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님 추천"만주의 친일파" MBC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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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 망명길에 올랐고,
독립운동을 하다 1936년 뤼순감옥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유골이 충북 청주 남성면 고향으로 귀향했을 때 '무국적자'라는 이유로 매장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게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글 중에서-----
이 나라는 지금 역사의 준엄함을 망각하고 노예정신으로 충만한 자들이 기세등등하게 판치고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은 언론인이자 소설가, 역사학자, 사상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분으로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일이라면 어떤일도 가리지 않고
앞장섰던 선각자였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절대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며 선 채로 세수를 했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는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자 이승만을 향해"나라가 독립도 되기전에 나라를 팔아먹을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승만은 해방 후 미군정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이 빌미가 되어 이승만은 신채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렇게 흘러오다보니 해방 62년이 지난 조국에서 아직도 선생은 국적이 없다.
1912년 일제는 조선의 호적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조선민사령'을 제정했다.
단재 선생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 망명길에 올랐고, 독립운동을 하다 1936년 뤼순감옥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유골이 충북 청주 남성면 고향으로 귀향했을 때 '무국적자'라는 이유로 매장에 어려움을 겪기까지 했었다.
또다른 일화 / 일제음식 회를 먹고, 무슨 음식이길래 맛있냐고 친구에게 물어보니
일본의 회라는 말을 듣고 바로 토해냈다..
단재 신채호선생 128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 한답니다.
시간 여유가 되시는 분들께서는 꼭 참석하세요.
□일시 : 2008년 12월 3일 (수) 14:00-17:00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주최 :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후원 : 국가보훈처,광복회,경향신문,유관기념사업회,단체 등
일어나라, 열사여 / 정태춘, 박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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