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몽상, 꾸뛰르풍으로
진란
세시의 늦잠이거나 낮잠이거나
보이지 않아도 별이 떠있듯
볼 수 없지만 우리는 거기 혹은 여기 있다
우주와 당신의 틈새, 풍경의 실핏줄이 터지고
잔뜩 부풀어 오른 우리의 푸른 잎 사이로
천둥 치듯 봄날이 흘러갔다
붉게 녹슨 꽃잎들이 파도의 물보라같이 피어나고
당신 가슴에 집을 짓고 숨구멍을 내자
독박골* 밤나무 향은 바람으로 날아가고
원림을 건너온 자미紫薇만 다시 스물거린다
짙푸른 적막의 시간 켜켜이 쌓던 기억
그 시간의 가장자리를 돌아 왁자히 쓸려오는
꽃잎의 노래처럼 숨가쁜 호흡
가끔은 취한 시간과 말들로
피고 지는 붉은 백일홍의 빈 꽃자리에
오래도록 게으름을 내려놓고 시간을 때우고도 싶지
휘파람 날려가며 눈 뜨는 길의 저편 장대비는 쏟아지고
거기 늦은 잠에 취해 들여다보는 꾸뛰르*의 집이 있다
낮달에 길들여진 흔들리는 침대가 있다
안보였다 보였다 날선 냄새가
배어있다, 그 해 칠월이다
*프랑스어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내가 스스로 디자인한 패셔니즘의 경향을 지칭
*북한산 불광동에 있는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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