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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싶은풍경

1000번의 가을…늘 얼굴 붉힌 수줍은 숲으로

by 진 란 2011. 11. 15.

1000번의 가을…늘 얼굴 붉힌 수줍은 숲으로

 

오래된 숲에 가면 오래된 나무를 만난다. 이 중에는 자연적으로 생성돼 오랜 기간 존재해온 원시림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특정 목적으로 조성한 숲이 여러 세대에 걸쳐 남아 있는 인공림도 있다. 바라만 봐도 세월의 흔적과 위용이 느껴지는 숲도 있지만 알고 봐야 역사성을 느낄 수 있는 숲도 있다. 어느 쪽이든 오래된 숲은 고유의 정취를 갖는다. 가을의 끝자락, 나무가 잎을 전부다 떨구기 전에 숲 속으로 들어가보자. 보호를 위해 출입을 막아둬 밖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숲은 제외했다.

함양 상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의 함양상림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함양 태수를 지내던 시절,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는 숲이다. 함양읍의 서쪽을 흐르는 위천(渭川)가를 따라 둑을 쌓고 둑을 따라 나무를 심었다. 인공숲 중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성된 지 1100년이 넘었다. 일대가 공원으로 조성돼 있어 접근성이 좋다. 특히 단풍이 고와 가을 경치가 아름답다.

단풍이 한창인 경남 함양 상림의 나무들 사이로 한 연인이 걷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상림(上林)이라는 건, 말 그대로 위쪽의 숲이란 의미다. 숲을 조성하던 당시엔 위천이 매년 넘쳐 홍수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이 숲을 조성하면서 홍수 피해가 많이 줄었는데, 이후 대홍수가 한 번 나고 둑이 중간에 파괴돼 위쪽의 상림과 아래쪽 하림으로 갈라졌다. 지금 하림 쪽은 나무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상림에는 소나무·측백나무를 비롯해 굴참나무·상수리나무·이팝나무·회화나무 등 12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은 이름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휴식처로도 애용되고 있다. 공원 안에는 이은리 석불, 함화루, 초선정, 함양척화비 등 문화재들이 여럿 있다. 상림과 이어진 필봉산 산책로를 '최치원 산책로'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 길도 걸어볼 만하다.

■ 성주 경산리 성밖숲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옛 성주읍성 밖에 조성돼 있다. 경산리 성밖숲은 인공림이지만 홍수나 바람 등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만든 숲이 아니다. 조선 중기 성 밖 마을의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는 등 안 좋은 일들이 이어지자 이를 방지하려고 만들었다. 즉 지역의 풍수지리와 토속신앙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가꿔온 전통적인 마을숲으로, 지역의 향토성과 역사성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성주읍성의 성곽은 사라졌다. '성밖숲'만이 남아 옛 성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다.

숲은 나이가 300~500년 된 왕버들 노거수 50여그루만으로 이뤄져 있다. 한 가지 종으로만 이뤄진 단순림이라 생물학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의 훌륭한 휴식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성주군 중심을 흐르는 이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대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 보령 외연도 상록수림

충남 보령시 외연도는 '외연 열도'로 일컬어지는 일대 흩어진 여러 섬들 중 하나다. 외연도 상록수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상록수림의 하나다. 섬마을을 보호하는 서낭림으로 주민들이 풍어제를 올리는 등 신성시하고 있다. 게다가 외딴 섬에 위치하고 있어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물고기가 서식하는 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해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어부림(魚府林)의 역할도 한다.

'당산'이라고 부르는 마을의 산을 올라야 상록수림을 만날 수 있다. 나무 데크로 산책로를 잘 조성해놓아 오르는 데 큰 불편은 없다. 동백나무·후박나무 등 상록활엽수, 팽나무·자귀나무·구지뽕나무·상수리나무 등 낙엽활엽수, 담쟁이덩굴·칡·청미래덩굴 등 상록덩굴식물 등이 자라고 있으며 다양한 야생화도 볼 수 있다.

이곳의 동백나무에는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랜 옛날 섬사람들이 남쪽으로 왕래할 때 옮겨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중국 제나라 전횡장군이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전횡장군은 한나라에 쫓겨 병사들과 함께 이곳에 피신해 있다가 항복을 강요받자 병사들과 섬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자결했다고 한다. 오르다보면 전횡장군의 사당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수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외연도 풍어당제가 열리는 곳이다.

■ 영천 자천리 오리장림

오리장림(五里長林)이란 이름은 숲의 길이가 5리(2㎞)에 달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나무들을 따라 국도가 나 있지만 과거 도로가 나기 이전부터 길게 울창한 숲을 이뤘다 한다. 현대에 와 국도가 생기면서 숲이 나눠지고 도로 확장 등으로 상당 부분 유실됐다. 지역 주민들은 보통 자천리에 있다고 해 자천숲으로 부른다.

조선시대인 1500년대에 마을 주민들이 손수 만들었다고 하는데, 마을의 바람을 막고 제방을 보호해 홍수를 막는 역할을 했다. 이에 더해 마을 수호의 기능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숲이 만들어진 때부터 매년 정월 대보름날 자정에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한 제를 올리고 있다.

숲이 많이 남아 있는 자천 마을 앞으로 고현천이 흐른다. 은행나무·왕버들·굴참나무·팽나무 등 10여종의 노거목들이 주를 이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주소는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 이로사 기자 r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