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있는風景

[스크랩] 길, 길, 길

by 진 란 2005. 9. 7.


무작정 걷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걷고 걷고... 산을 넘고 강도 건너고

가슴을 풀어헤친 벌판도 건너고 나서

또다시 걷고 싶어집니다.

무진 슬픈 적도 있었고 또 그만큼 기뻤던 적도 있었지요.

그러한 기쁨과 고통과 아픔과 후회들을 길에다

하나씩 던져버리고 싶어집니다.


 

산은

긴 그림자로 길을 따라가다 주막에 이르러 서성이다

기막힌 술맛을 보지도 못하고 다시 산으로 들고 있습니다.

산에 함께 있는 산식구들을 떠올려서였지요.

산노루와 토끼와 나무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입니다.

그들이 길에 마음을 빼앗긴 산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 털어 버려 붉게 물든 황톳길을 다시 걸어가는 것이지요.

산다는 건 뭔지 모를 그리움 같은 것에 끌려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달빛이 유난히 밝은 날에는

까닭 모를 그리움으로 가슴이 멍해질 리가 있겠어요.

 




그리움을 찾아간 흔적이 고스란히 길이 되는 것인가 봅니다.

가슴도 태우고 열정도 태워 풀 하나 자라지 않는 길에는

눈물도 맑았지요.




간이역 벤치에 앉아 열차가 쉬지 않고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삶은 잠시 허랑해지지요.

때로는 주변의 일들도 사소한 것들은

열차처럼 그냥 스쳐 지나갔으면 할 때가 있거든요.

많이 걸어왔지요.

돌아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이제는 압니다.

삶에는 후퇴가 없더군요. 퇴로 없는 미로가 인생길이었지요.

가도가도 안내자 없는 길이었지요.




길가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그 밑으로 풀이 푸르게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팔랑거리며

손을 흔들 때에도 소나기가 폭죽처럼 쏟아질 때도

나는 길에 있었지요.

키 작은 풀들은 낮은 곳에서 꽃을 피웠지요.



 

걷는다는 건 진정 막막한 작업이었습니다.

세월도 소나기와 같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중년이란 옷을 입고서도 무언가 어색해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어렸을 적에는 중년의 세대를 보면 다 이해되고

고요한 호수처럼 마음도 안정되는 줄 알았지요.

중년이 된 지금 나 자신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았지요.

더 많이 흔들리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갈 길이 막막한 건 아직도 마찬가지고

삶에 어설픈 것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더 걸으면 익숙해질까 생각했지만

끝까지 흔들리며 갈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 인생이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가끔은 길을 잃어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어야지요.

예상치 않은 그 곳에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

그리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합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우연과 광기가 적지 않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겠지요.

우연이 만든 만남으로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도 하거든요.

삶은 우리를 속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난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사실 예상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바꿀 수 있습니다.

삶의 길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내 인생의 남은 날 중 첫날이 오늘이라더군요.

또한 살아온 날들 중 가장 경험이 많은 시간이 오늘입니다.

결국 모든 일은

바로 오늘 실행해야하는 것이었지요.

 



.
가로수가 그림자로 무단으로 건너는 길에는

바람이 슬쩍 스치며

떠나라, 떠나라,떠나라.

길을 열어 내어 놓고 있습니다.

지금, 지금이 아니면 오늘, 오늘이 아니면 이 달에

도전해보라는 소리 요란합니다. 

 

-글, 신광철-










달팽이는 짧은 사랑도 길게 늘려 놓는다고 우기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글, 신광철


 

출처 : 시인과 함께하는 지구여행
글쓴이 : 소나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