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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첫눈......마지막 눈이라도 볼 수 있는 날이 남아있을까?

by 진 란 2009. 2. 23.

       

      하루

      천양희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나를 내려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당신이 첫눈으로 오시면 나는 손톱 끝에 봉숭아 꽃물 들이고서

      박남준

       

      첫눈 오시는 날 당신의 떠나가던 멀어가던 발자욱 하얀 눈길

      에는 먼 기다림이 남아 노을 노을 졌습니다 붉게 타던 봉숭아

      꽃물 손톱 끝에 매달려 이렇게 이렇게도 가물거리는데 당신이

      내게 오시며 새겨 놓을 하얀 눈길 위 발자욱 어디쯤이어요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첫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첫눈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첫눈
      정양(1942~ )


      한번 빚진 도깨비는
      갚아도 갚아도 갚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고
      한평생 그걸 갚는다고 한다
      먹어도 먹어도 허천나던
      흉년의 허기도 그 비슷했던가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소용없는 사람아
      내려도 내려도 다 녹아버리는
      저 첫눈 보아라
      몇 평생 갚아도 모자랄
      폭폭한 빚더미처럼
      먼 산마루에만
      희끗거리며 눈이 쌓인다



      '저만치'와 '빚'이라는 말은 몸속 피와 같은 말. 두 붉은 말이 심장을 뛰게 한다.

      우리는 서로 섭섭하고 미안하고 딱하다. 나는 그대와 만나 헤어질 때면 곧바로 허천나는 사랑이다.

      사랑은 첫눈처럼 금방 사라지는 것. 산마루처럼 멀어 안달케 하는 것. 사랑은 기갈증 환자.

      그러므로 연거푸 사랑의 빚을 갚는 건망증의 도깨비가 되자.

      문태준 <시인>

       

       

       

       

      Maria Elena / Los Indios Tabajaras

       2009년 2월20일 겨울 덕유산/사진가 인디카/ 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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