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진란*
진란
장마가 길어진다고 하였다
지루하게 비가 쏟아졌다가 그쳤다 우기의 횡포이다
인사동을 걷다가 비를 피해 들어간 갤러리,
순간의 틈새, 파르르 피어난 너를 만났다.
팔의 힘을 빼고 내공을 실어 필살의 선으로 휘익
공간을 가르며 피어난 여백의 핏방울이
빈 들에서 만난 소낙비처럼 영혼에 스민다
시간을 갈아 농도를 조절하는 붓의 힘으로
난을 친 적 있었던가
고쳐지지 않는 오랜 습성으로 살아온 마흔아홉수로
곡선이 멈추는 뿌리에 닿아본 적은 있었던가
뼈대도 없는 난의 문장과 행간을 짚어보기라도 하였는가
아홉수를 놓는 수壽틀에 너를 뜨며
난 잎을 울력하는 빗소리와도 맞장을 뜨고 볼 일이다
다짐하는 사이, 햇살이 난향에 앉는다
*난蘭의 한 종류
(시집에 엮을 때에 미처 주를 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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