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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하늘을 나는 물고기 '꼬리박각시나방'

by 진 란 2005. 11. 6.
하늘을 나는 물고기 '꼬리박각시나방'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최병성 목사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도로가 화분 속에 생소한 이름의 외래종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이처럼 외래종 꽃들이 점령한 이유는 우리의 토종 야생화들이 꽃이 피는 시기가 짧고 도시 적응력도 약한 데 반해, 외래종들은 키우기 쉽고 잘 죽지도 않으며 한번 심어 놓으면 오래도록 꽃을 피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곱던 단풍도 다 끝나가는 계절은 벌써 겨울맞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숲 속에서도 간혹 한두 송이씩 철 늦은 쑥부쟁이와 구절초 등이 얼굴을 내밀 뿐 이젠 꽃향기를 맡기가 힘듭니다. 모두가 길고 긴 겨울의 쉼을 청하는 이때, 아직도 어느 도로가 화분 속에서 페튜니아의 일종인 사피니아의 싱싱한 미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녀석들도 좀 더 추워지면 별 재간이 없겠지만 아직은 견딜만했나 봅니다.

철 늦도록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는 사피니아 꽃을 찾아 온 손님도 눈에 띄었습니다. 날랜 비행 솜씨를 자랑하는 꼬리박각시나방입니다. 숲 속에서도 어쩌다 볼 수 있는 녀석을, 이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다니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
날씬하게 빠진 유선형 몸매와 뛰어난 비행솜씨로 인해 마치 하늘을 나는 물고기처럼 여겨지는 '꼬리박각시나방'.

날씬하게 빠진 유선형 몸매와 뛰어난 비행솜씨로 인해 마치 하늘을 나는 물고기처럼 여겨지는 '꼬리박각시나방'.

 

'물만 먹고 가지요..'

'옹달샘' 동요처럼 '달콤한 꽃물만 먹고 가는' 듯한 꼬리박각시나방.

 

하늘에 매달린 '대롱'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듯한 꼬리박각시나방이 비행하면서 '대롱'만 뻗고 있다.

 

후진도 하고..

뛰어난 비행사 꼬리박각시나방은 후진에도 능숙하다.

 

장애물도 거뜬히 통과

꽃 사이를 장애물 통과하듯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꼬리박각시나방.

 

발은 '살짝'
꼬리박각시나방이 꽃잎에 발을 디딘 것은 이 때, 단 한 번 뿐이었다.

하긴 꼬리박각시나방이 이 도시로 찾아온 이유가 있었습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그 어디에도 꽃이 없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차들이 매연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씽씽 달리는 도심 한복판으로 날아 온 것입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먹을 것이 있다면 어딘들 못가겠습니까. 그저 허기진 배를 달래줄 꽃이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겠지요.

이 꽃 저 꽃을 오가며 꿀을 먹는 꼬리박각시나방의 비행솜씨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빠른 고속 주행은 말할 것도 없고, 네 개의 날개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마치 헬리콥터처럼 정지 비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후진도 가능한 최고의 비행 실력을 갖춘 녀석입니다. 아마 주위에서 이 녀석처럼 뛰어난 비행실력을 갖춘 어떤 새나 곤충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새도 아닌 주제(?)에 저토록 놀라운 비행 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저도 오래전 이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때 책에서 보던 벌새가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혐오스러워하는 나방이었습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나비’하면 귀엽고 예뻐하지만 ‘나방’이라하면 좀 꺼림칙해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꼬리박각시나방의 날렵한 몸매와 놀라운 비행 솜씨는 저에게 감탄사만 연발하게 했습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그토록 놀라운 비행 실력을 지닌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물 속을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오가는 물고기처럼 유선형으로 생긴 늘씬한 몸매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날개 때문입니다. 이 녀석의 몸매는 정말 특이합니다. 만약에 날개를 떼 놓고 바라본다면 영락없는 물고기라 할 것입니다. 유선형으로 생긴 모양뿐 아니라 번쩍이는 눈도 영판 물고기의 두 눈과 똑 닮아있습니다. 또 꼬리모양도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녀석을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늘을 날고 있는 물고기라 착각을 일으키곤 합니다.

나비가 자신의 몸에 비해 커다란 날개로 가볍게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것과 달리 꼬리박각시나방은 나비처럼 크지 않은 날개를 가졌기에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과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속 비행과 정지 비행 그리고 후진까지, 그야말로 멋들어진 비행 솜씨를 자랑하는 것이지요. 꽃 위에 잠깐 머뭇거리는가 싶다 생각하면, 어느 사이 눈앞에서 자취를 감춰버리곤 한답니다.

이 녀석은 꽃에 앉아 꿀을 먹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뛰어난 비행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일까요? 얼마나 빨리 날개를 움직이는지 날개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빠른 날갯짓으로 정지 상태에서 기다란 대롱을 꽃에 주~욱 밀어 넣어 꿀을 한 모금 빨아먹고는 이내 다시 다른 꽃으로 날아가 그곳에서도 꿀 한 모금 얻어먹습니다. 바쁘게 길 가는 나그네가 마루턱에 앉을 사이 없이 그저 물 한 모금 얻어먹고 숨 가삐 제 갈길 가는 것처럼, 뭐가 그리도 바쁜지 꼬리박각시나방은 꽃잎 위에 앉지도 않고 쉴 새 없이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닙니다.

나비와 나방의 구분할 때 우리는 대개 더듬이와 활동 시간을 봅니다. 나비의 더듬이가 가늘고 나방의 더듬이는 빗살모양입니다. 나비는 낮에 활동하고 나방은 밤에 활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낮에 저렇게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꼬리박각시나방은 우리에게 자연엔 항상 모든 것이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자연의 법칙이란 절대가 아니라 대개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좁은 견해와 잣대를 가지고 자연을 바라보려한다면 자연의 신비를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늘 하나의 안경과 한 가지 잣대가 아니라, 열린 마음과 열린 눈으로 자연을 바라본다면 생명의 신비로움을 오롯이 누릴 수 있게 될 것만 같습니다.

'서강 지킴이' 최병성 목사는 강원도 영월군의 서강 가의 외딴집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영월 동강과 짝을 이룬 천혜의 비경인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하자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청소년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글과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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