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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낙타

[진란]환한 봄날의 각시굴 너머, 노랑나비를 만나서 문득

by 진 란 2015. 12. 15.

환한 봄날의 각시굴 너머, 노랑나비를 만나서 문득

 

진 란

 

 

수레바퀴를 따라 연둣빛 저고리와 연분홍

치맛자락이 먹고 떠들며 굴러 간다

각시굴을 지나고 잠두리길을 걷다보니

문득 노랑나비로 날아오는 너희들을 만나고

뭉개진 슬픔끼리 어깨를 걸고 잠들지 못하는

너희의 아비와 어미들, 눈동자 같은 강물 위로  

낭창낭창 커버린 산벚꽃 꽃잎 날린다

애진한 것끼리 흐드러지다 보니

파랑주의보 낭자했던 새벽녘의 생각

그 날에도 그랬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도 시나브로 가라앉고 있었을  

사각지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별이 되고 물꽃이 핀 세월, 울어라 사람아

열어라 닫힌 문들아

피어라 사월아, 누군가는 눈물강 맹골을 지나  

매화도*로 건너갈 수가 없네

캡사이신을 뿌려주며 더 울어라 한사코 권하는 세상

문 열면 너무 환한 세상, 누군가의 살꽃들,

뼈 중의 뼈들은 독살을 빠져나가지 못하네

제 홀로 애곡의 문 닫을 수도 없었네

꽃 풍선, 꿈 풍선, 소풍의 수다도 다 산화 했다네  

노랑나비들아 날아서 오렴, 잠두리 산벚꽃 핀,

아까 본 봄 길이 그 길 아니네

꿈이 온통 지워져버린 그 봄 날 뿐이네

 

 

 

*관매도

 

 

 

-《시와문화》2015,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