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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민주주의 질식시키는 ‘자본의 친위쿠데타’ / 이봉수

by 진 란 2009. 8. 14.

민주주의 질식시키는 ‘자본의 친위쿠데타’ / 이봉수

 

» 민주주의 질식시키는 ‘자본의 친위쿠데타’, 그림 김영훈 기자

1905년 겨울, ‘을사5적’으로 지목된 이완용은 분개하여 고종에게 아뢴다.

 

“5인은 끝내 조약의 개정에 힘을 다하느라 목숨 돌볼 겨를이 없었건만 허다한 백성들 속에 깨닫고 분석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한 마리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만 마리 개가 따라 짖듯 소란을 피워 안정되는 날이 없습니다.”(고종실록)

 

그는 을사조약에 대해 “외교 한 가지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가 부강해지면 돌려줄 날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상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동양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민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라고 강변하며 부귀를 누렸다.

 

2009년 여름, 언론·시민단체들은 언론법 무효화를 위한 공동투쟁을 벌이기로 하고 여당 국회의원 9명을 ‘언론악법 9적’으로 규정했다.(<한겨레> 7월24일치)

 

그러나 ‘9적’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위기에 빠진 미디어산업을 구하기 위해 ‘유일한 활로’를 만들어주었다고 자부하는 듯하다.

 

대치국면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몇 명을 지목해 공격하는 식의 담론 활동은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종종 그들을 상대 진영의 공신으로 만들고, 진짜 배후세력을 숨겨주게 된다. 경술국치의 최고 책임자가 임금이었듯이 언론법이 악법이라면 그 책임을 가장 무겁게 물어야 하는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러나 <한겨레>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성명을 발표했을 때도, 이 대통령이 언론법 관련 견해를 밝혔을 때도, 모두 1면 2단 기사(27일치, 28일치)로 처리하고 그 발언의 허구성을 따지거나 책임을 추궁하는 해설기사는 내보내지 않았다.

 

사실 그들의 발언은 언론법이 얼마나 그릇된 판단에 근거해 추진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대변한다.

 

이 대통령이 “이것(언론법)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세계는 이미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도 거짓이다.

 

집권 후 정부 영향권 안에 있는 방송매체들을 거의 장악했을 뿐 아니라, 보수신문들과도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한 몸이니 장악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다는 얘기인가?

 

‘언론악법 9적’은 하수인…대통령 연설에 입법 허구성 드러나
민주적 제도들 훼손 못하게 자본에 포획된 정부 견인해내야
사회 근간 흔드는 삼성엔 ‘제자리 찾아주기’ 어젠다로 맞서길

 

언론에 대한 대통령과 ‘9적’의 인식도 실은 ‘조중동’이 제공하는 보수 프레임의 한 각론일 따름이다.

 

‘9적’ 중 ‘5적’이 언론계 출신이기도 한데, <동아일보> 출신 김형오 의장의 성명서에도 그런 인식이 드러난다.

그는 언론법 개정으로 “우리도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고, 시청자 주권과 여론 다양성이 어느 정도 확장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맞게 될 미디어 환경은 우선 ‘세계적 추세’가 아니다.

 

‘언론 황제’ 루퍼트 머독의 모국인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그를 위해 2006년 신문-방송 교차소유를 허용한 것이 눈에 띌 정도다. 그가 활발하게 미디어 사업을 벌이고 있는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가 이라크 침공의 주축이 됐던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영국의 블레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하워드 총리는 그의 사업 파트너와 다름없었다.

그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175개 신문 중 단 한 곳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고, <폭스 티브이> 등은 노골적으로 개전을 촉구했다.

 

단순히 언론사 수가 늘어나는 것을 ‘여론 다양성’이나 ‘채널 선택 폭’이 넓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한국에는 많다.

심지어 언론학자들까지도. 벌거벗고 뉴스를 진행하는 <네이키드 뉴스> 같은 방송이 늘어나는 것을 채널 선택 폭이 넓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시청자 주권 또는 소비자 주권 이론은 신자유주의 계열 학자들이 툭하면 내세우지만 그럴듯한 이름과는 달리 언론현장에서는 왜곡되어 나타난다.

 

언론사가 일반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와 다른 점은 두 고객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시청자 또는 독자이고, 다른 하나는 광고주이다. 광고주의 이익을 고려하다 보면 독자를 배신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언론사는 살아남기 위해 대광고주인 재벌과 유착하게 되고 결국 취재 대상인 재벌이 언론사의 논조를 결정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소비자 주권은 종종 ‘광고주 주권’으로 둔갑한다.

<한겨레>가 2년째 광고를 주지 않는 삼성과 타협하지 않는 것도 ‘진정한 소비자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로 평가하고 싶다.

 

<한겨레>는 이번 언론법 국면에서 상당한 구실을 했다.

날치기 처리 이전은 물론이고 그 뒤에도 1주일이 넘도록 1면 머리 또는 종합면들을 아낌없이 할애해 언론법 관련 의제를 끌고 나가고 있다.

 

그러나 상당히 아쉬운 점은 좀더 일찍 언론법 관련 ‘이슈 파이팅’에 돌입하지 못했고, 언론법을 밀고 나가는 동력의 진원지를 파헤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자본, 곧 삼성의 힘이 그것이다.

 ‘조중동’ 가운데서도 <중앙일보>가 신방겸영을 추진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배경에는 삼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삼성은 삼성경제연구소와 <중앙일보> 등을 앞세워 우리 사회 어젠다(의제)를 설정하고 각종 제도를 바꾸는 일에 깊숙이 간여해왔다.

 

기업 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에 침투하면서 ‘기업사회’라는 이름까지 생겨났고, ‘시이오(CEO) 대통령론’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중앙일보>가 2002년 초 어젠다설정위원회를 구성하고 10대 국가과제 중 첫째로 제시한 게 ‘대통령, 제왕에서 CEO로’였다.

 

물론 정부도 비능률을 줄이고 행정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근본적으로 존재 이유가 다르다. 공공성과 효율성은 빈번하게 충돌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의사결정 방식 자체가 다르다.

민주주의가 ‘1인1표’에 따른다면, 자본주의는 ‘1원1표’에 근거한다.

 

<중앙일보>를 앞세운 ‘범삼성그룹’이 방송을 갖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대단히 큰 발언권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중앙>은 <시엔엔>(CNN)을 자회사로 둔 타임워너와 방송채널 공동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자본에 포획된 정부는 방송에 진출하는 신문사나 재벌에 세제 혜택과 함께 종합편성 채널을 조중동 숫자만큼 3개로 늘려주기로 하는 등 주문자 입맛대로 정책을 만들어가고 있다.

 

금산분리가 제대로 안 돼 외환위기까지 겪은 나라에서 분리를 완화하는 금융지주회사법이 언론법 파동 와중에 소리 없이 통과된 것도 삼성이 올린 개가였다.

 

언론법 보도와 함께 또는 별도로 ‘삼성 제자리 찾기’ 어젠다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은데도 언론법이 통과된 것 자체가 선거와 대의제 등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보수언론과 삼성이 국민 여론조차 거스르는 힘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이번에 방송 진출의 개가를 올린 ‘조중동’은 제도가 흔들리지 않고 정착되기를 고대한다.

 

승자들의 희망사항은 25일치 <중앙일보> ‘김상택 만평’에서도 드러난다.

휴가를 떠나는 차들로 메워진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야당 의원들이 “악법 무효”를 외치고 있건만, ‘긴~ 휴가 시작’과 ‘벌써 까맣게 잊혀짐’이라는 문구가 그들과 대중을 조롱한다.

 

민주주의적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수시로 압도되는 나라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여론 다양성마저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장차 어떻게 될까?

 

선거를 치르더라도 표의 향방이 유권자 자신의 이해관계나 공동체적 가치가 아니라 어떤 텔레비전을 오래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건 아닌지?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 민주주의 위에 드리워지고 있다. ‘만 마리 개가 따라 짖을’ 때까지 끈질기게 짖어야 하는 게 진보언론의 숙명인가.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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