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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평·책속의한줄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진 란

by 진 란 2011. 10. 15.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진 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구름도, 바람도, 햇살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꽃도, 나무도, 별도 달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미움도, 원망도, 회한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사랑도, 미련도, 눈물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첫봄처럼 개나리봇짐을 메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타오르는 꽃불을 들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사람을 사랑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문을 통하여

손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네, 사람 사는 세상이네


- 월간 <스토리문학> 2009년 7월호 -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승을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묘소가 있는 고향마을 정토원에서 불교식의 100재를 지내며 추모한 것 말고는 달리 행사를 가진 것은 없다. 물론 주요 언론에서도 이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국민들의 뇌리에서도 그의 죽음은 빠르게 잊혀져가고 있다. 다른 이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49재가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라면, 100재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고인의 살아생전 업적을 기리는 뜻으로 올리는 의식이다.

 

 누가 맨 나중까지 슬퍼하고 그를 기억할 것인가. 시간은 어떤 비통도 완화시키기 마련이라 그 뜨거웠던 추모 열기에 비하면 불과 백일이 지난 지금 그를 기리는 정 또한 엷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산자는 산자의 삶이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장례식 모드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이제 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들의 고통은 어디에 있으며, 그 해법을 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무엇을 할지를 고민할 때다.

 

 그 분이 남긴 유지 가운데 받들어 실천할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 실현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다.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새겨진 너럭바위 형태의 비석 앞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쓰진 강판이 덮여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하나로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글씨로 새긴 것이다. 이 ‘깨어있는 시민의식’은 역시 뒤이어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과 일맥상통한다.

 

 이 두 전직 대통령의 유지는 민주당이 등원을 결정하면서 내건 슬로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처럼 집권욕구에만 초점이 맞춰진 극한갈등으로는 민심을 얻기 어렵고,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 대결주의 일변도로는 미래도 없을 것이다. 아울러 가신 분들을 열렬히 흠모하고 추종하는 세력 역시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가면서 원칙이 승리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할 일이다. 능동적 참여 못지않게 도덕적 성숙이 관건이다. 성찰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도도 개도 아닌 것이다. 그들의 추모 사이트에 난무하는 상대에 대한 천박한 댓글 공격으로는 결코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없으며 그 분들의 유지는 더욱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는 부엉이바위 벼랑 끝에서 남겼다는 마지막 말, 그의 이타가 엿보이는 이 말을 화두로 삼아 담담히 그를 추모하고 슬퍼하면서도   ‘손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네, 사람 사는 세상이네’라고 마무리 짓는 성숙한 시선은 그분이 시민을 향해 주문한 ‘관용의 정신과 타협을 아는 사람들의 연대’를 고스란히 반영하였다. ‘투쟁 없는 역사도 없지만 관용과 배려가 없는 역사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절제를 강조한 대목은 지금 다시 새겨들어야할 바보 노무현의 귀한 말씀이다.

 

 

ACT4

시인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