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의 거리에서 외 1편
진 란
그녀 가느다란 은팔찌를 베고 잠이 들고,
여자의 꿈으로 들어가지 못한 종이컵
허공에 떠서 달린다
어디까지 가는 건지 간격은 그만큼,
더 이상 좁혀지지도 않고
조금 더 멀어지지도 않는 그 틈에
여자의 뒤채던 꿈에서 깃털 하나 툭! 떨어졌다
자작나무의 흰 몸들이 자꾸 뒤로 밀렸다
버스는 아랑곳없이 달려간다
창 밖에서 바람은 제 속도에 익숙해지고
빈 종이컵은 창문에 서서
떠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거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자리
그 허방을 달리고 있다
당신은 아직도 꿈속이다
세상은 유령처럼 당신을 엿보는 중,
잠결에 여자의 팔은 무릎에 내려지고
세상은 무심히, 무심결에도 관음에 홀린다
커피 한 방울, 여전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채고 있을
달리는 종이컵
종이로 만든 달
가끔 눈을 뜨면 내가 잠든 곳이 아닌
다른 사막 위에 옮겨져 있는 붉은 여우를 만난다
항상 바다로 가고 싶었는데
누가 밤마다 나를 고비에 세워둔다
다름 아닌 바람의 쨍한 입김 탓이다
오늘, 난 그만 죽어야겠다
가을 눈살이 매섭다
그의 눈빛이 뜨겁다
데었다
▪진 란
2002년《주변인과 詩》 편집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집으로 <혼자 노는 숲>이 있음.
《주변인과詩》 편집위원 및 편집장, 《우리詩》편집교정위원 역임.
현재 계간《시와소금》기획위원. 전자주소 : ranigy21@hanmail.net
출처 : 시와소금
글쓴이 : 이향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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