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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평·책속의한줄

[스크랩] 3366. 진란의 [혼자 노는 숲]

by 진 란 2012. 2. 16.

혼자 노는 숲

 - 진 란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고지고

그렇게 후다닥 지나갔다

항상 가던 그 자리를 다시 걸어가며

산목련 함박 웃는 모습을 보렸더니

그새 지고 없어, 아차 늦었구나 아쉬운데

어디서 하얀 종소리 뎅뎅뎅 밀려온다

금천*길 푸른 숲 사이로 때죽거리며 조랑거리는 것들

조그만 은종들이 잘랑잘랑 온 몸에 불을 켜고 흔들어댄다

순간 왁자해지는 숲, 찌르르, 찌이익, 쫑쫑거리는 새소리들

금천 물길에 부서져 반짝이는 초여름의 햇살, 고요를 섞는

바람, 나를 들여다보는 초록눈들이

환생하듯 일제히 일어서는 천년 비룡처럼

혼자 노는 숲에 혼자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숲에는 많은 것들이 혼자였다

내가 없어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

 

고맙다

 

 

*창경궁 홍화문을 지나서 춘당지로 가는 숲 속에 흐르는 물길, 옥천이라고도 한다

 

-진란 시집 <혼자 노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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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문학 관련 잡지사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느즈막히 시집을 묶어 시인임을 증명해 보이신 분의 시집 표제시입니다.

주변의 그 숱한 시인들 사이에서 시단이라는 숲을 지켜보았을 터이지요

숲이라고 해서 다 그럴사한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듯이...

그 숲에서 혼자라고 여겼던 시인들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의 눈길이 참 따스하지 않은가요

그래요 시는 늘 혼자 쓰는 것이지요

제대로 자라지 못한 볼품없던 나무가 화분에 앉아 방안으로 모셔지는 오늘날입니다

시는 시인이 드러내는 나무의 모습일 뿐이지요 

출처 : 한국문인협회 영주지부
글쓴이 : 최상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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