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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통도사의 산내 암자

by 진 란 2007. 4. 4.

전설·신화 생생한 삼국~고려 佛心의 터전

김영택의 펜화로 보는 한국⑧

통도사의 산내 암자

 


경남 양산의 영축산은 해발 1059m의 장대한 연봉이 독수리를 닮았다 하여 인도의 불교 성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영축산의 남쪽 분지는 모두 통도사 소유 토지로 560만평에 달합니다. 분지의 입구에 불보사찰인 영축총림 통도사가 있고 산속에 15개의 암자가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암자는 자장암(慈藏庵)으로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 스님이 통도사 창건(서기 646년) 전 수행을 하던 기도처로서 통도사보다 역사가 오래된 암자입니다.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데 특히 다실로 쓰이는 취현루에서 내다보이는 전경이 일품입니다.

 

마주 보이는 영축산의 연봉이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막 날아오르려는 모양을 하고 있고 암자 주위의 낙락장송은 천년 고찰의 정취를 전해줍니다. 아름다운 계곡은 ‘자장동천’이라고 하여 ‘통도팔경’으로 손꼽히고 마애불을 새긴 암벽에 잘 자란 소나무가 어우러져 완벽한 삼합(三合)의 장소입니다. 펜화기행 때문에 전국의 여러 절을 다녀보았지만 이만큼 기막힌 절경은 본 적이 없습니다.

 

스님이나 도사들의 좋은 기도처로 큰 바위와 연관된 곳이 많습니다. 산의 정기가 바위를 타고 흐르기 때문이라는데 자장암도 거북바위라는 큰 암반 위에 지었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바위를 깨내지 않고 암자를 지어서 법당 바닥에 암반이 솟아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을 살아있는 존재로 보았던 선조들의 지혜가 보입니다. 바위를 깨고 산을 헐고 산맥을 끊어가며 건축을 하는 현대인들이 본받을 점이지요.

 

법당 뒤에는 자장 스님이 암벽에 구멍을 뚫고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금와공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발간된 ‘조선불교통사’에도 기록이 있으니 오랫동안 개구리들이 대를 이어서 수직 암벽의 작은 구멍에서 살았다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금개구리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보인다는 사람과 안 보인다는 사람이 다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이 시커먼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니 직접 시험을 해 보시면 어떨까요.

고려 충목왕 2년(1346) 창건된 서운암(瑞雲庵)은 삼천불과 함께 맛있는 재래식 된장, 고추장으로 유명합니다. 산언덕에 늘어선 장독대는 장관이지요. 들꽃 축제 때에는 금낭화가 지천을 이룹니다. 각종 이벤트가 많은 암자입니다.

 

사명암(泗溟庵)은 조선 선조 6년(1573)에 창건된 암자로 긴 연못에 비치는 좌우측 정자와 돌다리는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고려 충혜왕 복위 5년(1344)에 창건된 극락암(極樂庵)은 법당 뒤의 대나무 밭과 소나무 숲이 영축산 연봉과 어울려 특이한 아름다움을 연출해 냅니다.

 

명당 터에는 소나무가 잘 자란답니다. 예로부터 명당에 묘자리를 썼기때문에 도굴꾼들이 잘 생긴 소나무 근처를 쑤셔서 부장품을 찾는다지요.

 

소나무가 잘 자란 극락암 호국선원은 뛰어난 명당 터로서 큰 스님이 세 명이나 나온다는 곳입니다. 극락선원의 선풍을 크게 일으킨 경봉 스님 이후 남은 두 자리 때문에 하안거(夏安居)나 동안거(冬安居)가 되면 많은 스님들이 한소식 하려고 몰려든답니다. 통도팔경 중 하나인 극락영지 위에 놓인 무지개다리는 경봉 스님의 예술적 안목을 짐작케 합니다.

 

안양암(安養菴)은 고려 충렬왕 21년(1295)에 창건된 암자로 통도사 남쪽 산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통도사 전경이 훤하게 보입니다. 북극전이란 독특한 형식의 오래된 법당이 있습니다.

 

비로암(毘蘆庵)은 고려 충목왕 원년(1345)에 창건한 암자로 갖가지 수목이 절 마당을 장식하고 있어 수목원에 온 듯 보기가 좋습니다. 절을 잘 가꾸는 것도 수행이랍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에 창건된 백련암(白蓮庵)은 구한말 남방의 선찰로 이름을 떨쳤고 통도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백운암(白雲庵)은 조선 순조 10년(1810)에 중건한 암자로 산내 암자 중 유일하게 자동차가 올라갈 수 없습니다.

 

수도암(修道庵)은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창건되었고 공민왕 23년(1374)에 창건된 옥련암(玉蓮庵)에는 고색 창연한 법당 앞에 크게 자란 반송이 있습니다.

 

통도사 북쪽에 있는 축서암(鷲棲庵)은 숙종 37년(1711)에 창건되었으나 몹시 낡아서 근래 들어 새로운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역사가 짧은 암자로는 서축암, 금수암, 반야암, 관음암이 있어 통도사 산내 암자를 전부 돌아보려면 이틀 일정으로도 어렵습니다.

 

그림ㆍ글ㆍ사진=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출처 : 조선일보

 

 


 

5. 통도사 주요 산내암자 소개

통도사의 산내암자는 19개에 달한다. 가장 멀리 있는 백운암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 반경에 위치한다.
통도사를 중심으로 서쪽과 북쪽에 안양암, 자장암, 극락암, 비로암, 축서암 등이 있고, 남쪽에 보타암, 취운암, 수도암, 사명암, 옥련암 등이 있다.

1. 제 1코스 : 안양암-서축암-금수암-자장암
1) 안양암 (전화번호 : 055-383-1122)
안양암은 통도사 팔경중의 하나인 안양동대에 위치하며 대웅전 앞 서남쪽 우뚝 솟은 봉우리에 있다.
큰 절에서 불과 500m내외에 있는 이 암자는 고려 충열왕 21년(서기1295) 찬인대사(贊人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고, 이조 고종2년(서기1865) 양담대사(兩潭大師)가 중건했다. 그리고 1968년 본사 우송화상(友松和尙)이 중수했다.

2) 서축암 (전화번호 : 055-382-5872)
자장암으로부터 가는 길목 150m정도 되는 길목에 있다.
1996년도에 대시주자이신 수련화보살님과 입적하신 월하 큰스님, 현 감원이신 원행스님에 의해 창건된 신형 암자이다.
인법당 형식의 대웅전이 있고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다보탑이 유명하다.

3) 금수암 (전화번호 : 055-381-2754)

4) 자장암 (전화번호 : 055-382-7081)
자장암은 안양동대의 골짜기를 따라 2km 정도 평탄한 길을 가다보면 통도사 팔경 중의 하나인 자장동천이 나타난다.
그 곳의 왼편에 있는 높다란 석벽 아래 암자가 하나 보이니 이곳이 바로 금개구리의 전설로 유명한 자장암이다. 통도사를 짓기 전인 진평왕 때에 자장율사가 이 바위벽 아래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처음 지어진 것은 물론 자장율사에 의해서 이고 고쳐지어진 때는 알 수 없으나 회봉화상이 다시 이룩했다고 한다. 법당은 4칸의 사람이 거처할 수 있는 작은 인법당이며 법당 북쪽에는 요사가 있고 그 남쪽으로는 높이 약 4m 높이의 거대한 마애불이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통도사 산내에서 유일한 마애불로 1896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 이 마애불에서 약 2m 남쪽에 자장전이 있다.
이곳에는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해 두었다. 전체 건물은 5동 23칸에 이르며 법당 뒤쪽의 바위틈에서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오고, 그 위의 바위벽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자장율사가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떠나지않아 율사께서 신통력으로 바위벽에 구멍을 뚫어 개구리들을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한 쌍의 금개구리로, 혹시는 벌과 나비로 변현(變現)한다고 한다.

① 조선불교통사 하권 「승유어급변화금와조僧遺魚及變化金蛙條」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영축산靈鷲山의 옛이름) 통도사의 자장암 곁 석벽에 무지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으니 그 속에 한 쌍의 와자(작은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과 나비가 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이 이를 일러 말하되 금개구리(金蛙)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 밖을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함중에 넣어 엄폐하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존에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좌우간 통도사를 찾는 모든 참배객들은 으례히 자장암의 금개구리를 알현하고자 한다. 암혈속의 개구리를 보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로써 부처님에 대한 신심을 측량하기도 한다.

② 자장율사와 금개구리 {정법회 거사림 카페글에서}
양산 통도사 산내 암자인 자장암 법당 뒤 절벽 바위에는 1천4백 년 전부터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요즘도 자장암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잘하면 볼 수 있다는 이 금개구리는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우기 전, 석벽 아래 움집을 짓고 수도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
어느 날 저녁 자장율사는 공양미를 씻으러 암벽 아래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옹달샘으로 나갔다. 바가지로 막 샘물을 뜨려던 스님은 잠시 손을 멈췄다.
『웬 이럴 수가. 아니 그래 어디 가서 못 놀아서 하필이면 부처님 계신 절집 샘물을 흐려놓는고....』
스님은 샘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놀고 있는 개구리 한 쌍을 두 손으로 건져 근처 숲속으로 옮겨 놓았다.
다음날 아침. 샘가로 나간 자장 스님은 개구리 두 마리가 다시 와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허참, 그 녀석들 말을 안 듣는구먼.』
스님은 다시 오지 못하도록 이번에는 아주 멀리 갖다 버리고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날에도 개구리는 또 와서 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스님이 개구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여느 개구리와는 달리 입과 눈가에는 금줄이 선명했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었다.
『불연이 있는 개구리로구나.』
자장율사는 개구리를 샘에서 살도록 그냥 놔두었다.
어느덧 겨울이 왔다. 자장율사는 겨울잠을 자러 갈 줄 알았던 개구리가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도 늘 샘물 속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 안되겠구나. 살 곳을 마련해 줘야지.』
스님은 절 뒤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을 손가락으로 찔러 큰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었다.
『언제까지나 죽지 말고 영원토록 이곳에 살면서 자장암을 지켜다오.』
스님은 이렇듯 불가사의한 수기를 내리고는 개구리를 「금와(金蛙)」라고 이름했다.
그 뒤 통도사 스님들은 이 개구리를 금와보살, 바위를 금와석굴이라 불렀다.

③ 금와석굴은 말이 석굴이지 지름이 1.5∼2cm에 깊이 10cm 정도의 바위 구멍이다. 그 속에는 이끼가 파랗게 끼어 있는데 개구리 같기도 하고 큰 벌 같기도 한 것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자장율사의 수기를 받아 오늘까지 살아온다고 전해지는 이 금와보살은 통도사 내에 길조가 생길 때면 나타난다고 한다.
고(故) 경봉 스님이 10세 되던 해였다. 당시 80여 세이신 용익 스님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좋은 종이에 탁본하여 모실 수 있기를 발원했다. 용익 스님은 통도사 큰법당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기도 끝나기 3일 전, 금와보살이 큰법당 탁상 위에 나타났다. 용익 스님은 금개구리를 보는 순간 불사가 원만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부처님께 감사드리며 남은 3일간 철야정진을 했다. 기도가 끝나고 며칠 안되어 시주자가 나타나 팔만대장경 3권을 책으로 묶어 통도· 해인· 송광사에 1부씩 보관하게 됐다고 한다.

얼마 전 태응 스님은 자장암 법당 증축불사를 위해 기도를 올리다가 개구리소리를 들었다. 이상히 여긴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계속 기도를 하다 보니 부처님 옆 탁자 위에 회색 바탕의 몸에 다리가 붉은 금개구리가 기어나와 있었다.
스님은 그 후 사철 동안 굴 속을 들여다보면서 금개구리를 자세히 살폈다. 초봄의 금개구리는 자연석 같은 회색 바탕에 등에는 검은 점이 있고 발끝에는 둥글둥글한 구슬이 달려 있었다. 금테 같은 선을 두른 입은 마치 두꺼비 입을 닮았다. 여름이 되니 몸이 파랗게 변하면서 검음 점이 많이 보이다가 장마가 지자 다시 초봄의 색으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여름 더위가 심할 때는 몸 색이 누렇게 변하고 겨울이면 벌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일기와 계절에 따라 변하는 금개구리는 먹이가 무엇이며 언제 밖으로 나오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궁금히 여긴 자장암 스님들은 어느 날 밤낮없이 교대로 석굴을 지켜봤다.
영축산에 어둠이 깃드니 금개구리 두 마리는 밖으로 나와 석굴이 있는 절벽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순식간에 4∼5m를 뛰어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굴속으로 다시 들어갔는지 본 사람이 없는데 스님들은 아마 새벽 2∼3시경인 듯싶다고 추측하고 있다.
여름철 바위가 태양열에 파열되어 뜨겁기가 달구어진 무쇠솥 같아도 금개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뛰어다닌다고 한다.

옛날 어떤 관리가 금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자장암을 찾았다.
『이 절에 금개구리가 있다면서요?』
『예, 있습니다. 자장율사 이후 한 번도 산문 밖을 나간 일이 없이 자장암을 지키면서 석굴 속에 살고 있지요.』
스님이 금개구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자 관리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 그 개구리를 잡아 시험을 해볼 것이오.』
『아니됩니다. 그 개구리는 불연이 깊은 불가사의한 생물입니다.』
그러나 그 관리는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어 밀폐한 뒤 산문을 나와 함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분명히 잡아넣은 개구리는 보이지 않고 함은 비어 있었다.
그 후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금개구리들은 자장율사의 신통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금개구리 친견으로 자신의 신심을 한 번쯤 측량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④ 자장암 관음전 법당 바닥에는 칼바위가 솟아있다.
불보(佛寶) 사찰인 통도사가 있는 영취산 계곡에는 절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절들이 있다. 산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아름드리 노송들이 휘휘 가지를 늘이고 있어서 고찰 냄새가 물씬 풍긴다. 절의 규모와 엄청난 방문객을 수용하느라 꽤나 넓어진 길이 잘 포장되어 있지만, 통도사로 들어가는 길은 눈에 거슬리지 않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산길을 오르며 염불소리가 끊일만하면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들려오고 머지않아 다른 암자가 나타나니 계곡 전체가 법당이다.

절골로 들어서 통도사를 지나 작은 고개하나를 넘으면 갈림길이 나오고 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산내 암자 중 제일 꼭대기에 있는 백운암으로 가게 되고 왼쪽 길로 가게 되면 자장암으로 가게된다.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신라 선덕여왕 15년(서기 646년))하기에 앞서 수도하던 곳이라니, 절골의 발원지며 통도사의 모태인 셈입니다.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찾아간 자장암은 조용하고 아름답다. 전설이 아름답고 주변 산세가 아름답다.
기암과 낙락장송이 어우러진 곳에 자리 잡은 관음전은 감로전 우측으로 있는 전각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며 요사. 법당은 왼쪽에 세워진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문짝이 달린 이 출입문엔 '자장암'이란 편액이 달려있다.

정면 4간의 관음전의 왼쪽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오른쪽은 맞배지붕 형식. 우측에 있는 커다란 바위, 즉 마애불에 맞추어 전각을 짓다보니 양단의 건축방식을 달리 한 것이라고 한다.
이 뿐 아니라 법당의 바닥도 여느 법당 바닥과는 다르다. 대개의 법당들은 나무를 켜서 깐 목재 바닥이지만 지장암의 법당 바닥은 짚과 돗자리로 만든, 일명 다다미 바닥. 아무래도 바닥에 두툼한 짚이 깔렸으니 나무 바닥처럼 깔깔한 맛은 없겠으나 푹신한 촉감이다.

정말 독특한 건 관음전 중간쯤에 있는, 법당 내외에 걸쳐있는 칼바위이다. 웬만하면 터 다듬으며 깨버렸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바닥 돌을 그대로 살려 법당을 지었다. 법당 밖에 있는 바위가 문지방을 지나 법당 바닥에도 예리하게 솟아있다. 그렇다보니 법당바닥에 깔린 돗자리도 솟아오른 바위모양으로 잘라 갈무리를 하였다.
바위를 왜 그대로 놓고 법당을 지었을까? 우선은 있는 그대로에 필요한 부분만을 덧댄 조화를 추구한 듯. 마애불 바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어색하지 않는 전각을 구상하다 보니 지붕도 조금은 생뚱한 두 가지 양식을 혼용하였듯, 있는 그대로를 살리며 전각을 세우느라 이렇게 바위를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있는 그대로에 조화를 맞추려는 마음, 순리에 순응하려는 그런 마음이 이런 독특함을 남긴 듯. 이러한 조화는 단순히 주변경관이나 건물양식에 그치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라 할 법당 안과 밖을 이렇듯 단절하지 않아, 밖이 곳 법계이며 속세가 곳 법계임을 나타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경계를 나타내는 문지방을 그대로 관통해 있으니 법당 안과 밖을 일치시키는, 불이(不二)의 의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된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건 날카로운 돌을 보며 수행정진의 채찍쯤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단 생각. 자칫 무뎌지거나 담담해 질 수 있는 구도자의 마음을 이 칼바위처럼 갈고 닦으라는 표상으로 남긴 건 아닐까.

⑤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삼면에 암각된 돌부처님들
자장암에는 이렇듯 거북바위만 있는 게 아니고 마애불 뒤쪽으로 호랑이 형상을 한 바위,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 쥐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도 있다고 한다. 어떤 바위는 법당을 신장하고 어떤 바위는 염불소리 들으며 업보를 참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 제 2코스 : 반야암-극락암-비로암-백운암
1) 반야암 (전화번호 : 055-382-3211)
1999년 창건된 암자로 경관이 수려한 곳에 위치해 있다.
통도사 강주를 오래 역임하고 현재 은해사 승가대학원 원장인 지안 스님이 감원으로 있으며 매주 경전 교실을 열어 경전공부를 원하는 불자들이 일부 모이며 반야거사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매월 첫째 일요 가족법회를 열고 있으며 수시로 템플스테이를 원하는 불자들이 찾는 곳이다.
일반 신도의 기도법회가 음력 매월 보름에 실시된다.

2) 극락암 (전화번호 : 055-382-7083)
1332년(고려 충혜왕2)에 창건되었다. 창건 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1758년(조선 영조 34)에 철홍(哲弘)이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전할 뿐이다. 이 암자에는 극락선원(極樂禪院)이 있어서 늘 많은 수행승이 머물고 있다. 특히 1953년 11월 경봉(鏡峰)스님이 조실(祖室)로 온 뒤부터 많은 수행승들이 몰려들자 1968년에 선원을 9동 104칸으로 늘려 지었다. 1973년부터 매달 첫째주 일요일마다 정기법회를 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주법당인 극락암과 연수당 · 정수보각 · 조사각 · 수세전 · 영월루 · 삼소굴(三笑窟) · 여시문 등이 있다. 이 중 삼소굴은 경봉스님이 1982년까지 거처하던 곳이다.
조사각에는 석가모니불과 33조사, 보조국사 지눌, 보우(普愚) 등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홍교(虹橋)가 가로놓여 있다.
암자 약 500m 아래에는 아란야(阿蘭若)라는 수행 도량이 있다. 1969년 경봉스님이 세운 현대식 2층 건물로, 이곳에 일단 들어가면 최소한 3년은 참선에 몰두해야 한다.

3) 비로암 (전화번호 : 055-382-7087)
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지점에 비로암이 있으니 고려 충목왕 원년(서기1345)영숙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통도사 약지에는 기록하고 있다.
그 후의 중건은 선조11년(서기1578) 숙관당 태흠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고 그 외의 중건 중수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
암자에서 서북쪽 약500m되는 지점에 통도사 팔경중의 하나인 비로폭포가 있으며 뒷산의 우거진 송림은 산내에서 가장 울창하다.

4) 백운암 (전화번호 : 055-382-7085)
백운암은 통도사 산내 암자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통도사에서 약 6km 정도이며 극락암과 비로암의 사이로 난 소나무 숲의 오르막길을 따라 영축산 봉우리 8부 능선까지 올라가야 한다.
흰구름이 떠도는 높은 곳에 있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백운암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스승을 찾아 이곳저곳 떠다니는 수행승을 백운승(白雲僧) 또는 납자승(衲子僧)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흰구름이 감도는 이 백운암에서는 저 아래 통도사의 산곡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아스라이 동해안이 펼쳐진다.
신라 진성여왕 6년(서기892)조일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던 이 절은 그동안 몇 번이나 흥발했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순조10년(서기1810) 침노대사가 중건했다고 전할 뿐이다.

산신각 법당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m되는 지점에 금수라는 약수가 있다.
이 물은 석간수로서 가을의 맑은 하늘 아래서는 금색 빛이 찬연해지므로 금수라고 이름 지어졌다.
낙엽 지는 가을, 산 그림자 서쪽으로 기우는 시간에 이곳에서 팔경중의 하나인 백운명고의 북소리를 들어보라.
또 저 멀리 발아래 펼쳐진 산곡을 바라보면서 표주박에 금수를 떠서 들이켜 보라.
세속의 모든 번뇌를 식히고 무아의 선경에서 자기와 시간을 한꺼번에 잊게 될 것이다.

3. 제 3코스 : 관음암-보문암-무량암-축서암
1) 관음암 (전화번호 : 055-382-7356)
산내암자로서 그리 길지 않은 30여년의 역사로 관음기도 도량으로서 대웅전 법당 앞에는 5층 사리석탑(미얀마)과 여름 백중기간 동안에는 백련과 수련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 마다 자연스러운 조경 속에서 항시 꽃을 볼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도량이다.

2) 보문암 (전화번호 : 055-384-6857)

3) 무량암 (전화번호 : 055-381-9183)

4) 축서암 (전화번호 : 055-382-7080)
축서암은 통도사의 북서 3㎞지점에 있다.
창건이 숙종 37년(서기1711)이니까 그렇게 오래지 않은 사역을 지니고 있지만 영축산의 옛이름이 축서산이었으므로 그 옛날의 산명을 회상하여 지어진 듯하다. 절의 위치는 남향으로 양지바르고 주위가 평평하여 어쩌면 독수리라도 서식할 만한 곳이다.
현 건물은 철종 14년(서기1863)에 중수되었다고 하나 그 중건 중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근세 불화의 피카소라 할 수 있는 수안스님의 주석처로 유명하다.

4. 제 4코스 : 수도암-사명암-서운암-옥련암-백련암---보타암-취운암
1) 수도암 (전화번호 : 055-382-8589)
취운암에서 남서쪽으로 비탈길을 약200m 올라가면 자그마한 암자가 있으니 이가 바로 수도암이다.
이 건물은 공민왕 21년(서기1372)이관대사가 창건하고 중건 연대는 미상이지만 정신대사에 의하여 이룩되었다 한다.
남산이 대체적으로 야산이지만 그 중에서 수도암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여 조용한 개인 수도처로서는 적합한 암자라 할 것이다.
건물은 전체로 7간밖에 되지 않는 산내에서 제일 작은 암자이다.

2) 사명암 (전화번호 : 055-384-3401)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약 400m되는 지점에 사명암이 있다.
임진왜란 시대의 명장, 사명대사께서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호한 곳이다.
물론 임진란은 약20여 년 후의 사실이지만 이때부터 사명대사께서는 우리의 문화 유산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선조 6년(서기1573)에 이기, 신백 두 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이 두 스님이 사명대사의자취를 흠모하여 암자를 짓고 수행한 듯하다.

3) 서운암 (전화번호 : 055-382-7094)
서운암은 수도암에서 다시 들판으로 내려와서 남쪽 약400m지점에 있다.
주위에는 죽림이 빽 둘러 있고, 절 밖은 전답이 바로 이어져 있다.
초창은 충목왕 2년(서기1346)충현대사에 의하여 이룩되었고 철종 10년(서기1859)남봉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어느 해에 상서로운 구름이 감돌았는지 이 암자를 서운암이라 하였다.

4) 옥련암 (전화번호 : 055-382-7090)
옥련암은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나지막한 언덕 위 약500m 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역시 이 절도 공민왕 23년(서기1374)에 창건되었다.
창건주는 쌍옥대사이고 철종 8년(서기1857)호곡, 청진 두 스님에 의하여 다시 이룩되었다. 절 주위는 평평하여 멀리 북쪽으로 통도사 일주문 밖의 선자봉의 연봉이 아름답게 보인다.
사찰내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옛날에 이 옥련암에 「장군수」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군수를 매양 마시는 옥련암의 승려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
절의 승려들이 언제나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 절의 승려들이 가만히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 힘센 승려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전설은 통도사 승려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5) 백련암 (전화번호 : 055-382-4859)
백련암은 사명암에서 남쪽 숲 속으로 약 500m 되는 지점에 있다.
주위에는 울창한 수림이 있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원래 은행나무는 사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 까닭은 은행나무로써 불상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상에는 조소, 석조, 금동불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목조불의 재료로서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이 쓰인다.
절의 초창은 공민왕 23년(서기1374)월화대사에 의하여 이룩되었고, 그후 300여년이 지나서 인조 12년(서기1634)현암대사에 의하여 중건
되었다. 지금의 건물이 중건 당시의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고색이 창연한 것으로 보아 중수를 거듭했을 뿐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전 법당은 다른 암자와 같이 암이라 하지 않고 백연사라고 했으니 이는 부처님 당시의 죽림정사나 기원정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백련사가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근세 조선에 와서 유명한 선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선객치고서 이 백련사에서 한 철씩 지나지 않은 자 없을 정도였으니 가히 백련암의 선풍을 짐작하겠다.

6) 보타암 (전화번호 : 055-382-7089)
보타암은 통도사의 암자 중에서 가장 최근에 세워진 건물이다. 1927년 비구니 재덕과 호전 두 스님이 원동의 토굴로부터 이건했다.
일주문 밖에서 삼성반월교를 건너 약 300m되는 지점에 마을집 모양으로 낮게 지어졌다.

7) 취운암 (전화번호 : 055-383-6479)
취운암은 역시 남산쪽에 있는 절로서 보타암을 지나면 불과 200m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효종원년(서기1650)에 역시 우운대사가 초창했고, 정조 19년(서기1795)에 명운대사가 중건했으며 1969년 테일화상이 중수했다. 법당 뒤쪽에는 역대 고승들의 사리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취운암이 그 규모가 크며 역대 고승들이 이곳에 많이 주석했음을 알 수 있다.



별지1. 통도사 가람 배치도


일주문-천왕문 형식이 보인다.
범종각 대신 극락보전이란 건물이 먼저 등장하는 것이 특징.
또 종파의 융합을 나타내 듯 각 종파의 본전이
따로 공간을 이루어 존재하고 있다.
극락보전(아미타여래), 영산전(석가여래), 약사전(약사여래),
원통전(관세음보살), 대광명전(아미타여래) 대웅전(석가여래),
금강계단+적멸보궁(석가여래)...
종파 융합의 흔적과 다소 불규칙한 배치는 조선시대 중건되어
처음의 배치나 형식을 일탈한 것을 알 수 있다.
불이문이 전각 사이에 있는 것도 특징.
독성각+칠성각+산신각->삼성각인데 삼성각과 산신각이 따로 있다...
예외적인 전각배치다.

별지 2. 산내 암자 위치도

 

 

 

 

통도사 암자를 찾아서
계곡마다 숨은 암자 찾기

▲자장암


 
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사찰여행을 떠나는 게 좋다. 울산에도 사찰이 많지만, 울산 근교 양산의 통도사는 19개 암자가 있어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한국을 대표하는 불보사찰 통도사로 어서 떠나자!



▲자장암 마애불


통도사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와 국도 둘 다 길이 좋다. 울산에서 30분 안에 갈 수 있는 영축산 통도사는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처음엔 엄숙한 분위기에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다가 한두 번 계속 찾다보면 계곡에 산재된 암자의 매력에 자꾸 찾고 싶어진다.


숨어있는 암자를 찾아서 차를 몰았다. 통도사 대웅전 앞 서남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인 안양동대에서 골짜기를 따라 2㎞ 가량 가다 보면 통도사 팔경중 하나인 자장동천이 나온다. 시원 계곡물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자장암 계곡을 따라가면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물소리와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소(沼)가 달빛을 받아 연출하는 풍광을 두고 ‘자장동천’이라 했다.
자장암은 자장동천 왼쪽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암자 뒤 커다란 바위벽에는 금개구리 전설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짓기 전 이곳에서 수도를 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석간수 맑은 물을 혼탁하게 하므로 바위벽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구멍을 뚫어 개구리를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신심이 두터운 사람에게만 모습을 보인다는 금개구리를 두고  만 보았다는 사람, 겨울이 되면 몸 색이 다르다는 말을 해 궁금증을 자극시켰다. 겨울잠을 자야하는 개구리가 겨울에도 출현한다고 하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이다. 그래도 금개구리를 친견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며칠 동안 웃으며 살 수 있다. 웃음의 묘약을 금와보살이 던져준 것이다.
금개구리가 산다는 바위틈 옆에는 신비감을 주는 마애불이 우뚝 서 있다. 4m 높이 ㄷ자형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이다.



▲금수암 정자


자장암에서 다시 내려가는 길목에 금수암 가는 길 푯말을 보았다. 너무나 한적해 제대로 찾아 가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금수암은 수도도량으로 단단한 철문을 굳게 닫아 놓을 때가 많다. 다행히 문을 열어주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절 마당 뒤편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나타내며 곱게 자라고 있다.



▲금수암 마당에 핀 꽃


휘돌아 경내로 들어서면 의외로 화려한 모습에 약간 실망감을 안을 수도 있다. 잘 가꾼 나무와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은 풍요로움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다. 그래도 수도도량인 만큼 외양만으로 속단해서는 안될 일이다.



▲서축암


금수암에서 다시 내려와 서축암으로 향했다. 서축암은 금수암보다 훨씬 화려하고 단아한 느낌이다. 틀에 박혀 있는 듯한 정형된 모습에 조금은 반감을 사고 만다.
절 마당 한 가운데 다보탑 모형의 탑이 덩그러니 솟아있고, 파란 잔디는 손질이 잘돼 그냥 보기만 해야 할 것 같았다. 마당 한 가운데서 영축산 정상 모습이 보였다. 영험스러운 산 정상의 기운을 받는 듯하다.




▲반야암


다음은 반야암이다. 이 암자는 통도사의 여느 산내 암자보다 도량이 넓은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 자연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더욱 정감이 어린 곳이다.
영축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고 도량 왼쪽을 끼고 앞으로 흐른다. 산의 기혈이 뻗치고 내려오는 능선의 숲은 법당을 둘러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롭다. 법당 우측으로는 꽤나 넓은 공간이 시원스럽고 계곡물 위에 놓인 흔들 다리는 꼭 한 번 건너볼 일이다. 자신의 심리상태를 확인해 볼 수 있으니까. 혼잡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 번 건너보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니.


고은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