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ddie Aguilar - Anak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을 우리가 떠올리면 필리핀이 낳은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이며 그의 대표곡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그린 노래 아낙(anak 아들)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본다. 물론 좀비론도 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져 떠오르는 곳이 바로 아낙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전세계 28개국에서 번안되었으며 800만장의 음반이 팔려나같던 프레디을 떠올리게 만드는 곡이 바로 아낙이니 필자나 여러분이나 그을 떠올리는데 아낙을 논할 수 박에 없다. 그러나, 아길라을 필리핀의 아들이며 혁명가로 만들어버린 노래가 있었으니 이 노래는 잘 모르시리라 본다.
프레디 아길라가 저항가수였다라는건 얼핏 들엇던 사람들은 많으나 그가 왜 저항 가수였는지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오늘 좀비론의 음악에세이는 프레디가 왜 저항 가수가 되엇으며 그의 저항가수로서 이미지을 굳건희 만든 Bayan Ko(나의 조국)이라는 노래에 대해서 알아보며 프레디의 최근 소식들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하겠다.
Freddie Aguilar - Bayan Ko(나의 조국)
Freddie Aguilar - Bayan Ko(나의 조국)
Bayan Ko | 우리 조국 |
Ang bayan kong Pilipinas Lupain ng ginto't bulaklak Pagibig sa kanyang palad Nag-alay ng ganda't dilag. At sa kanyang yumi at ganda Dayuhan ay nahalina Bayan ko, binihag ka Nasadlak sa dusa. Ibong mang may layang lumipad Kulungin mo at umiiyak Bayan pa kayang sakdal dilag Ang di magnasang makaalpas. Pilipinas kong minumutya Pugad ng luha ko't dalita Aking adhika makita kang sakdal laya |
사랑해 나무 조국
|
필리핀에서는 이 노래 Bayan Ko(나의 조국)가 비공식적인 국가로 통한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님을 위한 행진곡'처럼 제2의 국가로 불리워진다.
프레디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달리며 성공가도을 달리던 시기 필리핀은 독제정권 마르코스의 독제하에 신음하던 시기였다. 마르코스 정권에 항거하며 저항하며 망명중이던 니노이 아키노가 마르코스의 명령으로 필리핀으로 돌아오던중 피격당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필리핀 민중들은 분노에 치을 떨며 민주주의을 외치며 거리로 거리로 뛰쳐나와 혁명의 물결로 뒤덮인다.
프레디는 이러한 것들을 지켜보며 자신의 외국진출과 성공가도을 접어두고 거리에서 필리핀 민중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을 열망하는 곳에서 필리핀 민중들의 울분을 달래며 그도 저항의 한복판에 서서 이노래 Bayan Ko(나의 조국)을 부르며 혁명의 복판에 서서 필리핀의 아들로서 거듭나며 필리핀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을 쌓아가며 피리핀 민중들과 함게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성공마져 조국의 운명에 내던지기로 한 것이다.
대충 눈한번 감으면 출세길이 보장된 그로서 성공가도을 달리던 가수지만 모든것을 포기하며 필리핀의 자유와 민주주의 독제근절에 앞장선 것이다. 1986년, 그 유명한 피플파워로 마르코스의 독재정치가 끝장나던 곳에서 그는 필리핀의 아들로서 자신의 조국 필리핀의 자유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프레디 아길라는 필리핀 혁명이후에도 아름다운 삶을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실천하는 따뜻함을 잊지않고 있어서 이 또한 귀감이 되고 있다.
빈민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다
80년대 초 빌보드 차트5위에도 링크될만큼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등의 팝 뮤지션들과 어깨을 당당희 하던 프레디 아길라는 필리핀의 민주화을 위해 투쟁하다 이제는 민주화된 필리핀 자신의 조국에 봉사의 길을 택한다.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프레디 아길라학교라 이름짓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공연으로 충당된 금액으로 학업을 도우며 살고있다.
배우고자 하는 빈민가의 아이들의 노트와 연필 한자루마져 그의 공연 수익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속에 필리핀의 미래을 위해 투자하는 셈이다.
중요한건 그는 아직도 필리핀에서는 당당한 현역가수다. 술집여자와 소외된 빈민, 외국이주노동자, 감옥의 죄수들을 보듬으며 그는 노래와 사회봉사로 살아가고 있다.
프레디 아길라에게 있어서 필리핀의 혁명은 아직 진행형이다. 사회의 관용과 포용의 인식과 필리핀의 미래의 발전을 위한 삶의 혁명으로서.....
'♬있는風景' 카테고리의 다른 글
DMZ 날으는 '한반도 마지막 따오기' (0) | 2008.10.31 |
---|---|
The Girl With Aprill In Her Eyes (0) | 2008.10.31 |
송파 옛사진 그땐 그랬다... (0) | 2008.10.30 |
아름다운 보석 (0) | 2008.10.29 |
아름다운 아프리카와 음악 (0) | 2008.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