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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낙타

[진란]자작나무 숲에서 뭉크를 생각하다

by 진 란 2015. 12. 15.

 

자작나무 숲에서 뭉크를 생각하다


진란

 

 

 

 

     난 더이상 젊지 않아져서 지고 말 것에게 내기를 걸지 못한다 사랑은 기다린 만큼 보상하지 않으며 사랑한 만큼 애절한 것도 아니라고 알아버렸으니 다만, 아직은 뜨거운 심장이 간혹 헛열에 달떠서 밤하늘에 둥둥 떠있는 걸 본다, 간밤에도 니가 기침하는 걸 봤다. 일어나고 눕는 일이 생생하지 않아 어제도 오늘도, 내일 아침에 눈을 뜨게 된다면 그건 살아있는 몸의 고단한 일상일 뿐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울컥 일어나는 마른 울음

 

     꽃봄 지나고, 붉은여름 지나고 만산홍엽의 가을, 꽃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붉은 여우의 꼬리만은 아니었으리 바위에 걸쳐놓은 쪽빛 뱀의 허물만도 아니었으리 은빛의 자작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파란 허공도, 호랑나비떼처럼 날아내리는 자작나무의 잎도, 말간 햇살과 안개의 경계에서 흰말의 잔등에 내려앉는데 새들도 그들의 둥지에 다시, 깃들지 않는다 사람들도 사랑에 목숨을 걸기에 손바닥이 뜨겁지 않아져서 웃는다, 계곡에 자욱한 산구름 속에서 누군가 잊어버린 바람만이 부스스 깨어날 뿐인

 

     원대리 통나무 집에 들어가 한 세월 묵히고 싶던 날

 

 

 

 


 

 

 

-《다층 2013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