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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봄이 오면

by 진 란 2009.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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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스--정가네님


호랑버들--주이님


차꽃--어화둥둥님


복수초--얼음새꽃님
너도바람꽃--비바리님

겨우살이--가침박달님


고사리삼--늘봄님


동백--토담님


앉은부채--운곡야화님


분홍노루귀--플레이아데스님


홍매화--여행나라님


개불알풀--수민님


변산바람꽃--모든님


제주수선화--별꽃


삼지닥나무--하늬바람님


별꽃--둥굴레님


복수초--마파람님


변산바람꽃--꽃내님


붓순나무--달희님


냉이--달못님


만첩홍매--이누스님


황새냉이--사랑초님


동백꽃--현옥님


길마가지--산으로님


갯버들--비단옷님


복수초--모니카님


매화--놀부영감님


크로커스--모데미님


춘난--여백님


봄꽃향유--청로님


수선화--파란하늘꿈님


아마릴리스--수니님


인삼벤자민--민서님


노루발--天知님


노루귀--달빛매화님


난꽃--사랑나무님




봄, 숲, 별, 꽃, 아침, 이슬, 처음, 미소, 나무, 노고지리……. 
제가 사랑하는 글자입니다. 
이렇게 글자를 써놓고 보니 이 세상은 사랑스럽고 멋진 곳입니다.
아직도 나뭇가지에 새잎이 나지 않는 이른 봄날, 멀리 숲을 바라보면 가지마다 물이 올라 복숭아
꽃이 핀 듯 발그레합니다. 
"아휴......! 조것 좀 보아, 조 볽고족족한 나뭇가지 좀 보아. 얼매나 사랑스럽고 이쁘니? " 
라며 지인은 탄성을 지르곤 했습니다. 그런 지인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남들은 꽃피는 봄을 사랑한다지만 저는 꽃피기 전의 단장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더 사랑합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긴 어둠의 시간을 건너온 꽃의 마음이 보이니까요. 
천의자락 휘날리며 북상하는 봄의 여신을 맞이하러 제주도에 갔다왔습니다. 
제주도는 신생의 연둣빛 봄기운으로 가득했습니다. 
유채도, 매화도, 동백도, 수선화도 활짝 피었고, 풀밭마다 작은 들꽃이 소복소복 피었습니다.
숙소를 정하자마자 '놀멍 쉬멍 걸으멍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제주 올레길부터 걸었습니다. 
제주도 방언에 '질레'는 큰길을 말하며 '올레'는 작은 골목길을 말합니다. 
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올레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제주의 풍광을 바라보며 
자신을 성찰하는 새로운 여행입니다. 
그 다음 날은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며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내렸습니다.
김영갑! 
서울에서 살다가 1982년 제주도의 풍광에 흘려 20년간 제주도 중산간 들녘을 필름에 담는 일에 
전력하다가 루게릭병으로 48세에 생을 마친 전업 사진작가.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 폐교에 2년여의 공력을 기울여 국제적 수준의 갤러리를 만든 사람.
갤러리 입구를 지나면 제주도를 상징하는 검은 현무암을 둥글게 혹은 길게 쌓았고 돌담 사이에
나무와 억새, 들꽃을 심은 기막히게 예쁜 정원이 나옵니다. 자신의 영혼을 뿌리째 뒤흔든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려 혼신의 힘으로 만든 정원입니다.
돌담 아래 활짝 피어난 수선화는 주인을 잃은 슬픔에 젖어 일제히 꽃숭어리를 밑으로 떨구고 눈물
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수선화 얼굴을 살짝 들어서 눈을 맞추니 매화같은 향기가 가슴을 두드립니다.
전시실의 사진은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사진은 파노라마(6*17)로 인화한 사진입니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생명 가진 것들의 외로움과 평화'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김영갑의 생명을 건 지독한 제주 사랑이 스며있습니다.
우도에서도 검은 돌담 아래 비바람에 흔들리며 피어있는 수선화를 보았습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은 택시를 불러서 오전 관광을 했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산방산 일대에 수선화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수선화란 꽃이 어떻게 생긴 꽃입니까?"하고 물어서  참 놀랐습니다.
"저는 이번 제주도 여행의 목적이 추사적거지와 수선화를 보는 겁니다. 추사적거지가 올 연말까지
수리 중이라서 참 허탈합니다. 수선화라도 맘껏 보고 수선화 알뿌리를 사가고 싶어요."
"아, 살 것 까지 뭐가 있어요? 도로변에 있는 것 몇 뿌리 캐면 되지요. 캐서 육지로 가져가면 혼자
볼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구경도 시키고 나누어 줄 수도 있으니 좀 좋아요?"
하면서 기어이 산방산 근처 수선화를 몇 포기 캐어서 비닐주머니에 담아 주었습니다.
산방산을 둘러보고 수리 중이라는 대정읍 '추사적거지'에도 들렀습니다.
초가 앞은 포클레인으로 땅을 깊게 팠고 추사기념관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초가의 안채(안거리), 바깥채(밖거리), 별채(모거리), 통시, 방앗간, 대문간, 정낭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검은 돌담 아래 추사가 그토록 사랑했던 수선화가 묵향을 풍
기면서 해사하게 웃고 있는 것입니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만나는 그 행복함이라니……. 
碧海靑天一解顔    푸른 바다 푸른 하늘 한결같이 웃는 얼굴
仙緣到底未終慳    신선의 맑은 풍모 마침내 아끼지 않았어라
鋤頭棄擲尋常物    호미 끝에 버려진 심상한 이 물건을
供養窓明几淨間     밝은 창 정갈한 책상 그 사이에 공양하네.
                                             수선화 / 추사 김정희
제가 제주도에서 본 수선화는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금잔옥대'라고 부르는 옥같은 6장의 꽃잎 위에 황금빛 술잔같은 꽃잎이 둥글게 놓여있는 모양
이고, 다른 하나는 풍성한 흰 꽃잎 위에 여러 개의 짧은 노란 꽃잎과 긴 흰 꽃잎이 겹겹이 포개어진 
모양입니다. 짧은 노란 꽃잎은 암·수술이 변한 것으로, 이것이 원래의 제주수선화라고 합니다.
제주수선화는 화려하지 않고 모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수수한 해녀를 닮았습니다.
추사는 꽃망울을 막 터뜨린 수선화를 두고,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다. 여기는 방방곡곡 손바
닥만한 땅이라도 수선화 없는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추사는 제주의 모진 환경 속에서도 향기 그윽한 꽃을 피우는 수선화를 보면서 9년의 고단한 유배 생활
에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제주도 전역에 수선화가 흔해서 말이나 소먹이로 먹이고 농부는 원수 보듯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눈여겨보아야 할 정도로 수선화가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수선화보다는 화려하고 경제적으로도 유용한 유채꽃을 많이 심어서 그리 된 듯 합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 삼월입니다. 
모진 비바람에도 그윽한 향기를 날리는 수선화처럼 맑고 향기로우시길 빕니다.
                                                          2009년 삼월 초하루 바람재 운영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