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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시월의 첫날에 띄우는 가을편지

by 진 란 2005. 10. 4.
가을의 느낌을 잃어버린 날들이 흘러간다
시월의 첫날에 띄우는 가을 편지
텍스트만보기   안병기(smreoquf2) 기자   
ⓒ2005 안병기
벌써 시월입니다. 어제 밤에는 이 나라의 핸드폰이 일제히 발신을 시작하더군요. 뚜르르르....따라라라라라. 귀뚜라미가 가진 핸드폰, 왕귀뚜라미가 가진 핸드폰, 알락 귀뚜라미가 가진 핸드폰 등이 일제히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011을 가진 귀뚜라미, 016을 가진 왕귀뚜라미, 019를 가진 알락 귀뚜라미의 화음이 제각기 어둠을 수놓더군요. 역시 통신대국 '대~한민국'의 가을답게 풀벌레들이 가진 핸드폰 보유대수도 무지무지하게 많았습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이 나라의 가을은 그렇게 핸드폰 울리는 소리로 다가왔지요.

▲ 쑥부쟁이
ⓒ2005 안병기
잠을 청허려고 불을 끄고 가만히 어둠을 응시하고 있던 차에 마침 왕귀뚜라미가 핸드폰을 걸어 오더군요.

"아저씨, 시월이예요. 시월이 쳐들어 왔어요."

그 순간 제가 진짜 핸드폰을 꺼놓고 있지 않았더라면 정작 10월을 알려주는 귀뚜라미의 핸드폰은 받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아찔한 기분을 들더라고요.

당신도 '통화중' 혹은 대책없는 '막혀버림'을 뚫고서 한 순간만이라도 이 청명한 가을과 통화하시려거든, 서류상으로라도 이 가을과 연결하시려거든 당분간 당신이 갖고 있는 진짜 핸드폰을 꺼놓으시는 편이 좋을 듯 싶습니다만…제 말씀대로 금세 핸드폰을 끄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이제야 당신은 가을을 제대로 사는 법을 아는 첫발을 내디디신 겁니다.

▲ 찔레 열매
ⓒ2005 안병기
세상을 살아보니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가장 간단한 것을 가장 어렵게 여기는 데 있더군요. 하나를 버려야만 하나를 얻는다는,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더군요.

이 시대 유일한 현자라 부를 수 있는 나무들이야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지요. 가을에 헌 잎을 버려야만 봄에 새 잎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제가 만일 대통령이었다면 아마도 이 현명한 가을 나무를 지체없이 국무총리로 임명했을 겁니다). 사람은 자연에서 배운다"는 말,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말은 아니겠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일생의 병은 쓸모없는 감정들을 제 때에 놓아버리지 못한데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버려도 좋을 감정의 찌꺼기를 끝내 움켜쥐고 살아온 것이지요.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아무런 집착이 없는 생이란 그 얼마나 밋밋하고 맹숭맹숭한 것일는지요? 얼마나 권태로운 것일는지요? 이 가을에는 당신께 더욱 집착하도록 하겠습니다. 때로는 집착이 세상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할지니….

저런, 제가 얘기하는 그 새를 못참고 어느 새 핸드폰을 켜 놓으셨군요. 주인의 맘을 아는 눈치빠른 핸드폰이 당신을 닦달했던가 봅니다. "심심하잖아? 안 심심하다구? 빨리 문자라도 날려봐, 응?" 이제사 얘기지만 당신과 얘기하노라면 그놈의 핸드폰 벨 소리 때문에 늘 말발이 서질 않더군요. 뭔가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울어대는 바람에 말줄기를 끊어놓기 일쑤였지요(그 점에선 핸드폰과 남편이라는 존재는 동일한 물성(物性)을 지닌 듯 합니다).

ⓒ2005 안병기
밖을 내다보니 밤새 내리던 비가 차츰 그치기 시작합니다. 비청비탁이라, 흐리지도 않고 아주 맑지도 않은 날씨가 묘하게 슬픔을 자아냅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이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를 목놓아 부를 듯한 날씨 같습니다. 때로는 고체에 가까운 클래식보다 액체에 가까운 뽕짝이 더 사무치다는 걸 저도 그 두만강 뱃사공에게 배웠드랬지요. 선술집에서 막대한 수업료 버리면서 말입니다.

계룡산 서어나무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을 것이고, 붉나무는 벌써 물들었을 것입니다. 그 붉나무를 빨갛게 물들인 것은 슬픔일까요, 기쁨일까요? 저도 지금 슬픔이란 감정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는 중입니다. 나이든다는 건 사람도 점점 단풍이 든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든 지금은 해바라기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만, 어린 시절엔 따가운 가을 햇살 쬐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떤 날은 토방에 걸터앉아 하루종일 햇볕을 쬐곤 했지요. 끝에 가선 이마가 슬슬 열이 오르곤 했습니다.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구요. 몸살이 시작되는 징조였지요.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앓고나면 부쩍 커버린 자아를 느끼곤 했습니다.

▲ 조롱박
ⓒ2005 안병기
식물의 열매는 갈수록 단단해지지만 제 감성은 나이들수록 점점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 슬픔이란 감정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살이 오려는 것인가? 정체모를 슬픔 탓인지 이마가 점점 뜨끈뜨끈해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최영미 시 <가을에는> 전부


아시다시피 오늘은 10월의 첫날입니다. 날씨가 맑다해도 멀리가지 않겠습니다. 햇빛이 나즉히 포복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그냥 가을을 노래하는 시나 한 편 읽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