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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는 숲

나의 삶, 나의 노래

by 진 란 2011. 10. 2.

나의 삶, 나의 노래

 

■ 나에게 있어 시란


 


나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살면서 일상에서 부딪히고 깨어지는 경험과 고뇌와 불협화음 같은 것으로부터 나 자신에게 숨을 쉴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희노애락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시를 씀으로 해서 나를 비추어보고, 시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자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시는 내 삶의 비상구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의 울림을 글로 옮겨놓았을 때 비로소 내 육체도 평안해질 때도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 일기를 쓰듯이 시는 내 살아온 날의 흔적들이고 내 영혼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기록이었으며, 생활을 넘어서 자유를 향한 날개짓이었던 것이다. 시는 내 삶의 기록과도 같았지만 시를 위해서만 시를 쓸 수 있었던 순간들은 시라는 거울 속에 비춰지던 나를 행복하게 해주던 자존심이기도 했었다. 시는 그렇게 내게는 거울이었고 비상구였던 것이다.


 

 

■ 시를 쓰게 된 동기와 습작기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책장 앞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얌체 같지만 그 때 내가 사귀는 친구는 자기 집에 책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친구네 집 책을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친구를 사귀었고 용케도 책 있는 친구를 어떻게 그리 잘도 알아서 사귀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책 읽는 욕심은 남달랐었고 닥치는 대로 읽어대는 잡식성이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학교 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에서 자율학습이 아닌 책을 읽는 일로 밤 늦도록 머물기도 했었다.

 

 


최초의 시를 쓴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께서 일기장 검사를 하시다가 일기란 꼭 산문으로만 쓸 필요는 없다. 동시를 써도 되고 너희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쓰면 그게 좋은 일기쓰기라고 말씀 하셨다. 그래서 쓴 시가 <포도나무>라는 동시였는데 일기장검사를 하다가 선생님이 그 시가 좋다고 칭찬하셨고 어딘가에 낸다고 하셨다. 그 후로 내 일기장은 동시로 가득 찼고 간간이 학교 도서관이나 교실 벽에 내 동시가 액자로 걸리는 일들이 발생하고는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습작은 계속 이어 졌고, 대학 축제때는 학보에서 모집하는 백일장에 당선된 기억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이상하게도 어디에 응모하려고 법석을 떤 일은 없었다. 늘 외부의 주문에 의해 시를 썼고 그것이 상을 가져다 주고는 했는데 학창시절에는 제법 시를 잘 쓰는 아이로 알려졌던 것 같다. 이러한 경험들이 스스로에게 시를 쓰는 사람, 나아가 시인이라는 당돌한 인식을 가지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기도 하였고 오만하기도 했던 때라 쓴 웃음이 절로 난다.


 

 

그 후에 이십여 년 동안 시를 쓰고자 함도 없었고 쓰지 않다가 불혹의 목전에서 다시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스승도 없고 시에 대해서 배운 바도 없고 그저 시 읽는 일이 즐겁고 쓰는 일도 좋아하고 그래서 시 쓰기를 다시 시작한 셈이다.


 


■ 시가 오는 통로


 


좋은 음악을 듣고 있을 때나 어딘가 낯선 곳에 여행 갔을 때나 혹은 어떤 어려운 일을 겪고 난 후에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시로 쓴다. 그러다보니 몇 년 전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한 후에는 꿈에서도 시를 쓸 때가 있었다.

 

 


아...... 이것은 적어두어야겠다 싶어서 잠결에 메모를 해두기도 하였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순간에 적어서 쓴 시가 아주 괜찮은 시가 써졌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행 다니다가 떠오른 시상이나 낯선 곳에 갔을 때 느끼는 것들, 혹은 어떤 고뇌 끝이나 뼈아픈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 떠오른 것을 쓰기도 한다. 어떤 시는 단숨에 써지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메모를 해둔 것을 몇 번이고 퇴고를 하고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처박아두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단어 하나에 걸려서, 혹은 길을 가다가 툭 치고 떠오르는 시상도 있어서 메모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 메모한 것을 마음에 두고 다니다가 내 속에서 간절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차고 넘칠 때에는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꼭 써야만 마음이 편안하여졌다. 정말 안 써질 때에는 아주 오랫동안 단 한 줄도 못쓸 때도 있었으니 시라는 것은 자기 안에서 어떤 간절함이 차고 넘칠 때에 써야 좋은 시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사는 일이 너무 힘이 들고 어려워도 시를 쓸 수 없고, 너무나 모든 게 만족한 상태에 있어도 시는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는 죽지 않을 만큼의 아픔과 불만족한 환경과 여건에서 더 열정적으로 써지는 것 같다. 

 

요근래에는 시를 쓰는데 도움을 받게 되는 장난감이 하나 생겼다. 남편이 생일선물로 장만해 준 카메라로, 렌즈가 무겁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관심이 가는 어떤 대상에 앵글을 맞출 때 시의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런저런 재미로 사진을 찍는 즐거움에 빠져있는 중이다.

 


 

 

■ 창작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를 쓰는 일이 즐거워야 하고 시를 쓰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시를 쓰려는 열정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시라는 것은 자기가 경험한 것 이상을 넘어서서 쓸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과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그저 내 마음에 넘쳐나는 감성만 쓴다고 해서 그게 시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여행과 좋은 책을 많이 읽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시인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흔히 문예창작과나 시 창작교실을 통해 시를 배우고 익혀서 등단도 하고 시집도 내고 발표지면을 얻기도 하지만, 진정한 시는 배우고 익혀서 기교와 매끄러운 형태만 잡혔다고 감동을 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단의 그룹성, 계보(학연)등에 발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갈고 닦는 힘이 된 듯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서툴고 어눌한 시 쓰기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물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고 따스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안목, 흐름과 사상을 자신의 정서에 담을 수 있는 경험, 자신만의 독창적 어휘력을 갖는 일, 현학과 도취에 빠져 자신의 감정을 과다 노출하는 경향, 이러한 것들은 앞으로의 시 쓰기에 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겸손하게 자신을 깎고 다듬는 자세를 가지고 내면에 잠재된 문학적 자질을 더 끌어내야할 것이다. 좋은 시를 써도 좋겠지만 좋은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첫 시집을 내면서 너무 떨리고 부끄러웠던지 넋두리가 길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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