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시작땐 아득한 꿈… 사전 하나에 인생을 걸었죠"
세계 최대 한자사전 펴낸 단국대 연구원들
세계 최대 규모의 한자(漢字)사전인 단국대판 '한한(漢韓)대사전'이 30년 만에 완간된다. 단국대는 "총 16권 중 마지막권 인쇄만 남았다"고 밝혔다. 수록 글자는 5만5000자로 310억원이 들어갔다.
본지 10월 2일자 보도
1976년 12월 30세 청년이 서울 땅을 밟았다. 경남 합천군 조계면 유하리 서당에서 20년간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한 대학의 문고(文庫) 정리 일을 맡고 상경한 길이었다. 청년은 1년이 조금 지나 신문 광고를 봤다. '한한대사전을 편찬할 전문위원을 공모함.' 단국대 동양학연구소가 낸 공채 안내문이었다.
"1978년 5월이었어요. 그때 공채 1기로 시험보고 연구소에 들어왔지요. 5명 뽑았는데 경쟁률이 11대1이었어요." 이제는 환갑이 지난 허호구(62) 수석연구원은 "내 인생을 바칠 만한 사업이라는 생각에 응시했다"고 했다. 허 연구원은 사전 편찬 30년 내내 참여한 유일한 학자다.
본지 10월 2일자 보도
1976년 12월 30세 청년이 서울 땅을 밟았다. 경남 합천군 조계면 유하리 서당에서 20년간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한 대학의 문고(文庫) 정리 일을 맡고 상경한 길이었다. 청년은 1년이 조금 지나 신문 광고를 봤다. '한한대사전을 편찬할 전문위원을 공모함.' 단국대 동양학연구소가 낸 공채 안내문이었다.
"1978년 5월이었어요. 그때 공채 1기로 시험보고 연구소에 들어왔지요. 5명 뽑았는데 경쟁률이 11대1이었어요." 이제는 환갑이 지난 허호구(62) 수석연구원은 "내 인생을 바칠 만한 사업이라는 생각에 응시했다"고 했다. 허 연구원은 사전 편찬 30년 내내 참여한 유일한 학자다.
- ▲ 한한대사전 발간 대장정의 마무리를 앞두고 경기도 용인 연구실에 모인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사람들. 허호구 수석팀장(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윤내현 소장(앞줄 가운데) 김윤우 연구원(앞줄 오른쪽), 김승회 팀장(뒷줄 왼쪽), 정동화 연구원(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등 여러 학자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을 이 사전에 바쳤다. ☞ 동영상 chosun.com / 용인=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공채 3기 시험을 앞둔 1980년 신군부가 휴교령을 내렸다. 시험 볼 교실 구하기가 어려워 공채를 쉬자는 말도 나왔으나 겨우 한 여고 교실을 빌려 3기를 뽑았다.
그때 들어온 김윤우(55) 연구원은 원래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은 이상과 현실의 끝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최대한 공을 들여 더 훌륭한 사전을 만들려는 욕심과시간·돈의 압박이 날마다 부딪혔지요. 사전 편찬이 토목공사도 아닌데, '왜 빨리 못하느냐'는 독촉을 받고 '설렁설렁 해서 늦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때 1.2까지 나왔던 김 연구원의 시력은 30년 가까이 한자만 들여다보다 0.5 정도로 떨어졌다.
시작 당시만 해도 한한대사전은 가당치 않은 백일몽이었다. 먼저 연구원 20명은 어휘를 채집할 기본 문헌 선정에 들어갔다. 규장각에 있는 옛 문헌을 찾으니 수백 종이 쏟아졌다. 허 연구원은 "글자 채록하는 데만 백 년은 걸리겠다 싶어 한숨이 나왔다"고 말했다.
먼저 문헌을 129종으로 추렸다. 삼국유사·경국대전·조선왕조실록 등이 들어갔다. 산더미 같은 고전을 뒤지며 원고를 쌓아 나갈수록 시간과 경비는 불어났다. 중국이 개방되며 쏟아져 들어오는 새 자료가 방대해 작업량이 더 늘어났다. 인원 확충도 어려웠다. 고문을 완독할 수 있는 최고 인재를 구하다 보니 7명만 일한 적도 있다.
급한 대로 당장 쓸 수 있는 사전을 먼저 내놓기로 했다. 한한대사전의 일부로 '한국한자어사전' 4권이 먼저 나왔다. 1996년에 완간한 이 사전은 한국인이 독특하게 쓰는 한자 어휘를 뽑아 엮었다.
한국한자어사전 완간 직후 한한대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첫 권은 1999년에 나왔다. 일본에서 나온 대한화(大漢和)사전, 중국의 한어(漢語)대사전, 대만의 중문(中文)대사전을 참고했다. 당시 국내 학자들은 대한화사전을 많이 봤다. 그러나 전범으로 여겼던 대한화사전을 펴든 연구원들은 사색이 됐다. 해석도 틀리고 출전도 잘못됐고 구두점이 안 맞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시간을 단축해보려고 일본어 전공자에게 사전 번역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번역물을 보니 도저히 쓸 수 없더군요. 결국 다 폐기하고 하나하나 물어가며 일일이 다시 훑었습니다." 김 연구원의 설명이다.
아찔한 고비도 있었다. 2005년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사전 편찬작업을 일시 중지하자는 주장이 학내 일부에서 제기됐다. 그해 10월 3일 연구원들은 비상 회의를 열었다. "우리가 희생합시다." 연구원들은 휴일을 반납하고 야근과 특근을 자청했다.
완간 예정일을 석 달 앞두고는 매일 새벽 2~3시에 퇴근했다. 인쇄 공정을 앞당기려 공장에 나가 살다시피 했다. 필름을 펴놓고 맨바닥에 엎드려 깨알 같은 글자를 낱낱이 점검했다. 그렇게 해서 3년 만에 나머지 7권이 다 나왔다.
10년 전 합류한 정동화(42) 연구원은 "시작할 때는 '제대할 날이 올까' 싶은 이등병 심정이었다"면서 "30년 땀과 열정이 이제야 날개를 달게 돼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 세계 최대 규모의 한자사전인 한한대사전 완성을 앞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의 허호구 수석팀장이 7일 한한대사전 대장정의 의미를 말한다.
/이진한 기자
입력 : 2008.10.11 03:19 / 수정 : 2008.10.1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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