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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낯 모르는 시인과 음악인 '영혼의 편지'

by 진 란 2009. 6. 28.
낯 모르는 시인과 음악인 '영혼의 편지'
마종기-루시드 폴...대서양 넘어 2년째 교류

 

 

   

[북데일리]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신비로운 일인지 경험한 자는 모두 알 것이다. 온라인 활동이 활발해진 누군가에게 온전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좋아하는 이와 편지로 교류한다면 진실된 마음을 나누기가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여기,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루시드 폴’(조윤석)과 마종기 시인과 2년간 나눈 편지글<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 2009)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 고국을 떠난지 40년, 플로리다에 정착하고 있는 마종기 시인에게 스위스 로잔에서 조윤석이 보낸 메일로 시작된다. 한국을 떠나 타국에 있는 것, 공학박사이면서 예술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36년이 나이 차이를 무색케 한다.

‘문학을 하시는 선생님은 홀로 글을 쓰는 작업이 당연하게 느껴지시겠지만, 여러 소리를 모아야 하는 음악인에게 혼자라는 사실은 때로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지독하게 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루시드 폴의 편지글>

낯선 하늘과 땅에서 마종기의 <북해>를 읽고 고독하고 외로운 마음을 전하는 루시드 폴은 행복했을 것이다. 마종기 시인의 시를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했는지 메일을 통해 알 수 있다. ‘루시드 폴’이 쓴 노랫말도 우리에게는 시와 같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가 한때 시인이 되고 싶었고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 /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니 /눈발은 몰아치고 세상..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니/눈발은 몰아치고 세상을 삼킬듯/이 미약한 햇빛조차 날 버려도/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날개가 없어도 나는 하늘을 날으네/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돛대가 없어도 나는 바다를 가르네//꽃잎은 말라가고 힘찬 나무들 조차/하얗게 앙상하게 변해도/들어줘 이렇게 끈질기게 선명하게/그대 부르는 이 목소리따라/어디선가 숨쉬고 있을 나를 찾아/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 <루시드 폴의 오, 사랑 가사전문>

가난한 시절이었기에 미국에 온지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비싼 항공료로 인해 찾아뵙지 못한 잃은 슬픔, 시를 쓰는 시인이지만 문단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 느꼈던 마종기 시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공부를 끝마치고 결국 음악을 선택하기로 했다는 '루시드 폴'의 편지글에 대해 인생의 선배로써 시인은 답한다.

‘나에게 산다는 것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고 십 년 뒤, 아니 일 년 뒤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당시의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는 알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생각은 내가 아마추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마종기 편지글>

공연으로 인해 한국에 오고 가며 계절에 따른 날씨를 전하는 ‘루시드 폴’의 편지글에 고국의 하늘과 바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시인의 답 글에서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떠나온 곳이기에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감정의 깊이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촛불 시위을 지켜보면서 떠나온 고국의 정치를 안타까워하고 서로의 친구들의 이야기, 산책 길, 봄날의 날씨 이야기, 하루 일과, 같은 소소한 일상을 나눈다. 이처럼 마음을 나누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좋아하는 음악인의 사적인 일상을 만나고, 황혼기에 접어든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들을 수 있으니 두 사람의 편지글을 읽는 독자는 행복하다.

‘우리가 예술가로서 성숙해간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자유로워진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거도 온전한 자유를 알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 자유 사고에서만 우리는 예술의 진정한 힘을 보고 느끼고 또 즐기는 것이라 믿습니다. 아기자기한 퍼즐도 상징도 자유혼의 오체투지가 없이는 우리를 흔들고 신음하게 하는 살아있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나는 믿고 삽니다. ’<마종기 편지글>

시인의 이 글은 비단 예술가에만 국한 되는 게 아닐 것이다.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마찬가지로 기억해야 할 말이 아닐까. 머지 않아 고국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은 '루시드 폴'의 음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그의 노래를 중얼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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