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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싶은풍경

겨울이 뭔가요? 추워도 푸르른 제주 곶자왈

by 진 란 2011. 1. 17.

겨울이 뭔가요? 추워도 푸르른 제주 곶자왈

뉴시스 | 김지은 | 입력 2011.01.16 09:02

 

 

【제주=뉴시스】김지은 기자 = 제주공항에서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방향으로 30~40분을 달리면 각양각색 나무가 솟아 올라있는 '동백동산'에 이른다. 본래 오래된 동백나무가 많아서 동백동산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지금은 동백나무보다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비쭈기나무 등이 더 많다.

찬 바람이 매서워도 수려한 자연의 유혹 앞에서는 저절로 차에서 내리게 된다. 걷고 싶다. 아기자기하게 쌓여있는 밭담들이 먼저 반긴다. 겨울에도 활발하게 농산물을 재배하는 남쪽과 달리 휴작하는 북쪽의 밭들은 나름대로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을 뽐낸다.

동장군의 무서운 기세가 이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운 바람을 막을 곳이 그리워진다. 그 순간 '곶자왈'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숲을 뜻하는 '곶', 수풀이 우거진 '자왈'을 결합한 제주 고유어라고 한다.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용암지대에 분포하는 독특한 숲이다. 예전부터 이곳은 땅이 척박해 농토로 이용되지 못했다. 방목을 해도 효율성이 떨어져 주민들은 불모의 땅으로 여겨왔다. 철저하게 버려졌던 곳, 그곳이 이제는 순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 생태적 가치를 재평가받고 있다.

특히, 동백동산의 곶자왈은 다른 지역보다 인간의 손길을 덜 탄 원시상태의 모습을 보전하고 있어 의미가 더욱 크다. 제주 중산간 지역이 파괴되기 이전 원식생의 형태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영화 '아바타'의 열대우림을 잠시나마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곶자왈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있다. 편안한 운동화다.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하면서 흐르던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형태로 지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을 밟아야한다. 점성이 높은 암석이 아니므로 여기저기서 '아야~아야' 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그래서 '아아용암'이라고 불리나보다.

곳곳에는 숨골과 풍혈(風穴)이이 있다. 발길을 붙들 정도의 시원한 바람이 새어나오는데, 1년 내내 온도 변화가 거의 없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추운 겨울 아무리 많은 눈이 내려도 이곳에서만은 눈이 쌓이지 않는다. 또 비가 오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지하수를 만들어 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곶자왈에는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공존, 식물종 다양성 면에서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한라산 숲과 비교할만 하다. 천량금을 비롯해 개가시나무, 방울꽃, 큰톱지네고사리, 쇠고사리 등은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기도 하다. 겨울에도 늘 푸른 숲을 이룬 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소비해준다. 제주 생태계의 허파가 따로 없다. 흙도 없는 자갈밭에서 식물들이 이렇게 잘 자라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자연의 광활함과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늘 높이 치솟은 후박나무를 너무 오래 쳐다봤더니 고개가 아프다. 파충류가 살기 좋은 습한 곳, 한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둠컴컴한 곳, 길을 잘못 들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곳, 커다란 돌무더기를 일구면 또 다시 바윗덩어리가 천지인 곳이다.

습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나무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많은 제주도이지만 터널로 들어가 또 다른 세상의 숲을 발견하고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곶자왈 근처에는 1970~80년대 물건들을 전시한 '선녀와 나무꾼', 드라마 '태왕사신기' 녹화세트, 녹차밭 '다희연' 등이 터를 잡고 있다. 종일 쉴 틈이 없다.

kje132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