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묻다
진란
길 위에 서 있을 때, 나 또 하나의 길이었다
꽃을 바라보고 그를 불러줄 때, 나 또한 꽃이었다
바람 밖으로 가열찬 마음 밀어낼 때에도 난 바람이었다
햇살 받쳐주던 푸른 잎새들이 내 머리에 머물 때
그 잎새 밖으로 난 길을 따라올라 구름으로 가벼워지고
먹장구름 기대어 무거워질 때에는
함께 둥둥거리며 뜨거운 불볕, 그 하늘에서 시렁거렸다
한낮 반짝, 한번씩 소나기로 쏟아지기도 했다
비워지고 가벼워지고 길 위에 다시 서있으면
어김없이 꽃들은 꽃 속으로 나를 숨어있게도 하였다
치렁거리는 이 기억이 한때는 설레임이었고
구석으로 우우우 몰리던 때 이른 나뭇잎들은
꽃잎과 함께 바스락거리며 길 위의 바퀴처럼 눈부시다
어쩌다 나는 길이 되어 있는지, 다시 누군가의
길과 맞닿아야 하는 수레의 흔적을 굴러가는지
길 위에서 길을 꿈꾸는 길치, 그 부림의 날을 바라노니
가멸한 마음으로 길을 가고 또 오고 또 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