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때
진란
숨을 쉬고 있으나 산 것이 아니었다
움직이고 있으나 살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뱃속 깊은 곳에 잉걸불이 남아
잔뼈마저 허연 재가 되도록 태워버리고
훌훌 가볍게 흩날리는 먼지 같던,
몸엣것이 몸에 없다고 나를 지우던
바스라진 쑥부쟁이 강물에 잠기고
불노을든 구름 길게 누울 때에
날 선 낮달만 앞세워 가을 모퉁이로 돌아오던
해름참이었다
억새꽃 부챗살로 펼쳐든 바람은
허수아비의 허풍을 희살대다가
오랜 그 집 오솔문에서 옹송거렸다
끝내는
돌아서지도 못하고
백석의 여우난골이나 기형도의 빈 집,
미당의 동천을 헤매었다
어둠이 채 내리지 않은 오지에서는
흰 눈발 같은 시 한 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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