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다. 이른 더위에 지쳐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이한열 열사의 걸개그림이 다시 연세대 교정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당시의 생각이 머리 속에 자리를 잡는다. 1987년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6월이면 고등학교에 갓 적응을 하고 친구들도 여럿 사귀며 서서히 학교생활에 적응을 할 때이다. 그당시 다니는 고등학교와 집사이에는 서면이라는 부산의 중심가가 버티고 있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하교를 위해 202번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기사아저씨(버스종점이 학교 바로 옆)들이 운행을 안한다며 걸어서 가라고 한다. 서면에서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기 때문에 버스가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버스는 안 다녀도 집에는 가야하니 친구 몇 명과 함께 걷기 시작했고 서면 가까이 오니 매운 최루탄 냄새에 눈물, 콧물로 정신이 없었다. 그 정신 없는 가운데에도 뚜렷이 들리는 소리는 '민주정부 수립하자'와 '살인마 전두환을 처단하자'라는 구호였다. 도로 한가운데를 막고 있는 버스에도 똑같은 글이 써 있었으니 어린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그 정신 없는 순간에도 꽤나 충격적인 글과 구호들이었다.
명동시위(사진출처 국정브리핑)
그 날 이후 최루탄 냄새로 등하교 길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잠도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집이 서면 근처라).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동네 어른들의 대화와 아무런 생각 없이 뛰어든 시위현장의 열기로 인해 전두환이 나쁜 놈이며 세상을 바꾸기는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진 듯하다. 하지만 6월항쟁에 대한 기억은 딱 거기서 끊어져 있다. 아니 대선이후 김영삼이 대통령에서 떨어졌다는 울분으로 교실 칠판을 주먹으로 친 기억(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다)까지는 난다.
그렇게 사라지고 지워진 6월항쟁에 대한 기억은 학생운동의 언저리에서 얼쩡거리며 다시 나의 기억 속으로 들어왔고 5월 광주와 함께 언제나 같이 이어지리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제는 6월이 되면 한 번씩 생각하는 과거가 되어버린 듯하다. 아무런 생각없이 지켜본 한계인지 아니면 세월 탓으로 돌려버릴 만큼 세상이 좋아진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나 자신이 변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6월항쟁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렇게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우리 사회도 나와 마찬가지로 6월항쟁을 잊어가고 있다. 20주년이 되는 올해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얼마 전 들은 이야기는 좀 당황스러웠다. 기념행사의 출연가수들이 대부분 현재 인기가수들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우고 특히 6월항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층을 모우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인기가수들을 섭외하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6월항쟁의 주역이며 또한 그 정신을 이어온 민중가요 노래패들은 찬밥신세가 되어 버린 듯하여 무엇을 기념하는 20주년 행사인지 의문마저 들게 만들었다.
나마저 잊어가는 마당에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비판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6월항쟁이 과거보다는 미래의 것으로 새롭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접근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인정을 하면서도 괜한 섭섭함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잊혀져 간다. 물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과거의 그대로를 기억하고 기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5월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만 남아서도 안되는 것이고 6월항쟁도 아쉬운 승리의 기억으로만 남기보다는 미래의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는 큰 동력으로 자리를 잡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기념행사가 행사로만 기억되고 아픔을 잊는 과정으로 남는다면 더 큰 아픔의 기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5월이 오면 광주를 찾고 6월이 오면 6월항쟁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나의 모습 자체가 일년에 한번씩 기념행사를 치루며 스스로 면죄부를 던지는 비겁함을 느낀다. 물론 지금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는 5월 광주와 6월항쟁의 정신을 이어 사회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아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시작이 5월 광주이며 6월항쟁이고 그 마무리를 위해 우리는 변화를 위한 몸짓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항상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그 허전함의 구체적 정체는 모르겠지만 틀림없는 것은 부족함이라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 연세대에 사진을 찍으러 가야겠다. 그곳에서 특별한 뭔가를 느낄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번 둘러보고 오는 것이 안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20년 전 육교 위에서 던져 준 사탕과 음료수가 너무나 땡긴다.
by 소주한잔
* <무브온21블로거기자단>이란 : 무브온21에서 활동하는 논객들이 모여 구성한 기자단입니다. 무브온21의 주요 칼럼과 무브온21 논객들이 기획한 기사와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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