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에게 드립니다ㅡ옥봉이씨(玉峯李)氏
近來安否問何如
근래안부 문하여
요즈음의 안부를 묻사오니 어떠하온지요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 창첩한다
달빛이 비단창으로 비춰오면 저의한이 짙어져요
若使夢魂行有跡
약사 몽혼 행유적
만약 꿈속의 혼백이 걸어서 발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便成沙
문전 석로 편성사
문 앞 돌길이 모래가 다 되겠소
<감상1>-오세주
작가 玉峯은 趙瑗의 小室로서 조선시대 여류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시에서는 여성 특유의 정서가 묻어나고 있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섬세한 정서가 용솟음치고 있다. 이 시에서도 여성 특유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를 살펴보자. 정황으로 보아 옥봉의 임이 다녀간 지가 무척 오래된 것 같다. 이제 올 때도 되었는데, 아니 올 때가 훨씬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내가 싫어졌는가. 여인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시를 지어서 말이다.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그것은 상대편에게 더 강하게 어필될 것이다.
첫째 구절에서 옥봉은 무슨 일이야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둘째 구절에서는 임에대한 그리움이 특히 어느 때 짙어지는가를 적고 있다. 그녀가 비단으로 곱게 장식한 방에 홀로 있을 때, 달빛이 은은히 들어오면 임을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에 한이 짙어진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셋째 구절에서는 그리움의 정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내가 너무 임을 그리워하여 꿈에서도 인기척만 나면, 나의 영혼은 임이 오는 것이 아닐까하여 방에서 문까지 마중 나갔습니다.
그런데 내 영혼이 임을 만나려고 꿈에 방에서 대문으로 마중나간 것이 너무나 여러 번이었습니다. 만약 내 영혼에 발이 달렸다면 방과 문 사이에 깔아 놓은 돌길이 내 발길에 모래가 다 되었을 것이라고 그 심정을 간곡히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애절한 여인의 그리움인가. 얼마나 처절한 여인의 기다림인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여인의 정한이 짙게 묻어 있다
01-댕기풀이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숙원이씨(淑媛李氏)의 시집. 목판본. 옥봉은 그의 호이다. 승지를 지낸 조원(趙瑗)의 부실이다. ≪가림세고 嘉林世稿≫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가림세고≫는 조원·조희일(趙希逸)·조석형(趙錫馨)의 3세의 시문을 합하여 상중하 3편으로 만들고, 권말에 옥봉의 시를 부록하여 1704년(숙종 30)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옥봉집〉의 서두에는 “시문에 능한 시들이 많으나 흩어져 없어진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여기 권말에 붙여둔다.”고 부록한 뜻을 밝혔다. 말미에는 조정만(趙正萬)의 발문이 있다. 시집 속에는 오언절구 10편, 칠언절구 14편, 오언배율 4편, 그리고 칠언배율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영월도중 寧越道中〉·〈증운강 贈雲江〉·〈칠석 七夕〉·〈규정 閨情〉·〈고별리 告別離〉 같은 시는 인구에 회자되었다. 〈위인송원 爲人訟寃〉이라는 시는 이웃에 소도둑으로 몰린 사람을 대신하여 지어준 시이다.
“세숫대로 거울 삼고 물 발라 기름 삼아 머리 빗을지라도 내가 직녀가 아닌데 그대가 어찌 견우가 되리.”라고 하여 그녀의 재치를 보여 준다. 이 중에서 11편은 ≪황명열조시집 皇明列朝詩集≫에 수록된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11편 중에서 〈반죽원 斑竹怨〉과 〈채련곡 採蓮曲〉은 이달(李達)의 시집에도 실려 있는 작품이어서 옥봉의 작이라고 하기에 의심스럽다.
〈옥봉집〉은 ≪조선역대여류문집 朝鮮歷代女流文集≫에는 그 전 작품을 활자로 수록하였다. ≪역대여류한시문선 歷代女流漢詩文選≫에는 전역하여 수록하였다. ≪금잔디≫(金億)에서는 12수, ≪꽃다발≫(金億)에는 11수를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권250), 嘉林世稿, 竹陰集, 逸士遺事, 금잔디(金億), 꽃다발(金億), 朝鮮歷代女流文集(閔丙燾, 乙酉文化社, 1950), 歷代女流漢詩文選(金智勇, 大洋書籍, 1972), 韓國女性文學史硏究(金智勇, 首都師大論文集 5, 1969).(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랑에 꺾인 애달픈 시심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승지 조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원을 아느냐"는 물음에 조희일이 부친이라 대답하니, 원로대신은 서가에서 <이옥봉 시집>이라 쓰인 책 한 권을 꺼내보였다. 조희일은 깜짝 놀랐다. 이옥봉은 아버지 조원의 소실로 생사를 모른 지 40여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옥봉의 시집이 어떻게 해서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게 되었는지 조희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로대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40년 전쯤 중국 동해안에 괴이한 주검이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나 흉측한 몰골이라 아무도 건지려 하지 않아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로 떠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시켜 건져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벗겨 냈더니 바깥쪽 종이는 백지였으나 안쪽의 종이에는 빽빽이 시가 적혀 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씌어 있었다. 읽어 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들이라 자신이 거둬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온몸을 시로 감고 죽은 여인 이옥봉. 이옥봉은 조선 명종 때 충청도에서 왕족의 후예 이봉지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 를 보인 옥봉은 신분의 굴레로 첩살이 밖에 못함을 알게 되자 결혼에 대한 꿈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옥봉은 장안의 내로라 하는 명사들과 어울리며 단종 복위운동에 뛰어들었고, 곧 시귀나 짓는 선비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옥봉은 조원이란 선비를 사랑하여 첩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첩살이가 싫어 결혼을 거부했던 그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약해진 모양이다. 한데, 조 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앞으로는 절대 시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했다. 여염의 여인이 시를 짓는 건지아비의 얼굴을 깎아내리는 일이 라면서. 옥봉은 맹세했다. 자신의 시는 외로움과 허망함의 발로였으니 지아비를 얻으면 시를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목사에게 손을 좀 써달라 했다.
사정을 들어본즉 아전들의 토색질이 분명했다. 옥봉은 파주목사에게 시 한수를 써 보냈고, 산지기는 무사히 풀려났다. 그러나 이 일로 옥봉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내친 것이다.
뚝섬 근처에 방 한칸을 얻어 지내며 옥봉은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조원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10년 가까이 시혼을 억눌러오다가 산지기를 위해 한수 지어준 일로 쫓겨나다니. 옥봉으로서는 야속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으리라. 옥봉은 애통한 마음을 담아 시를 읊고 또읊었다. 더이상 참을 까닭도 없었으니까.
(平生離恨成身病)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衾裏泣如氷下水) 이불 속 눈물이야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 밤낮을 흘러도 그 뉘가 알아주나
조원을 단념한 옥봉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중국으로 가 마음껏 시심을 펴보려 했나 보다. 그리고 자신의 시로 몸을 감고 낯선 바다에 뛰어들었나 보다. 여성을 가정 내 존재로 규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는 여성은 천시하거나 사회적 보호밖에 두었던 조선시대의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한 셈 이다. 사랑을 위해 시를 포기했지만 자신의 삶은 결국 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침묵으로 웅변하면서.
(출처 : 한겨레 21. 1997. 7. 17 / 박은봉/ 역사연구가 )
1544(중종 39)∼1595(선조2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옥(伯玉), 호는 운강(雲江)
1575년 정언이 되어 이해 당쟁이 시작되자, 그에 대한 탕평의 계책을 상소하여 당파의 수뇌를 파직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이조좌랑이 되고, 1583년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1593년 승지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또 자손의 교육도 단엄(端嚴)하였다.
저서로는 《독서강의 讀書講疑》가 있으며, 유고로는 《가림세고 嘉林世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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