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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시평·책속의한줄

<작품집 깊이 읽기> 진란 시집 <혼자 노는 숲> 계간 <시하늘> 2011년 겨울호

by 진 란 2011. 11. 17.

<작품집 깊이 읽기> 진란 시집 <혼자 노는 숲> 계간 <시하늘> 2011년 겨울호

 


경이로운 숲 - 권순진 엮음

 


 인류 최초의 여성 시인 사포는 기원전 600년 무렵 ‘예쁘면 다 착하고 다 통한다’란 도발적인 말을 남겼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프리미엄은 있어왔다. 예쁜 종업원은 팁을 더 많이 받으며, 매력적인 여자는 접촉사고를 내고도 욕을 덜 먹는 게 현실이다. 지식정보화시대라는 금세기에 들어서도 고매한 정신 못지않게 아름다운 육신은 여전히 대접을 받으며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아니 어느 시대보다 몸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몸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외모지상주의나 미모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건강과 균형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나아가 진선미라는 총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로 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실현의 욕구가 강하게 반영된 형태로, 이는 ‘머슬로우’가 정리한 욕구단계의 정점이기도 하다. 내 보기에 진란 시인이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시를 읽고 써 왔던 대표적인 여성 시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인은 <시하늘>과의 인연 이후 십여 년간 ‘혼자 노는 숲’이란 거대한 밀실에서 놀아왔다. 그곳에는 풍경에 대한 사랑, 세계에 대한 연애편지, 폭포를 닮은 격정, 삶의 폐곡선, 통과의례 같은 흔들림, 홍역과도 같은 문학적 좌절, 시대를 향한 우울과 분노, 무의식의 몽롱 따위의 흔적들로 빼곡하다. 더불어 인간 존재의 근원을 골똘히 들여다보려고 애쓴 흔적과 자의식의 문고리를 꽉 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란 사물에 대한 투사이고 응시이다. 나의 욕망을 투영시키고 환상을 전이하는 것이다. 내가 시를 바라볼 때라야 시가 나를 쳐다봐준다. 시에 대한 욕망과 환상이 없으면 시는 나를 향해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않는다. 욕망은 응시를 낳고 응시는 필연적으로 정신적 우울과 고뇌를 수반한다. 시인은 그런 마음의 고통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사람이다. 그 과정을 거쳐야 평범한 일상적 시각을 비일상적인 시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가족과 이웃, 사회와 직업 그리고 자본과의 관계와 가치들이 흔들리거나 의미가 없어지는 불안에 휩싸일 때도 있다. 시에 스며들고 빠질 때 더러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시를 쓰는 일에 매우 진지해지고 시와 한 몸이 되기 위한 진통이다. 하지만 시가 사회의 상식과 격리하여 존재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시의 대상은 사물이건 사람이건 현상이건 사건이건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만나고 부딪히고 사랑하는 가운데 생기는 체험의 산물이다. 시적 경험은 자잘한 일상사에서부터 도저한 정신적 사유에까지 다양하다. 총체적 삶 자체가 시적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의 규범과 가치 안에서 타인과의 관계로 삶을 꾸려가야 한다. 다만 시는 좀 더 나은 세상, 진정한 삶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고 꿈꾸면서 더불어 자아를 실현시켜갈 따름이다.

 이제 진란 시인은 혼자 노는 숲에서 ‘혼자 노는 숲’을 들고 잠시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숲의 일부를 개방한 것이다. 좀 울퉁불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서정적 자아가 가지런하여 숲이 잘 정돈된 느낌이고 경이롭다. 여성시인 특유의 섬세함과 따스함이 느껴지고, 직관력과 짙은 감수성도 엿보인다. 시대의 방황과 고독을 노래하면서 내면의 성찰도 깊다. 시름조차 기꺼이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생의 깨달음을 열어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 치열하게 시를 사유하면서 얻은 상처와 속병도 다 풀려 치유되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시인은 또 다른 시살이의 막막한 방랑 속으로 걸음을 옮겨야하는 숙명 또한 알고 있으리라. 이번의 첫 시집이 진란 시인에게 성취든 자극이든 앞으로의 시작활동에 큰 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그가 부글부글 속으로 앓았던 문학적 고뇌, 그의 넓은 사유의 세계와 관심의 폭에 비하면 시집에 담고 있는 작품만으로는 시인 스스로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은 반듯한 용모와 미모만큼이나 자기 완결성과 시적 자아의 자기염결성이 뛰어난 시인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문학적 욕심도 그에 못지않으리라 짐작된다. 앞으로도 ‘혼자 노는 숲’에서 더욱 폭넓은 사물들과 조응하면서 더 많이 전율하고 더 자주 명치끝이 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결과로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눈부시고 경이로운 숲을 보여줄 것을 주문한다.

 

 

 

언어의 새들이

붉은 심장 속에 둥지를 틀다

관념의 깃털을 뽑아 깔고

그 위에 씨알을 품었다


쓸쓸한 귀를 열고

이름 없는 시인의 가슴으로 들어간 밤

어지러운 선잠에 들려올려지는 새벽,

어디선가는 푸른 환청이 들렸다


꽃-피-요 꽃-피-요 [불멸의 새가 울다]

 


자주 다니는 푸나무에 집을 지었지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구겨지길래

다시 허공에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여

촘촘하게 끈끈하게 얼기설기 엮었지


파닥거리는 것들, 파닥거릴수록 더욱 수렁에 빠진

함정처럼, 빠져나가려고 수단을 쓸수록 옭아지는

의뭉한 늪처럼, 몇 겹의, 몇 겁의 내 사랑


마침내, 당신과 나를 이 그물에서 걷어낸 손은

더 큰 하늘, 우리가 미처 볼 수 없었던 힘

오늘, 스산한 바람에 벌레 울음만 걸려드는,

온 힘을 다하여 촘촘하고 끈끈하게 짰던 그 그물

홀로 흩어지고 홀로 흩날리고 있네 [거미줄]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고지고

그렇게 후다닥 지나갔다

항상 가던 그 자리를 다시 걸어가며

산목련 함박 웃는 모습을 보렸더니

그새 지고 없어, 아차 늦었구나 아쉬운데

어디서 하얀 종소리 뎅뎅뎅 밀려온다

금천*길 푸른 숲 사이로 때죽거리며 조랑거리는 것들

조그만 은종들이 잘랑잘랑 온 몸에 불을 켜고 흔들어댄다

순간 왁자해지는 숲, 찌르르, 찌이익, 쫑쫑거리는 새소리들

금천 물길에 부서져 반짝이는 초여름의 햇살, 고요를 섞는

바람, 나를 들여다보는 초록눈들이

환생하듯 일제히 일어서는 천년 비룡처럼

혼자 노는 숲에 혼자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숲에는 많은 것들이 혼자였다

내가 없어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


고맙다 [혼자 노는 숲]

*창경궁 홍화문을 지나서 춘당지로 가는 숲 속에 흐르는 물길, 옥천이라고도 한다

 

 


숲을 열고 들어간다

숲을 밀고 걸어간다

숲을 흔들며 서있는 바람

숲의 가슴에는 온전히 숨이다

숲을 가득 들이쉬니 나뭇잎의 숨이 향긋하다

익숙한 냄새, 킁킁거리며 한참 누구였을까 생각하였다

그대 품에서 나던 나뭇잎 냄새가 금세도

이 숲에 스며들었었구나

개똥지빠귀 한 마리 찌이익 울며

숲 위로 하늘을 물고 날아갔다

어떤 손이 저리도 뜨겁게 흔드는지

숲이 메어 출렁, 목울대를 밀고 들어섰다

거미줄을 가르며, 누군가 지나갔다

붉은 것들이 함성을 지르며 화르륵 번졌다

숲을 밀고 누군가, 누가 지나갔다 [가을, 누가 지나갔다]

 

 

나는 바람처럼 날아가요

푸른 숲의 저 잎 하나하나 눈여겨

날개에 새기면서 날아가요

날다가 푸른 잎들의 이쁜 짓을 생각하면 힘이 나니까요

맑은 햇살에 몸을 헹구고 하나의 바람만을 말해요

그 눈빛으로 숨을 불어보아요

당신에게 가고 싶어

햇살 한 올 한 올 풀어내어 당신의 몸을 묶고

당신의 가슴에 전각을 새길거야

그리고 몸을 떨면서 그 이름을 부를거야

이 헛된 바람의 끝이라고

팔베개의 아슬한 춘몽이라고


당신 손바닥에 잠시 머물다

난 또 날아가요 그 눈짓에 멍이 들어서

따스했던 순간이 이생이었기를

보드라운 꽃잎의 바람이었기를

나는 바람으로 날아가요 [KISS,]

 

 


너를 보내고 비로소 시를 쓴다

너를 보내고 비로소 연애를 한다

가까이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데

흘려보낸 너의 등 뒤로 시간이 따라갔고

그림자에 묻힌 나는 속절없는 계절로 흘렀다

옆에 있을 때에는 뜨거움으로 질투 하고

안보이면 그것으로 아우성을 했는데

이제 이만큼 흘러와보니 알겠다

외로움을 견디는 일, 그것처럼

잘 자라는 일은 없었다는 걸

홀로서기는 오롯이 잘 지나는 일

잘 흘러가는 일 [사랑법]

 

 


묻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길래

망초라 했을까

무성한 꽃대들의 손짓 너머로

실족한 남자가 휘뚝휘뚝 걸어간다

어쩔 수 없었던 허방

마음껏 뻗을 수 없었던 걸음이 주춤거린다

남루한 목숨으로 모질게 남아

묵정지에 와서는 망부가忘婦歌로 피는구나

한때는 젊음과 열정의 카르페디엠,

치열하던 노선도 놓아버리고

서울역 광장이며 지하에 피어난 무심한 꽃들

어쩌면 우리네 남편이었을

아니, 우리 아이들의 아비였을

저 하얀 소금꽃

지천으로 피어나는 백귀白蒐들, [개망초 2]

 

 


가끔 시가 안된다는 말을

사람이 덜 되었다는 말로 듣는다

더러는 사람이 덜 되었다는 말을

욕심없이 무지랭이 같다는 말로 듣는다

그래도 밟히면 꿈틀 할 걸?

아하 그건 본능적이야

본능적이라는 말 왜

말초적으로 반응한다는 말로 들릴까

제 듣고 싶은 말을 들으면

후벼파고 싶을 만큼 가렵고

제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온 신경이 곤두서서 전사가 된다

그리운 귀, 고高 귀貴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운 귀]

 

 


꽃을 많이 보고 들어온 날

발바닥과 무릎과 종아리, 목과 등과 팔뚝이 쑤시고 아파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귀인을 만난 날이라

심장까지 저미지 않는다

사람을 많이 보고 들어온 날

쓸 말은 하나도 없이 쓸모없이 주절거려 쓸쓸하다

사람꽃은 스치는 바람결같이도 상처를 남긴다

말없이도 웃고 속없이도 실컷 웃고

입술 끝이 귀에 걸리게 웃고 들어온 날

내 뒤를 따라 들어와 끝내 울게 하는 것은

사람꽃 속에 함께 있던 바로 나, 내 그림자들이다

행여 지나치는 말로 과하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직설화법으로 말한다며

깊이 박히는 비수를 꽂지 않았을까

내가 받은 비수들을 뽑아내면서 어쩐지 나는

다음 생에는 꽃으로 태어나졌으면 싶은 것이다


꽃을 본다는 일

사람꽃을 본다는 일

꽃과 꽃 사이에서 질서를 지킨다는 일

말하자면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지 않고

잘 지켜주면서도 서로 행복해지는 일

시퍼런 갈기를 휘날리면서 달려오는 무법자 같은 말

향방없이 달려왔다가 달려갔다가

봄햇살처럼 뜨겁기도 하다

네가 나를 무시하면 그래 나도 너를 무시하면 된다

혼자 노는 숲의 독백이 깊어지는 시간

꽃과 사람꽃 숲의 길 잃지 않도록 귀 열어두는 일

홀로 피어나고 홀로 나부끼고 홀로 버티는 일

바람은 내 안 중심부터 소소하게 흔들리더니

꽃바람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회오리바람으로 몰아치기도 하고

내 귀가 바람의 중심이었다는, 그런 저녁이다 [저녁의 시]

 


새들의 본적은 잘못 적혔다

새가 평생 허공을 나는 건 아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한 비감이거나

살기 위해 아슬한 허공으로 오르는 것이다


새들에게 모든 길이 열려진 것은 아니다

몸에 새겨진 오랜 습성으로 길을 떠나는 것

위험을 경계하고 길을 내는 사냥터일 뿐

날개 없는 생각으로 새들을 자유롭다고 하지말자

땅을 딛고 나무에 내리고 바위에 둥지를 틀고

수풀 속 은신처로 보호구역을 만드는 일

생을 위해 혹은 새끼를 위해 날마다

절실함으로 날아오르는, 새일 뿐이라는 것


누가 새의 본적을 하늘이라고 했는가

순명에 귀 기울이는 것들만 비로소 하늘로 간다

온 생을 다한 것들이 단 한번 날아

하늘로 간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새들에 대한 오해]

 

 


길 위에 서 있을 때, 나 또 하나의 길이었다

꽃을 바라보고 그를 불러줄 때, 나 또한 꽃이었다

바람 밖으로 가열찬 마음 밀어낼 때에도 난 바람이었다

햇살 받쳐주던 푸른 잎새들이 내 머리에 머물 때

그 잎새 밖으로 난 길을 따라올라 구름으로 가벼워지고

먹장구름 기대어 무거워질 때에는

함께 둥둥거리며 뜨거운 불볕, 그 하늘에서 시렁거렸다

한낮 반짝, 한번씩 소나기로 쏟아지기도 했다

비워지고 가벼워지고 길 위에 다시 서있으면

어김없이 꽃들은 꽃 속으로 나를 숨어있게도 하였다

치렁거리는 이 기억이 한때는 설레임이었고

구석으로 우우우 몰리던 때 이른 나뭇잎들은

꽃잎과 함께 바스락거리며 길 위의 바퀴처럼 눈부시다

어쩌다 나는 길이 되어 있는지, 다시 누군가의

길과 맞닿아야 하는 수레의 흔적을 굴러가는지

길 위에서 길을 꿈꾸는 길치, 그 부림의 날을 바라노니

가멸한 마음으로 길을 가고 또 오고 또 가겠구나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시인의 말■

 

 

8월 염천에 시집원고를 고르며 몰입해서 열흘 동안 작업을 하고, 오탈자와 작품

의 배열 등 3번의 교정을 보고, 9월 중순에 활자로 나온 시편들을 보니, 그제사

덜컥 염려가 되었다. 대개는 시집원고를 골라서 인쇄물로 가지고 다니면서 수십

번까지도 교정하고, 선배들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는데,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단숨에 일을 내버렸으니 왈칵 겁이 났던 것이다.


한편 생각해보면 이제는 내 손을 떠나 세상으로 날아간 것, 마음에서 떠나보내

자 생각하기도 하고, 시를 쓴다고 십여 년을 혼자서 주물럭거리던 시간들을 덜

어내었으니 홀가분하다는 생각도 했다. 내 이름으로 된 시집을 받아놓고보니

시인의 이름을 지어주신 어머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동안 본명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 필명인줄 알고 시를 제대로 읽어주지 않던 사람도 있

었으니 생각하면 속이 상하는 때도 많았었다. 그래서 처음 손에 잡은 시집의 첫

장을 열고 시인의 이름을 지어주신 어머니께 이 시집을 바칩니다 하고 드렸다.


출판회 때에 정대구 시인께서도 말씀 하셨듯, 그동안 등단을 권유하신 분들도

있으셨고, 직접 소개(?)까지 해주시기도 했지만 어차피 늦게 시작한 시작업을

누군가의 검증을 거친다는 것도 마음 편치 않았고,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일이

좋았을 뿐이므로 혼자 쓰다가 청탁이 들어오면 발표도 하면서 십년을 지나왔던

것이다. 시를 써보겠다고 결심한게 2000년 12월경인데 컴퓨터를 처음 접한게

계기가 되어,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당시 문학카페로서 명성이 높던 시하늘

에 가입하게 되었고, 시를 읽다보니 성장기때 시를 좋아하고 쓰던 생각에 시쓰

기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출판회 때에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가우 박창

기 시인께서 오셨으면 하고 초대장을 보내드렸는데 정말 그 귀한 시간을 내어

달려와 주셔서 매우 기쁘고 감사했다.


시는 어차피 혼자 쓰는 작업이라서 블로그 이름을 혼자 노는 숲이라고 지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시집도 혼자노는 숲으로 내게 되었다. 시집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나중에 혼자노는 숲이라는 시를 몇 편 쓰게 되었던 과정도 에피소드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비매품으로 발간되는 시전문계간『시하늘』 속 《시몰이》 동인들, 함께 울고

웃으며 십년 가까이 달려온 셈이다. 지금은 처음의 그 열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모두 처음에는 시인 누구를 읽어보자 하면 그 시인의 첫 시집부터 구해서

한 달 동안 몇 권의 시집이라도 다 읽고 나와서 각각 읽은 시인과 시에 대해서

뜨겁게 나누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는 내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남모르는 고민이 그렇게 여물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몰이 동인들은 조급한 사람이 없다. 느긋하게 시를 읽으며 시를 나누면서 시인에

대해서도 탐구해보는, 그러므로 시인의 삶에 대한 이해까지도 함께 공감할 수

있었고, 각각의 삶과 시에 대해서 관조적인 자세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시우들과 함께 시를 읽은 것을 다시 감사드린다.


또한 등단의 말미를 들여다보지 않고 십년을 하루같이 《주변인과시》편집동인

으로서 활동 하면서 냉냉한 바람밭에 맨발로 서서 세상과 맞서기도 했던 시간들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시를 쓰며 즐기게 되기도 했을 것이다.


첫 작품집을 내놓고 이제는 한 소임 마쳤다 싶었는데 새로운 시작이다.

묵은 것은 한 켠으로 밀어놓고,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데 아직은 그게 쉽지

않다. 깊어지는 가을, 이제 겨울을 예감하지만 나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숲으

로 들어갈 것이다.

혼자여서 쓸쓸하지만 혼자여서 자유로운, 그 숲에서 나는 또 숲 속의 친구들과

어우러질 것이다. -진란

 

 

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