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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싶은풍경

부산 산토리니의 비밀

by 진 란 2011. 1. 6.

[부산의 ‘산토리니’ 골목길 일일 투어] 옥상마다 얹은 물통 파란 희망 이고 산다

서울신문 | 입력 2011.01.06 03:47

 

 

골목길엔 중독성이 있는 듯합니다. 뭐 볼 게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름깨나 날리는 골목길이라면 불원천리 찾아가 걷게 됩니다. 필경 '지지고 볶으며' 사는 동안 골목길에 켜켜이 쌓여진, 요즘은 쉬 보기 어려워진 사람의 온기를 좇는 여정이기 때문이겠지요. 부산 사하구 감천2동 문화마을은 그런 곳입니다. 레고 블록처럼 수많은 집들이 오종종히 붙어 있는데, 여간 이국적이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여전히 남루합니다. 하지만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과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 듯합니다. 그것은 곧 골목길 어귀마다 희망이 움트고 있다는 것과 맥이 통하겠지요. 이어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들러 옛것들의 향기에 취해도 좋겠습니다. 여기에 최근 개통된 거가대교까지 돌아 본다면 모자람 없는 부산 여행이 될 겁니다.

 

 

 

●문화마을-美路가 迷路처럼 펼쳐진 곳

산동네에 부는 겨울 바람이 아이들 웃음소리를 실어 나른다. 웃음소리는 골목길 여기저기 부딪치고 굽이치며 넓게 퍼져 나간다. 감천2동 문화마을의 한낮 풍경이다.

울긋불긋 단장한 마을은 무척 이국적이다. 옥녀봉과 천마산 사이 비탈면을 따라 원색 페인트를 곱게 칠한 사각형 집들이 오종종히 붙어 있다. 하나같이 지붕 낮은 집들이다. 집집마다 옥상에 원통 모양의 파란 물통을 이었다. 사각형과 원통형이 적당히 어우러지며 절묘한 구도를 이룬다. 부산의 산토리니, 마추픽추 등으로 불리는 이유다. 장난감 블록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 해서 레고마을이란 별명도 얻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여느 골목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였다. 사람이 떠난 집들도 250여채나 된다. 홍보전시관 '하늘마루' 관계자는 문화마을 전체 건물이 4500여채 된다고 했다. 대략 5% 정도가 빈집인 셈이다.

감천2동 문화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1950년대 초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몰려 들어 생겼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하구청이 펴낸 '사하구지'는 "신흥종교인 태극도를 믿는 사람들 4000여명이 모여 집단촌을 이룬 마을"이라 적고 있다. 인근 주민들이 문화마을은 잘 모르지만 '태극도마을'이라면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것을 제외하면 마을은 당시 모습 그대로다.

'골목길 투어'는 산복도로 위 하늘마루를 들머리 삼는 게 좋다. 2009년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와 지난해 '미로미로프로젝트' 등을 통해 다양한 조형물들이 산복도로 주변에 설치됐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가는데, 지번을 따라 골목을 차례로 돌아볼 생각은 버리시라. 그저 막연히 헤맨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골목길은 길다. 그리고 비좁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다. 행여 맞은 편에서 사람이라도 온다면, 영락없이 '외나무 다리'가 된다. 서로의 숨결마저 맞닿을 것 같은 이런 골목에서 가벼운 눈인사 없이 지나치는 게 되레 어려운 일일 게다. 문을 열면 곧 골목인 탓에, 골목길은 곧 마당이고, 놀이터이며, 거실이다.

골목길은 'ㄹ'자 형태로 이어져 있다. 끝이 있을까 싶다. 신기하게도 골목길은 막힌 곳 없이 서로를 잇고 있다. 이 골목은 저 골목의 입구이자 출구다. 골목 마다 예쁜 이정표와 조형물들을 설치해 뒀다.

'서울 사투리'를 써서 그런지 외지인에 대한 주민들의 응대가 따스하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기 때문이다. 예전엔 주민들과 여행객 사이에 싸움이 빚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골목길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주민들의 따스함이 금방 전해져 온다. 골목길 계단 모서리를 눈여겨 보시라. 각진 부분을 깎아 둥글게 만들었다. 필경 누군가를 향한 배려일 터다.

골목길 투어는 2시간이면 넉넉하다. 다소 된비알도 있지만, 그리 품이 드는 편은 아니다. 전망 포인트는 감정초등학교와 하늘마루, 나라사랑교회 등이 꼽힌다.

다시 산복도로에 선다. 멀리 사하구쪽 바다가 보인다. 말 그대로 '오션뷰'다. 어디 여기뿐일까. 장독대나 옥상, 어디건 마찬가지다. 햇살도 넉넉하다. 뒤편 산자락으로 해가 질 때까지 꼬박 볕이 든다. 문화마을은 겨울 햇살이 참 좋다.

●보수동-헌책들이 뿜는 세월의 향기

내친 걸음, 보수동 책방골목까지 둘러 보는 게 좋겠다. 문화마을에서 30분 남짓 자박자박 걸으면 닿는다. 가는 길에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됐던 임시수도기념관이나 동아대 부민캠퍼스 내 정부청사 건물 등 유적지와 만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보수동은 1960~70년대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번쯤 기웃거렸을 추억의 골목. '보수동'이란 이름만큼이나 '케케묵은' 향기가 풍기는 곳이다. 최근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www.bosubook.com)은 1950년대 초, 그러니까 당시 미군들이 보고 난 잡지와 학생들의 참고서 등을 몇몇 헌 책방들이 모아 팔면서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이후 부산에 각 대학의 분교가 들어서고 피란민들이 헌책을 내다 팔면서 급격히 책방도 늘었다.

책방의 규모는 다양하다. '전문분야'도 다르다. 헌책은 상태가 좋을 경우 반값 정도, 싼 것들은 2000~3000원에도 살 수 있다. 신간도 20% 안팎 할인된다. 지난해 12월엔 8층짜리 '책방골목 문화관'도 들어섰다. 책박물관과 북카페 등으로 꾸며져 쉬어가기 맞춤하다.

남포동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 사거리 건너편을 보면 보수동 방향으로 난 사선골목이 보인다. 골목 입구에 책모양 이정표가 걸려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남포동 PIFF광장에서도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거가대교-풍경화 속을 달리다

오래된 것들의 눅진 향기를 훌훌 털고 싶다면 거가대교로 갈 일이다. 지난해 12월 개통되면서 부산의 새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 '산 넘어 산'에 견줘 '다리 건너 다리'라고 해도 좋을 만한 풍경들이 늘어서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교량, 부산 신항만 등의 거대한 풍경과 거제도의 넉넉한 섬 풍경이 다리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놀랍다.

거가대교는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 장목면을 교량과 해저터널로 잇는다. 길이는 8.2㎞. 정확히는 바다 위를 달리는 구간이 4.5㎞, 바닷속을 달리는 구간이 3.7㎞다. 사장교 부분이 거가대교, 바다 밑 터널 부분은 가덕해저터널이지만, 보통 두 구간을 합쳐 거가대교라 부른다.

거가대교를 타려면 우선 부산 녹산공단에서 가덕도를 잇는 가덕대교에 올라야 한다. 1.6㎞의 가덕대교와 눌차도, 가덕터널(1410m) 등을 줄줄이 지나면 요금소다. 통행료 1만원을 내고 요금소를 나서면 곧 가덕휴게소다. 휴게소 전망대에 서면 가덕해저터널 입구와 거가대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쾌한 풍경이다. 거대함을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입이 벌어질 만한 규모와 조형미를 동시에 갖췄다. 휴게소 한 켠엔 거가대교의 모든 것을 담은 전시관도 마련해 뒀다.

휴게소를 나서면 가덕해저터널이다. 길이 180m, 무게 4만 5000t짜리 콘크리트 박스(함체) 18개를 바닷속에서 이어 만들었다는 곳. 최대 수심 48m의 바닷속을 지난다. 하지만 워낙 깔끔하게, 그리고 '터널스럽게' 조성돼 있어 바다를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외려 반감된다. 해저터널 벽면에 인근 바닷속 풍경 등을 그려두면 살풍경하다는 느낌은 다소 지울 수 있지 않을까.

해저터널을 나와 중죽터널을 지나면 2주탑 사장교다. 교량의 중간 지점이 부산과 경남의 경계다. 여기서 저도를 관통하는 저도터널을 통과해 거가대교 3주탑 사장교를 지나면 거제시 장목면이다.

장목면에서는 상유마을부터 둘러 보는 게 좋겠다. 고즈넉한 마을 풍경도 좋고, 다리 바로 아래에서 거대한 거가대교를 바라보는 맛도 각별하다. 거가대교에서 상유마을로 향하는 램프로 빠지면 된다. 상유마을 초입 언덕엔 거가대교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도 조성돼 있다.

글 사진 부산·거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백양터널요금소→태종대·수정터널 방면 고가도로→수정터널→좌천삼거리→부민사거리→토성동역→감천2동 문화마을. 감정초등학교 아래 공용주차장이 넓게 조성돼 있다. 하늘마루 (070)4219-5556.

▲맛집

보수동책방골목 안에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진스넥'이 있다. 고로케와 도넛, 팥빵 등을 파는 분식집으로, 지역 신문에 크게 소개될 만큼 명물로 통한다.

▲기타

문화마을 지도는 하늘마루와 마을안내소에 비치돼 있다. 스탬프 6개를 모두 찍어 올 경우 하늘마루에서 무료 사진인화 서비스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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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

 

 

[투데이코리아=박현진기자]사진 동호인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부산의 숨겨진 관광명소,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 카메라만 들이대면 전부 예술이 되는 그림벽화가 마을의 곳곳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마더'의 촬영지이기도 한 '문현동 안동네 벽화'는 이미 예술적 가치로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공공디자인대상  '주거환경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사실 문현 안동네는 노후한 다세대주택지에 불과했다. 역사적으로는 6.25참변 이후 남으로 피신한 피난민들의 주거공간이었고 그 이전에는 공동묘지였다.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이 공간은  도시재생 및 공공디자인 실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벽화거리로 재탄생했다. 지난 2008년 3월부터 6월까지 미술전공 대학생과 시민이 참여해 일궈낸 아름다운 벽화는 삭막한 도시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문현 안동네를 찾아나설 때 필수장비는 역시 카메라.  맨손으로 갔다가는 여기 저기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렌즈 속에 담아 낼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 또 마을의 지대가 높고 골목길이 협소한 까닭으로 편안한 신발을 신어야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다.

 

지하철 2호선 문전역 2번출구로 나와 문현2동 주민센터쪽으로 난 큰 길을 쭉 올라간다. 어느 정도 정상이라 느껴지면 또 산으로 향하는 듯한 높은 길을 만나게 된다. 오르다 보면 옥천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그곳을 지난 후부터 그때 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이런 길에도 오토바이가 차가 다닐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데, 간혹 오토바이가 쌩하고 앞질러 가면 뒤집히진 않을까 아찔할 정도다.

 

골목길은 올여름 문현2동의 희망근로 사업단에서 시멘트를 발라 전보다 깔끔하고 걷기에 편하다. 그렇게 등줄기를 흐르는 땀이 촉촉이 러닝을 젖게 할 무렵, 한 템포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부산의 광경, 앞의 부전동과 범천동일대의 빌딩과 복합건물이 군데군데 보이고 도로 위로 또 동서를 가르는 고가도로가 보인다.

 

특히 언젠가 화제가 되었던 감천동 부산 산토리니 마을도 저 멀리 보인다. 하늘빛과 바다 빛으로 물들은 작은 상자들이 모여 있는 성냥갑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고개 돌리며 아는 지점을 콕콕 찍다보면 올라왔던 거리가 대견하고 어느새 땀방울이 한껏 달아오른 몸을 식혀준다.


 

이제 목표는 부성고등학교다. 위로 난 큰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된다. 부성고등학교의 좌측으로 올라서 위로난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높은 곳에 매일 오르며 살아갈 수 있지 하는 생각으로 헉헉거리며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뉴스에서 신문에서 보았던 그 그림 그 벽화가 눈앞에 들어온다. 그리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참 이쁘다!’라는 생각.


 

귀엽고 푸근한 그림들이 가득한 이 골목길을 쭉 따라가면 벽면마다 그려진 위트 있고 개성 넘치는 그림과 그들의 표정 속에서 행복감이 느껴진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장면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 때문에 플래시 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동네 주민들은 엷은 미소로 낯선 여행자의 방문을 환영한다.

문현 안동네의 여행을 더욱 알차게 하는 방법은 먼저 큰 골목길의 중간지점에 세워진 ‘벽화찾기’안내판을 숙지하는 일이다.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사택의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골목골목을 들어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2시간을 돌아보고도 다 보지 못했다는 사람과 1시간 만에 모두 돌았다는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군데군데 그려진 그림은 모두 재치덩어리 들이다. 깨진 유리마냥 유리에 그림을 그려놓고 옆에는 야구글러브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표정, 긴 실타래를 집둘레에 둘러 통화를 하는 모습 등 보기만 해도 귀엽고 아기자기한 행복의 그림들이다.


 

또 문현고개 쪽, 즉 마을 입구 방향으로 걸어 나가면 황령산으로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혹은 오르는 등산객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래서일까. 벽화마을에는 띄엄띄엄 음식점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다. 시원한 음료수 한 캔 사들고 마을 중앙에 위치한 '전포 돌산공원' 정자에서 아랫마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출출한 빈속에 주변 음식점에서 전 한 접시 하며 막걸리 한 사발을 먹어도 동네 분위기와 사뭇 어우러진다.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도 문현 안동네의 존재를 알았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부쩍 부산의 과거라는 타이틀을 걸고 문현안동네를 주목하고 있는데  벽화는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낙후된 도시에 산뜻한 새바람을 몰고 왔다. 언젠가는 재개발에 들어가도 이곳은 '허물어진 예술'로  남을 것이다.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 가는 방법]
지하철 2호선 문전역 2번출구에서 문현2동 주민센터 방면으로 200m 도보
산으로 난 길을 따라 부성고등학교 방면으로 오르막길 2km 도보
부성고등학교 정문 좌측으로 난 길300m 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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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산토리니의 비밀
[매거진 esc] esc 워킹맵 1. 부산 태극도마을과 남포동
사진가들 탐내는 사하구 감천2동에서 자갈치 시장까지 반나절 워킹 투어

 

 

남종영 기자기자블로그
» esc 워킹맵




외국 도시에 가면 지도를 들고 시장과 공원, 문화유적을 찾아 헤맵니다. 여러분이 사는 도시엔 멋진 도보 코스가 없나요? 〈esc〉가 한국의 도시를 탐험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esc 워킹맵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 부산 태극도마을과 남포동.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마을은 흔히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비유된다. 레고블록 같은 집들은 모자이크가 되어 다채로운 빛깔을 내고, 절벽에 매달린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최근 들어 키치적 미감에 이끌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데, 이들이 선호하는 포토포인트①는 감천고개 정상 감정초등학교 주변이다.

태극도마을은 옥녀봉과 천마산이 감싼다. 아침에는 옥녀봉 아랫마을에 볕이 들고 저녁에는 천마산 아랫마을로 해가 떨어진다. 옥녀봉 아랫마을의 불규칙한 격자가 만들어내는 곡선이 사진가들이 탐내는 장면이다. 사진을 찍으려면 아침에 올라가는 게 좋다.

» 감천2동 감천고개 정상에서 내려다본 태극도마을. 오전에 볕이 드는 옥녀봉 아랫마을은 사진가들이 탐내는 곳이다.

달동네 전망은 모두가 ‘오션 뷰’

주민들이 ‘할배 산소’②라고 부르는 태극도 교주의 무덤에서 솔밭3길 계단으로 진입했다. 이제부터는 계단 골목길이다. 쌈지공원③과 우물이 빽빽한 숲 속의 작은 연못처럼 나타난다. 수건, 추리닝, 누비이불을 매단 빨랫줄이 공원을 가로지른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조서현(50)씨가 공원을 관리한다.

 

 

"불과 3-4년전까지 우물에서 물을 끌어다 마셨어요."

“그런데 왜 마을 사람들은 자기 집에 울긋불긋하게 페인트칠을 했죠?”

“나도 몰라요. 그냥 자기 집 예쁘게 꾸민 것이지 않겠어요?”

그리스 산토리니 사람들은 순수하게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하얀 페인트를 칠했다. 하지만 주민들과 사하구청에 물어봐도 ‘부산판 산토리니의 비밀’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사하구청에서 펴낸 <사하구지>를 찾아보면, 태극도마을은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는 신흥종교인 태극도를 믿는 사람들이 4천여명 모여 집단촌을 이룬 곳”이다. 1958년 충북 괴산 등지에서 온 태극교도들이 자리를 잡았고, 1980년대에는 2만명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1만명으로 줄었다. 종교인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

 

솔밭3길에서 내려오자마자 좌회전하면 폭이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골목길이다. 이 길은 어린이집과 감천2동사무소④로 연결된다. 지붕과 처마가 위태롭게 맞닿아 있어 골목은 아케이드 같다. 태극1길 입구에는 쉬어 갈 만한 놀이터가 있다. 신발끈을 묶고 태극4길을 통해 태극5길 골목을 헤맸다. 골목 교차로에 동서대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예쁜 벽화⑤를 칠해 두었다. 태극6길은 숨이 차는 된비알이다. 푸른 파를 심어놓은 화분, 빨랫줄에 걸린 노란 손수건, 지붕에 말려놓은 운동화 등 골목길 풍경이 스친다.

 

할머니들은 양지바른 골목에 의자를 내놓고 감천 앞바다를 바라본다. 그 순간 달동네 비탈길은 할머니의 베란다가 되고 사글셋방은 고급 호텔의 ‘오션 뷰 룸’(ocean view room)이 된다. 옥녀봉길을 따라 마을을 에둘렀다. 전망 좋은 정자⑥에는 주민들이 시계를 걸어뒀다. 아미동 성당⑦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고 골목 탐험을 끝냈다. 밀크커피 300원.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옥천로 갈림길에서 아미골 길을 따라 내려간다. 구불구불한 에스(S)자 아스팔트길로 마을버스가 성난 소리를 내며 기어오른다. 비탈 너머로는 용두산 타워와 부산 앞바다가 펼쳐진다. 임시수도기념관⑧(부산시 기념물 제53호)까지는 20분 걸린다. 임시수도기념관은 1926년 경남도지사 관사로 지어졌다가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된 건물이다. 이 전 대통령의 서재와 화장실은 물론 ‘유엔탕’ 한 그릇으로 버텼던 전쟁 시절의 민중의 생활상도 볼 수 있다. 아담한 뒤뜰이 쉬기에 좋다.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선 부산 임시수도 시절 정부청사⑨(등록문화재 41호)가 기다린다. 1925년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은 이달 안에 동아대 박물관으로 재탄생한다. 동아대 박물관은 국보 2점, 보물 11점 등 대학 박물관답지 않은 소장품을 갖췄다. 특히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들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16첩 동궐도를 감상하길.

 

» 국내 최대 헌책방 골목인 보수동 헌책방 골목. 새 학기를 제외하고는 매주 1, 3주 일요일은 쉰다.

대청로 삼거리에서 중고 레코드 전문점인 대한레코드⑩에 들렀다. 소장가치 높은 명반에 눈이 뒤집어질 정도다. 값은 3천 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대청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보수동 헌책방 골목⑪이다. 참고서, 문제집을 사고파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고서점, 대우서점 등에서 쏠쏠한 소설이나 인문서, 미술책을 구할 수 있다. 거리 풍경과 빛바랜 책들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오브제로도 활용되는데, 이 국내 최대의 헌책방 골목에 인앤빈⑫이라는 커피집이 생겼다. 아메리카노 2500원.

 

대청로를 따라 직진하면 부산근대역사관⑬(부산시기념물 49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였고, 해방 뒤에는 미국문화원이었고, 1982년에는 방화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부산미문화원 불, 불순분자가 방화’(1982년 3월19일)와 ‘부산미문화원 역사적 반환’(1999년 4월30일)이 1면 머리기사로 걸린 <부산일보>가 걸렸다. 세월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전시물의 주종은 태평양전쟁 말기 발행된 전시채권, 일본에서 발행된 <최신 조선이주 안내> 등 한국과 외세의 관계를 보여주는 물품들이다.

 

»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우러지는 쇼핑 골목이다.

국내 최대의 헌책방 골목 탐방까지

이제 국제시장 골목을 헤맬 시간이다. 깡통골목⑭은 수입 구제품들이, 가방골목은 가방이, 신발골목은 신발이 주인이다. 미술의 거리⑮에는 화랑들이 모여 있다. ‘남포동의 몽마르트르’라고 하기엔 과분할지 모르나 충분히 둘러볼 가치가 있다. 아리랑거리(16)는 부산 사람들이 먹자골목이라고 한다. 당면국수, 비빔국수(이하 2천원), 부산오뎅이 든 충무김밥(3천원)이 주메뉴다. 피프(PIFF) 광장(17)을 지날 때는 바닥을 눈여겨보라. 빔 벤더스, 모흐센 마흐말바프, 허우샤오셴, 장이머우, 기타노 다케시, 제러미 아이언스, 유현목… 사람들은 이름을 읽어보고, 손바닥을 맞춰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워킹투어는 자갈치시장(18)에서 끝냈다. 태극도마을 뒷산으로 해가 저물었다. 여기까지 약 5㎞ 걸었다.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워킹 쪽지

◎ 태극도마을 들머리인 감정초등학교까지는 토성동역에서 2번 서구 마을버스를 탄다. 6~12분마다 다닌다.

남포동 먹자골목 등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재밌을 것 같다. 18번 완당집(19)(051-245-0018)은 완당(중국식 만두) 면, 완당 우동을 판다. 국물 마시듯 후루룩 완당을 먹는다. 4천원. 피곤해진 몸의 원기를 보충하려면 부산근대역사관 뒤편의 ‘좋은쌀로 밥짓고’(20)(051-248-8500)도 좋다. 돌솥 정식 1만2천원, 한정식 1만7천원.

 

 

 

 

부산=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