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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낙타

문학마실/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날 때 외 1편

by 진 란 2012. 2. 6.

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날 때

 

진란
 

 

 

사하라에도 물 흐르는 길은 있다
보드라운 모래를 열고 은신하는 곳
열대 우림의 가슴 언저리부터 스며들던 빗물이
제 속으로 길을 내어 흐르다  오아시스에 머물 때
모래 폭풍의 적막과 별의 고요와 사막을 건너야 했던 뜨거운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쉬임없이 떠나오고 떠나가던 길 위거나

흔적없이도, 조급하게 스며들었던 건물의 지하거나
회한과 단절의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 속으로거나
신기루의 마른 길이라도 물은 흐르는 것이다
사하라의 오아시스에 고속의 교차로가 만들어져도
눈을 감으면 물은 어디로나 소통의 길을 내는 것이다
저 길을 따라  짚어가면 사막의 밤을 덜어 낸
낙타의 높은 무릎 사이로 떠있는 야윈 달이 보이고
그  틈으로 지나가는 바람의 지혜와 여유와 멈춤과 비움을 듣는 것이다
구름, 나무, 풀, 돌, 새소리, 물소리, 춤추는 소리들


그대 심장 가까이 귀를 대고 누우면
오랜 그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팔베개에도
네게로 돌아가는 목숨의 파닥임이 들린다

 

 

 

 

 

 

 

 

 

겨울

-오후 4시

 

진란

 

 

 

 

하루가 지나고 있다는 헛헛함이 바래는, 누군가를 불러

차 한 잔을  나누어도 오랜동안 빚지지 않을 것 같은,

도시의 그림자가 아직 당도하지 않은 비탈의 시간

얇은 햇살을 등지고 가는 낯선 이의 모르는 생각처럼

아직 머무르는 겨울 속에서

봄맞이꽃이나 별꽃의 안부를 묻기에는

너무 이른 것인지

불혹의 문자가 보도블록으로 길게 깔린

모퉁이 골목을 들어선다

 

기다리면 늘, 조금 늦게 도착하는 버스처럼

소소리바람 닿는 햇살도 길어져서

오후 4시를 이렇게 오래도록 명명하고 있는지

혼자 차를 비우는 시간

문득 네게로 건너가고 싶은, 가서 봄이 되고싶은

화악한 벚꽃의 꿈

꽃비로, 꽃비로 내려서

봄비, 그대의 어깨에 얹히고 싶은

그래. 봄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싶은

 

 

 

시집 『혼자 노는 숲』(나무아래서, 2011)
ranigy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