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항재에서
적막이라 불러보는 새(鳥)가 울었다
부리를 둥글려 뾰족하게 우는 새였다
보송보송한 울음 결마다 촘촘히 박히는 별이
함백산 야생화로 피어 흐드러진다
네 발 밑이 깊어지고
네 허리 아슬해지는 그 찰나가
한 우주였을 텐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지나고
봄이 오고 또 지나가고
윙컷의 날갯짓은 멀리 날지 못한단다
이름 없는 묘 앞에서 서럽게 울고 나서는
흩날리던 깃털마저 다 털어버리고 돌아섰다
울지 말고 살아 보자고, 살아보자고
살다보면 울음도 삭아져 눈물도 배나오지 않는다고
희낡아진 겨드랑이 움찔거리며 산을 내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제끼며
적막 한 채를 허물고 있는 날도 있을 테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 다시 걸어가며
새 길을 만들고 있는 왼발과 오른발의 그 새
잘 먹고 잘 살아라
나 없어도 더 행복해라 외치고 내려오는
그 짧고 짧은 하루, 사랑하기 참
좋은 날, 그래서 울음 절인 날
진 란
2002년 『주변인과詩』 편집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혼자 노는 숲』이 있다.
만항재에서
진란
천상의 화원에 오르니 그 야생의 바람길에
적막이라 불러보는 새(鳥)가 울었다
부리를 한껏 둥글려 뾰족하게 우는 새였다
청량한 울음 결마다 촘촘히 박이는 별이
함백산 야생화로 피어 흐드러진다
네 발 밑이 깊어지고
네 허리 아슬해지는 그 찰나가
한 우주였을 텐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지나고
봄이 오고 또 지나가고
윙컷의 날개짓으로는 멀리 날지 못한다고
이름 없는 묘 앞에서 서럽게 울고 나서는
흩날리던 깃털마저 다 털어버리고 돌아섰다
울지 말고 살아 보자고, 살아보자고
살다 보면 울음도 삭아져 눈물도 배나오지 않는다고
희낡아진 겨드랑이 움찔거리며 산을 내려오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제끼며
적막 한 채를 허물고 있는 날도 있을 테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 다시 걸어가며
새 길을 만들고 있는 왼발과 오른발의 그 새
잘 먹고 잘 살아라
나 없어도 더 행복해라 외치고 내려오는
그 짧고 짧은 하루, 사랑하기 참
좋은 날, 그래서 울음 절인 날
-『정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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