시집에 내놓은 시들을 시집 보냈으니 잊어야 하는데 아직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네요.
따오기님, 함께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살아온 흔적에 대해서 위안을 받는 기분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시는 따오기님의 감상이기에 더욱 고무적이 됩니다.
성숙한 좋은 시를 쓸 수 있기를, 원숙한 시를 낳을 수 있기를 이 가을에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따오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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