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소식

“한옥으로 모십니다”

by 진 란 2011. 1. 15.
“한옥으로 모십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울산 본사 옆에 5개동 460㎡(123평) 규모의 한옥 영빈관을 완공했다.

궁궐 같은 한옥 영빈관에서 현대중공업 울산 공장을 방문하는 선주(船主)를 모시고 수주를 따내기 위해서 공들여 만든 공간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한번도 노출되지 않은 현대중공업의 영빈관은 한옥건축가들 사이에서 규모뿐만 아니라 최고급 자재와 기술력을 이용해 제대로 지은 ‘고급 한옥’으로 알려졌다.

대중이 한옥을 선호하면서 관공서부터 대기업 영빈관까지 한옥으로 변신 중이다.

약 10년 전부터 서울 북촌 한옥마을과 전주 한옥마을이 언론에 회자됐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옥의 매력이 새삼 주목받는 계기였다.

 

이전까지 한옥은 살기 불편하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겨졌다면 이제 한옥은 아름답고 독창적인 우리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자 예전에 자취를 감췄던 한옥이 생활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토해양부, 한옥지원사업

우선 공공기관 한옥들이 등장하고 있다.

2005년 개관한 최초의 한옥 청사인 서울 ‘혜화 주민자치센터’가 대표적이다.

1940년대 지어진 ‘ㄷ자’ 모양의 전통 한옥 외관을 그대로 살렸다.

한옥으로 지었을 뿐인데 전국 각지의 방문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혜화 주민자치센터를 보러 찾아왔다.

 

이런 대중들의 뜨거운 호응에 각 지자체와 국토해양부는 앞장서서 한옥 어린이집, 한옥 도서관 등을 짓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어린이집은 2005년 국립국악원 한옥을 개축해 문을 열었다.

전통문양이 찍힌 어른 키 높이의 담벼락을 따라가다 보면 한옥 대문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ㄱ’자 한옥 한 채와 드넓은 앞마당이 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들에게 인기가 좋아 2~3년씩 기다려서 입학하기도 한다.

경기도 안산시 관산도서관, 군포시 산본도서관, 전남 여수시 현암도서관 등도 한옥으로 재단장했다.

서울시 구로구청도 조선시대 서원의 건립방식을 따라 만든 어린이도서관을 오는 3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생활공간인 한옥은 온종일 머물러도 편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아이들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장시간 책을 읽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한옥은 도서관으로 제격이다.

이런 공공기관의 한옥열풍 배경에는 정부의 지원이 있다. 국토해양부는 2007년부터 매년 5억원 규모의 ‘한옥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충남 공주 한옥 숙박촌, 경기도 이천 도자기체험관 등 한옥으로 지어진 공공기관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국토해양부 건축문화팀 허홍재 사무관은 “도서관이나 유치원 등을 한옥으로 짓는 것은 대중에게 우리 것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려는 의도”라며 “아파트 일색의 주거환경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2014년까지 360억원을 투입해 연구개발(R&D)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의 ‘신(新)한옥플랜’을 지난해 5월 발표하는 등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옥호텔 ‘라궁’ 최고숙박시설 수상

한옥 치과도 생겼다.

오금숙(45)씨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옥 건물로 지어진 e-믿음치과의 단골이다.

2005년 한옥을 개축해 문을 연 치과 안에는 진료실, 간호사실, 휴게실이 ‘ㅁ’자형으로 빙 둘러 있다.

 

한옥 한가운데에는 아담한 정원이 가꿔져 있어 편히 쉴 수 있다.

통풍이 잘되는 한옥 구조라 기존 치과하면 떠오르는 소독약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치과 진료를 받기 위해 의자에 기대 누우면 서까래 지붕기둥과 격자무늬의 창살이 눈에 들어온다.

 

오씨는 “제일 무서운 병원이 치과잖아요. 하지만 한옥치과는 편안한 기분이 들어 매번 카페 오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대기업도 앞장서 고급 한옥으로 호텔, 영빈관 등을 지어 해외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부토건은 2007년 경주시 보문단지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국내 최초의 한옥호텔 ‘라궁(羅宮)’을 지었다.

 

2009년 방영한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대통령 손자 윤지후(김현중 분)의 고급스러운 저택으로 나온 곳이다. 1만6525㎡(약 5000평) 부지에 한옥 독채 16채와 인공 연못, 누마루 등이 들어서 있다.

 

라궁의 96㎡ 스위트형 한옥 숙박료는 46만원 선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외국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옥호텔을 즐기기 위해 경주까지 찾아간다.

라궁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2010 한국관광의 별’의 최고숙박시설 부문 상을 수상하며 한옥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1967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영빈관인 신라호텔 연회장 ‘영빈관’도 지난해 G20 정상회의를 겨냥해 한껏 한옥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공사를 새로 했다. 가장 한국적인 외관을 만들기 위해 기와의 선과 창살 문양 등을 다시 손봤다.


기업 영빈관도 한옥 바람

호텔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해외 귀빈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영빈관’을 짓고 있다.

1984년에 지어진 서울 한남동 삼성그룹 ‘승지원’은 호암 이병철 삼성 회장의 거처였고 현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승지원은 이건희 회장이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빌 게이츠 전 MS 회장 등 수많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장소로 유명하다.

해외 수출이 많은 기업일수록 한국적인 매력을 살린 한옥에 투자하는 추세다.

현대중공업 한옥 영빈관과 삼성그룹의 영빈관인 승지원이 좋은 사례다.

삼성의 승지원과 현대중공업의 영빈관 모두 중요무형문화재인 신응수 대목장이 직접 참여했다.

신응수 대목장은 경복궁, 광화문 복원 도편수(총지휘자)를 맡은 국내 대표 궁궐전문가다. 그가 직접 자재 선별부터 설계, 시공까지 전통방식으로 지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들이 얼마나 ‘영빈관’에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용도와 모양은 다르지만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한옥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수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국가 경제력과 한류열풍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졌고, 그중에서도 한옥은 한국 브랜드를 세계화시키는 대표주자로서 주목받고 있다”며 “한옥의 자연적·문화적 매력이 서구 건축보다 뛰어남을 우리가 이제 깨달았기 때문에 한옥 열풍은 앞으로도 커다란 흐름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영철 차장

/ 이은규 인턴기자
[주간조선] 2011년 01월 15일(토) 오전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