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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스크랩] [스크랩] 회색의 보도와 레몬빛 가스등

by 진 란 2005. 2. 23.

         전혜린소개  

 

  •  1934년 1윌 1일 평안남도 순천 출생.
  •  1953년 경기여중고등학교 졸업.
  •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 재학중 독일 유학.
  •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 졸업.
  •  뮌헨대학 에카르트 교수 조교.
  •  경기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역임.
  •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  펜클럽 한국본부 번역분과위원.
  •  1965년 1월 11일 31세로 요절

 

 

 주요번역작품

  • F. 사강의 <어떤 미소>(1956)
  • E.슈나벨의 <한 소녀의 걸어간 길>(1958)
  •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1959)
  • E. 캐스트너의 <화비안>(1960)
  • 구드리치, 하케드 공저의 <안테 프랑크의 일기>(1960)(같은해 4월에 {신협}에서 공연)
  • L.린저의 <생의 한가운데>(1961)
  • W.게스턴의 <에밀리에>(1963)
  • H.막시모후의 <그래도 인간은 산다>(1964)
  • H.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4)
  • H.노바크의 <태양병>(1965)

 

 

작품집

  •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유 작 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색의 보도와 레몬빛 가스등

 



내가 독일의 땅을 처음 밟은 것은 가을도 깊은 시월이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물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척척했다.
스카프를 쓴 여인들과 가죽 외추의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도 없는 비행장 뮈헨 교외림에 내렸을 때 나는 울고 싶게 막막했고 무엇보다도 춥고 어두운 날씨에 마음이 눌려 버렸었다.


뮌헨하면 그 이후 내머리에는 회색과 안개로 가득 차게 된것도 그의 독특한 나쁜 날씨보다도 내가 에어 프랑스에서 내렸던 그 날 오후의 첫 인상과 나의 걷잡을 수 없었던 외로움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트렁크를 들고 비행장행 버스에 올라 운전수에게 돈을 다 내 보이고 그 중에서 일 마르크만 가져가게 한 일, 힘없이 혼자서 하숙을 찾아갔던 일 -
나는 정말로 내가 파리에 있는 말테나 된 듯한 서글픈 마음이었다.
우선 고국에서부터 연락해 놓았던 [아스타라]는 학교 사무국에 가서 벽에 붙은 벽보를 찾아야 했다.
[빈방 있음]의 광고를 보기 위해서였다.
모두 값이 비싸다. (내 생각보다)또 학교에서 멀었다.
그리고 뮌헨은 나에게 마치 라비린트 그 자체처럼 보였었고 학교에서 오 분 이상 더 가는 곳에 가서 살 자신은 나에게 없었다.


그 중에서 나는 겨우[빈방있음, 전기있음,학교에서 도보로 오분,월세 오십 마르크]라는 꼬불꼬불한 연필글씨로 쓰인 광고용지를 찾아냈다.
그 집은 정말로 학교에서 오 분쯤 가면 있는 영국공원이라는 광대한 공원에 임해 있었다.
공원의 호수 바로 뒤에 서 있는 끔찍하게도 낡은 잿빛 사 층 건물이었다.
첫 인상이 포우(Poe)의 어셔어(Usher)家를 연상시켰고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수가 어디 있으랴?
다른 빈 방들은 대개가 [미국인에게 한함]이거나 또는 엄청나게 비쌌던 것을....
........................



가을은 깊어만 갔다
강의가 끝나면 나는 학우들(오스트리아 여학생이나 프랑스 학생)과 같이 근처의 다방에 가서 크림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때우는 방법도 배웠다.
주립 도서관도 자기집 내부처럼 환히 알게 되고 뮨헨 시내의 고서점(古書店)이란 고서점은 다 환히 알게 되었다.
헌 책방 주인과도 친해지고 이 미륵시 얘기도 듣게 되었다.
학교 정문앞에서 파는 군밤 장사의 군밤을 오십 페니히쯤 사서 교실에서 먹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마음은 몹씨 허전했다.
고국에까지 뛰거나 걸어서 갈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무서운 심연을 내 마음 속에 열어놓을 줄은 나도 몰랐었다.

짙은 안개를 들이마시면서 나는 새파란 하늘을 그리워했다.
감나무나 대추나무를 꿈에 그렸다.
사실로 내가 그리워한 것은 황색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감상이나 미학적인 어떤 음탄(吟嘆)이 아니었다.
그것은 색이 있는 민족의 환영-그들의 비극이 내 속에 담겨져 있고 그들의 대표자로 내가 여기에서 간주되고 있는 그러한 절실한 비젼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였다고 해도 좋다. 강으실 내에 교구의 방언과 노령에 의한 불명료에 그리고 [생활 필수품점]속에 진열돼 있는 셀로판지에 담긴 이태리 쌀에..어디서나 그 비젼(Vision)은 나를 따랐다.
뮨헨 대학에서 내 하숙에 이르는 레오폴드 통(通)은 거대한 꼿꼿하게 높기만한 포플러 가로수로 줄지어져 있었다.
그 길이 온갖 빛의 낙엽으로 두껍게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 가을이 가장 아름다웠다.
그 거리에는 작은 어항같이 생긴 [유리 동물원]이 있었다.
유리로 기막히게 정교하게 만든 온작 작은 짐승들, 도자기, 발레리나들....안델센 동화 속의 나라 같았다. 나는 매일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오 분 이상이나 진열장을 들여다 보곤 했었다. 갖고 싶고 애무하고 싶은 동물들이었다.
그 가게 뒤에 쓰러져 가는 [노아 노아]라는 집이 있었다 . 거기는 다다이스트의 집합소로서늘 해괴하고도 기상천외인 그림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화가들이 수염을 늘어뜨리고 떠들며 談論(담론)하는 사롱이기도 한 것 같았다. 때로는 에리카 만의 낭독회도 열리는 모양이었다. 그 무렵에 나는 제에로오제보다 더 싼 음식점을 발견했다.
서서 먹는 집이었다. 흰 소세지를 불에 구워서 겨자를 발라서먹는 소세지 집이었다.
거기에다 신 오이 한 개와 리모나아데 한 컴을 먹어도일 마르크가 안되닌 싸기도 하려니와 냄새만으로도 이끌려 들어가게 맛이 있었다.
먹는 것은 간단히 빨리....그리고 나는 걸어다녔다. 학교에서 내방까지 사이의 골목, 골목, 그리고 영국공원 속...이러한 곳이 내 산보지였다.



어떤 날 나는 백조가 마지막으로 떠 있는 것을 저녁 늦도록 지켜본 일이 있다. 어둑어둑한 박명(薄明)속을 흰 덩어리가 여기 저기 모여 있었고 때때로 바스락 소리를 냈다. 몹시 외로워 보였다.
나 자신의 심경이 그대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 속을 뒤흔들린 편지를 매장한 곳도 이 호수였고 내 꿈과 동경(몇년이나 길게 지속되었던)을 던져 넣어버린 곳도 이 호수 속이었다.
이 호숫가의 가스 등 밑에서 나는 안개에 감싸이는 쾌감과 머리를 적시는 눈에 안보이는 비를 맛보았다.
그리고 추위에 떨면서 귀로에 서곤 했었다.
도자기 난로 속에서 석탄이 붉게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쓸쓸하지 않았다.
불이 타오느는 소리, 그리고 붉은 불의 혓바닥...
이러한 것과 함께 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불길을 보면서 언제나 어떤 시의 구절을 생각했다.




휴식과 포도주에 넘친 어둠,

슬픈 기타소리가 흐른다.

그리고 방안의 부드러운 등불로

꿈속처럼 너는 돌아간다.




공기에서는 서리와 안개와 낙엽 냄새가 섞여져 났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공원에 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십일월 중순--
아직 한국에서는 가을이지만 여기서는 눈이 큰송이로 내렸다.
눈이 내리는 소리, 그리고 난로의 석탄이 타오르는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눈이 와도 무섭게 왔다. 세워둔 자동차가 폭 파묻혀 안 보이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는 한국서 가져온 낡은 천으로 된 학생용 검은 오우버를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학교에 다녔다.
점심은 커피 대신 그록크(펄펄 끓인 포도주)와 수우프로 했다.
그래도 추웠다.
때로는 눈이 멎고 다시 영원한 뮌헨의 하늘빛인 회색 구름장이 덮이거나 안개비가 촉촉히 내렸다.
나는 두터운 색양말을 신고 두꺼운 머리수건을 쓰고 다시 공원으로 갔다.
사람이라고는 없고 나무가지가 앙상한 해골을 노정시키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검은 나무 가장이들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변함없는 회색일까? 하고....
아는 얼굴이나 목소리가 하나만 있어도 이 하늘이 이렇게까지 우울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한 물음 [당신은 어디서부터 왔는가?(Woher sind Sie?)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황색 비젼을 나는 쫓고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우울한 회색과 안개비와 백일몽의 연속이었다.
악몽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고 정망적인 [고국까지의 거리감])Pathos der Distanz)에 나는 앓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뮌헨의 가을하면 내가 처음 도착한 해의 가을이 생각나고 그 때의 심연 속을 헤매던 느낌과 모든 것이 회색이던 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무것에도 자신이 없었고 막막했고 완전히 고독했던 내가 겪은 뮌헨의 첫가을이 그런데도 가끔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웬일일까? 뮌헨이 그 때의 나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개비와 유럽적 가스 등과 함께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때의 나의 젊은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나의 다시없이 절실했던 고독인지도 모른다.   1953년 11.

회색빛 보도와 레몬빛 가스등|뮌헨의 몽마르트|목마른 계절|봄에 생각한다|집시처럼  

 

 
가져온 곳 : [反詩]   글쓴이 : 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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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그녀를 보고싶다.아니 그녀의 우울을 알고 싶었다.나에게 늘 매력으로 다가왔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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