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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도나텔로

by 진 란 2008. 12. 14.

택시를 탔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앉았고 이마 주름이 밭고랑처럼 패었지만, 근골이 한 가락 하는 기사 아저씨였다. 인천공항으로 가주십시오 했더니, 자기도 왕년에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면서 우락부락한 생김새답게 씩씩한 말투로 옛날 고생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중동특수 시절 사막에서 땀 좀 흘렸다면서 그때 대한민국의 부흥에 이바지하느라 마누라 잃고 결국 요 꼬라지가 되었다며 호탕하게 웃던 기사 아저씨는 갑자기 표정을 진지모드로 세팅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어서 자신이 겪은 속상했던 체험을 하나 들려주었다. 그 당시 중동에 파견되어 이튿날 삭발하고 매일 점호와 빠따에 시달리며 에어컨 하나 없이 사막에서 비지땀을 흘렸던 우리 노동자들은 수 년 간의 고생 끝에 깜둥이가 되어 귀국 비행기를 타면서 하나같이 큼직한 일제 카세트레코더를 하나씩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걸 고이 들고 와서 남대문 도깨비시장에 갖다 팔면 용돈벌이가 짭짤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돌덩이보다 무거운 이민가방에다 일제 쌤삥 카세트레코더를 덤으로 끼워서 들고 오는데, 입국장 세관에 도착하면 애지중지 들고 온 그놈을 풀어서는 무지막지하게 생긴 일자 드라이버로 윗판을 죽 긁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상품가치가 없어지니, 일제 아니라 일제 할애비라도 팔아먹지 못하고 집에서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에 의하면 바로 그 순간 깜둥이 열사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그건 카세트레코더의 상품가치가 날아가서가 아니라 청춘 바쳐 나라위해 죽을 고생하고 온 산업역군들이 역경 끝에 돌아온 조국 대한민국으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극사실주의적인’ - 나도 미네르빠가 되었나 봐 - 자괴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30년 전을 회상하는 아저씨의 눈에 눈물이 설핏 비쳤다. 내가 헛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사아저씨가 발음한 대한민국이 ‘개한민국’으로 들렸다.

 

 

 도나텔로 <성 게오르기우스> 1416-17년. 높이 209cm. 대리석, 피렌체 바르젤로 박물관.

 

이 작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가 도나텔로의 <성 게오르기우스>이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이탈리아 예술가의 처지는 30년 전 중동파견 노동자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껏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 타박을 받거나 대금을 떼이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도나텔로도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두상을 의뢰받고 근사하게 만들어서 갖다줬더니, 코가 어떻다 입이 어떻다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가격을 후려칠 작정으로 밑밥을 뿌리는 수작을 눈치 챈 도나텔로는 쇠망치를 후려쳐서 제가 만든 두상을 깨부수고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고 한다. 예술의 가치를 몰라본 얼치기 귀족이 졸지에 르네상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도나텔로라고 하면 그 당시 교황성하께서도 순번표 뽑고 몇 해를 기다려야 작품 한 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조각가였다. 미켈란젤로의 사부의 사부로도 알려져 있는 도나텔로조차 촌구석 귀족 나부랭이한테 이런 푸대접을 받았다니, 다른 예술가들의 사정은 어땠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도나텔로의 걸작으로 알려진 <성 게오르기우스>는 원래 기독교 성자전 [황금전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못된 악룡을 창으로 꿰어서 제압하고 먹잇감이 될 뻔 한 공주님을 구출한 일로 백마 탄 기사의 원형으로 불리게 된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제단화와 경배화를 막론하고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말에 올라타고 큰 창을 내질러서 악룡의 목을 꿰뚫는 통쾌한 순간 성을 배경으로 묶여 있던 공주는 기도를 올리는 자세를 취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사 성 게오르기우스를 재현한 그림에서는 항상 말, 창, 용, 공주가 덤으로 나온다. 말, 창, 용, 공주가 없으면 성 게오르기우스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도나텔로의 작품에는 말, 창, 용, 공주가 보이지 않는다. 성 게오르기우스를 다른 기사로 혼동하기 십상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 도나텔로에게 작품을 의뢰한 주문자는 피렌체의 무구와 방패를 제작하는 길드였다고 한다. 말, 창, 용, 공주가 다 나오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성 게오르기우스에게 다른 것 다 치우고 방패 하나만 들게 함으로써 자기네 제품 딱지가 붙은 방패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성자의 브랜드 가치를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바람에 중세의 성인이 르네상스 시대의 CF스타로 변신하기는 했지만.

 

 

출처 :미술과 천번의 입맞춤 원문보기 글쓴이 : 시간을 달리는 유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