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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불황, 그리고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

by 진 란 2008. 11. 4.

"불황, 그리고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한국인이 작사, 작곡한 최초의 대중가요이자 8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 받는 '황성옛터'입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에둘러 표현한 구슬픈 곡조로 대중들의 심금을 울린 가요지요. 당시 이 노래를 부른 배우 겸 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가 98세의 나이로 생존해 있다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인기 절정일 때 사랑 때문에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연희전문학교 학생과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부친의 반대에 부딪혀 결혼을 할 수 없자 파고다공원에서 손목을 긋고 동반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부친은 그녀가 가수 출신임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도록 '함구령'을 내리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2남7녀의 어머니로서의 삶에만 충실했습니다. 큰아들도 대학에 들어와서야 어머니가 '황성옛터'를 부른 가수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11월 첫 월요일 아침에 이애리수 여사의 이야기를 꺼내 든 것은 지금처럼 불황일 때는 부부간의 애틋한 정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가을은 여자도 남자도 방황하는 계절입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가을철에는 남성호르몬이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는 계절이기에 방황하는 남편들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특히 불황이 찾아온 2008년 가을은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에게 더욱더 쓸쓸함을 안겨줄 것입니다.

10여년 전을 기억하십니까. 졸지에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양복을 입고 산에 몰린 적이 있습니다. 등산로 입구엔 양복을 맡기고 등산화와 등산복을 빌릴 수 있는 이색 대여소도 생겼습니다.

지금 그 때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가정의 역할이 큽니다. 선문대 송희식 교수는 < 대공황의 습격 > 이란 책을 통해 불황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지침을 소개했는데 그 중에 부부관계를 포함해 가족간의 유대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작가 이은주(63)씨가 펴낸 한국의 명사 부부 50쌍의 초상을 담은 사진집 < 부부 이야기 > (오픈하우스)는 그런 의미에서 뜻 깊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이은주씨는 명사들의 삶을 렌즈에 담고 명사들이 직접 부부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글을 쓰게 했습니다.

매일 아침 5시, 침대에 걸터앉아 손잡고 기도하는 송자(전 연세대 총장)·탁순희(의사)씨 부부, 두 손을 다정하게 잡고 거리를 걷고 있는 배상면(국순당 회장)·한상은씨 등 명사들의 곰삭은 애정이 가득들은 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그들이 직접 쓴 부부생활 얘기는 더욱 감동을 줍니다. 가야금 명인인 황병기씨 와 결혼한 소설가 한말숙씨는 "좋았다가 미웠다가, 귀찮다가 고마웠다가 하면서 50여년을 지루한지 모르고 살아왔다"고 결혼생활을 얘기했습니다.

연극 연출가 김정옥(76)씨의 부인 조경자(68)씨는 "그 동안 여러 번 이혼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돈이 없어서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말했습니다."4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이혼 값 떼먹겠어? 안심하고 외상으로 이혼해." 이들 부부는 노년에 탱고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처럼 불황도 깊어갑니다. 그리고 정말 우울할지도 모르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때는 가정에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부부생활이 행복해야겠지요. 좋았다가 미웠다가 귀찮다가 고마웠다가 하는 게 부부랍니다. 삶의 연륜 속에 담겨있는 속 깊은 사랑을 느끼십시오. 그걸 느끼면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경제'를 달성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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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강혁 편집국장 kh@ermedia.net
아시아경제 | 2008.11.03 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