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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낙타

문학마당/그들만의 요란법석 외 1편

by 진 란 2012. 2. 6.

 

그들만의 요란법석

진란

 

 

 

어느 순간,

세상의 모든 애인에게 한꺼번에 전화를 거는 사람

달이 떴다고 전화를 걸고

눈이 온다고 문자를 보내고

비가 온다고 온통 쓸쓸해하는

모든 세상의 길은 애인들의 전화선이다

한 때, 서로에게 환한 등이었을 수다스러운 행각도

한 때, 오직 한 곳만을 응시했을 뜨겁던 시선도

바람이 불고

풍경이 흐려지고

사람도 낡아지는데

보이지 않는 선을 걸어가는 모퉁이쯤에서는

어젯밤 쓸쓸한 가슴에 품었다 걸어놓은 너의 눈썹달이었고

새벽에 홀로 서 반대편의 반쪽을 생각하다 미처 지우지 못한 낮달이었고

다시는 붙일 수 없는 사금파리처럼 깨어진 조각달이었고

그대는 세상의 모든 전화벨이 한꺼번에 쏟아지라고

길을 열어놓은 사람, 부재중이었을 수도 있었을,

거절했을 수도 있었을,

스팸으로 등록되었을 수도 있었을,

 

 

여전히 바람은 불고

달이 뜨고

벨은 울린다

 

 

 

 

 

 


폭설

진란

 

 

 

 

마침,
기다리던 그대 머리 위로 펄펄 흩날리는 건
머뭄 없이 무성해지는 꽃잎들
심심하게 그대 몸 위에 뉘고 또 뉘고
착착 겹쳐서 한 몸이 되어버리는
단단한 뭉침, 그러면 그대도 사라지고
우리도 사라지고
그대 생각도 사라져서는 앞을 볼 수 없지
무아의 지경으로 달려드는 염치도 없지
저렇게 내리고 쌓이고도 사라지는 법도 있지
젊은 날, 우리 머리 위로 나붓나붓 날리던
흰 벚꽃 꽃잎 꽃비였던 그 약속같이
서로 짐작만 하고, 질문만 하다가 잊혀지겠지

 

 

마침내, 이 눈 그치면
눈썹달도 연처럼 나뭇가지에 걸리고
그대 눈부처 되어 천년처럼 깊어지겠다

 

 

 

 

 -《문학마당》201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