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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스크랩] 기억을 걷는 시간/진란詩

by 진 란 2015. 9. 1.

20150829 오후 7시
인사동 시가연 공연
작곡:박제광
노래:박제광
시:진란




기억을 걷는 시간


진란



경복궁 서편 담장 근처의 은행나무들은

몽땅, 이브 몽땅의 가을이다

둥근 뜨락의 우람한 노목은 언제쯤

황금 동전을 짤랑거릴지,

은행나무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느리고 지루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황금의 은행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후 3시는 그리도 단풍을 희롱했던지

가을, 짙은 뜨락에 시나브로 낙엽은 쌓이고

성급한 누군가에 치워져서는

모퉁이의 자루에 담겨 흐느끼는데

가을 뜨락에 쓰러져 우는 게 나만은 아니었지

쑥부쟁이들 화라락 피었을 때도 한참 이뻤는데

시들어가는 꽃잎도 고풍스러워지는 시간,  그렇게

가을향 한잔을 마시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식당에는 아직도

메밀꽃이 피어있다 듬성듬성, 웅성웅성


내 집으로 가는 길인데 어디 가십니까?

사복경찰의 질문에 척척하던 나의 두 귀는

마른 꽃처럼 오래오래 버스럭거렸다


-시집<혼자노는숲>

출처 : 혼자쓰는詩
글쓴이 : 진담과농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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