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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경계에서

by 진 란 2009. 2. 20.

      인도와 차도의 경계석을 따라 설치된 은색 스테인레스 파이프라인이었다.
      파이프의 아래 부분을 내려다 보니

      지나가는 차들에 의해 흙탕물로 심하게 오염된 곳이 보였다.

       

       

      그 곳에 이끼가 끼고, 이끼 위에
      풀씨가 날아와 더러 뿌리를 내리기도 하였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더 많은 풀씨가 쇠파이프에 뿌리를 내렸다.

      쇠파이프에 내리는 뿌리라니!

       


      척박한 곳,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도
      생명은 피어나고 있었다.
      제법 꼴을 갖춘 풀들이 쇠파이프 여기저기 자랄 무렵
      풀의 끈질긴 생명력 앞에서 나는 탄성을 질렀다.

      고난을 이겨낸 풀의 영웅들이라고 노래하였다.

       

       

      뜨거운 여름을 건너가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난의 벽을 넘어가는 승리자들을

      나는 다만 찬양하였다.  


       

      쓰러지고 무너진 것들의 너머에

      뜨거운 희망은 피어난다고도 말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인도와 보도의 그 모진 경계로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고난을 이겨낸 풀의 영웅들을 잊고 지냈다.  


       

      긴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와서,

       

      다시 영웅들의 곁으로 돌아갔을 때
      나의 성급한 예찬과 탄성을 비웃으며 그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을 한주먹씩 움켜쥐고 애처롭게 매달린 무덤들.
      나는 무엇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감탄했던가.
      나의 예찬은 힘이 되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 뱉았던 예찬의 옹졸함만 남았다.


       

      그러나, 또, 어쩌면,
      작은 풀의 영웅들은 이미 저 쇠파이프 깊숙한 곳을 파고 들어가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뜨거운 기억을 안고 선 저 파이프 라인의 깊은 속을 모른다면
      또한 함부로 반성하지도 말 일이다.

       

      순간을 놓치지는 않되


       

      때로 무심함의 깊이로 생의 무거움을 보아야겠다.
      경계에서 나만 들떴고 나만 무심하였으므로.
      고난 속의 생명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함부로 그 승리를 예찬하지 않겠다.

       

       

      사진글출처

      http://blog.ohmynews.com/kimhoa97/rmfdurrl/224190

      http://blog.ohmynews.com/kimhoa97/22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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