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조선 극장은 `외설의 온상`
100년 전 극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경성의 극장은 음굴(淫窟)' '음부탕자(淫婦蕩子)의 오락장' '극장에서의 풍속괴란' '사회풍기와 연예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약 100년 전 사회문제로 비화된 극장 세태를 보도한 신문기사의 제목들이다. 신문에 나타난 기사들로 볼 때 극장은 성적 방종이나 폭력을 부추기는 '풍기 문란의 온상'으로 지목돼 당국과 번번이 마찰을 빚었다.
한국에 영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만들어진 일제 강점기의 영화 관련 신문기사 자료를 통해 당시 신문물인 극장가의 천태만상과 영화ㆍ연예업의 면면을 담은 저서가 최근 발간돼 눈길을 끈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조선희)이 1911년부터 1917년까지 매일신보에 나타난 영화, 연극, 연예 관련 보도를 정리해 펴낸 '신문기사를 통해 본 조선 영화 1911~1917'이다.
▶외설과 퇴폐의 온상=영화, 연극의 외설과 폭력성, 남녀가 뒤엉킨 낯 뜨거운 객석의 세태, 이를 막기 위한 경찰의 단속은 당시 가장 빈번하게 보도된 이슈였다. 1916년 4월 1일자 매일신보는 "요새 경성 내에 연극장 활동사진관의 상황을 보면 폐해되는 일이 많이 있다고 할 만한 바, 연극을 흥행할 때에 참혹한 것이나 또는 외설한 행동을 하야 관객의 악감정을 일으키는 일"과 "남녀석 간에 혼란한 일이라든지 동석하는 일과 활동사진 변사로 풍속을 해케하는 설명하는 등이 있으면 바로 소관 경찰서에서는 엄중히 취체하여 풍기를 숙정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당대의 톱스타들도 물의=심지어 극장에서 당대의 톱스타라고 할 수 있는 창극, 신파극의 배우가 매춘부들과 함께 파티를 벌여 물의를 빚거나 유력인사들이 도박ㆍ노름판을 벌여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1911년 4월 22일엔 "근일 각 연극장에서 고용하는 창부(倡夫) 등은 남북촌 모모 대관의 별실에 모이고 밀매음녀를 연락하여 연극을 무료로 관광케 하마 하고 연극장으로 동행 관광한 후에 비밀한 처소로 회동하여 부정한 행위가 있다는 소문이 낭자함으로 경찰서에서는 창부 등을 엄정히 단속하기 위해 목하 협의하는 중"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보다 이른 1913년 4월 16일에도 연예계의 성문란 풍조를 강도 높게 질타하는 긴 사설조의 기사가 게재됐다. "요새 각 방면으로 탐문한 바에 의하면 경성 내 각 연극장은 곧 음굴"이라며 "교묘하고 간할한 무리들은 떼를 이뤄 돌아다니며 상풍 패속의 악품을 고취하여 동물 중 가장 귀한 가치를 스스로 타락케 한다"고 했으며 이를 "광대배의 음잡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또 "소위 성주풀이로 음부탕자의 탕정을 고발하는 조진영이라는 자는 밤마다 공연할 때 부인석을 곁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며 전후 음잡한 거동으로 비밀스럽게 추파를 전하는 못된 색마의 놈"이라며 연예인의 실명을 들어 '음행'을 폭로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에는 경성의 한 유력 인사가 장안사 연극장 내에서 투전판을 벌여 돈내기를 한 혐의로 북부경찰서에 잡혀 볼기를 15대 맞고 풀려나는 등 극장 내 도박사건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기도 했다.
▶각양각색 관객들의 추태=극장가에서는 연예인뿐 아니라 젊은 일반 관객들의 '추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 1913년 9월에는 31세 된 남자가 21세 된 여성 관객을 꾀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극장 색마의 실패'라는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꽃같이 고운 얼굴에 마음을 어떻게 뺏겼던지 속으로는 그 계집을 어떻게 하면 불러다가 하루를 놀까 하다가" 결국 피해 여성의 고발로 범인이 잡힌 해프닝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광무대 연극장에서 이십세가량 된 젊은 여인 두 명이 술에 대취하여 광언망설을 주절이다가 토악질을 해 더러운 냄새가 장내에 충만했으며 모든 구경꾼들은 코를 막아가며 욕설을 쏟아냈다"는 짧은 기사가 '참 못된 계집들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영화의 모방범죄는 100년 전에도=영화의 모방범죄 논란도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다. 1917년 8월 매일신보는 '소학생도의 살인강도, 무서운 활동사진의 악영향'이라는 제하로 일본 신사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들이 13~16세의 소학생 집단으로 밝혀졌다는 뉴스를 보도하며 "이와 같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 동기는 활동사진의 좋지 못한 영향으로 또한 이 아이들은 항상 절도로 군것질하기가 일이었다 하니 놀랍지 아니한가"라고 전했다.
▶공동 프로모션, 특수효과 등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이 밖에도 치약 발매 기념 영화 특별 상영이나 궐련 신제품 출시 기념 활동사진관 입장권 증정행사와 같은 공동 프로모션 광고도 당시 신문에서 눈에 띄었으며, 극장 개관 및 단장(사진), 단성사 소실(1915년) 같은 일도 보도됐다. 1916년에는 '보기에 놀라운 최신의 활동사진 이렇게 박힌다'는 제목으로 특수효과, 촬영과정을 담은 기획 기사도 있었으며, 외화를 소개하는 코너도 1910년대 후반에 급증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면모를 보였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헤럴드경제 | 기사입력 2009.01.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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