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
-김사인
낮에 잠깐 짬이 나 도봉산 자락을 좀 걸을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바위며 나무들이 흰 눈을 쓴 채로 마치 깊은 묵상에 든 듯이 보였습니다. 계곡 물도 제 꺼풀만 두꺼운 얼음으로 벗어놓고는 본래의 자신 속으로 깊이 돌아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숙연함 같은 것이 겨울 산에는 있는 듯합니다. 겨울 산에는 여름의 끈끈한 치정(癡情)이나 봄가을이 허락하던 얼마간의 어리광스러운 감상, 이런 것이 없습니다. 저 불모의 혹한에 맞서서 바위도 초목도 짐승들도 죽음같이 깊은 잠으로 견디고 있는 듯합니다.
그때 겨울잠은 얼마나 높은 순도의 것일까요. 열반이라는 말의 의미의 한쪽은, 저런 잠의 깊이와 절실한 순수성으로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저 겨울잠이야말로 존재의 가장 깊은 삼매가 아닐까요. 우리가 치르는 나날의 잠과 한 생애의 죽음이라는 것 또한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닐까요. 혹한과 죽음을 건너가는 섭리 같은 것이 겨울 산의 깊은 잠, 깊은 명상 속에는 있음을 보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