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의동에서 영의정처럼 놀아보라
포화상태 인사동·삼청동 대안으로 떠올라… 들머리 → 효자로 → 영추문 → 솔바람길, 영리보다는 공동체 지향 공간들 눈에 띄네
△ 통의동 일대를 수놓고 있는 문화공간들. 위부터 가구카페 mk2, 갤러리카페 고희, 진화랑, 서민 식당과 일제시대 적산가옥 등이 늘어선 효자로변, 열린 가게 ‘가가린’의 내부, 문화거리인 영추문길 풍경, 갤러리 ‘아트다’ 전경. |
“권력 때문에 불편하면서도 즐거운 동네죠. 그 묘한 이중성을 즐기며 삽니다.”
조선 왕실의 정궁인 서울 경복궁 서쪽 동네 통의동을 건축가 황두진씨는 이렇게 평했다. 그는 통의동 거리의 옛 ‘열린책들’ 사옥을 설계한 인연으로 6년째 이 동네에 산다.
통의동은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을 마주 본다. 바로 위쪽인 청와대 들머리의 효자동, 창성동과 더불어 권력과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공존해온 곳이다.
요즘도 효자로 등의 큰길 들머리는 촛불시위에 대비한 전경버스의 살벌한 행렬이 이어진다.
반면, 미로처럼 막다른 골목길이 얽힌 안쪽에는 70년대 서민 주택가 특유의 푸근한 운치와 향수가 서려 있기도 하다.
청와대와 경복궁의 권력장 틈바구니에서 수백 년 동안 질긴 삶을 꾸려온 이 동네가 새삼 각광받고 있다.
한적했던 거리와 골목길에 화랑과 디자인 공방, 찻집, 레스토랑, 출판사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주말엔 관람객들 발길이 몰리는 ‘문화촌’으로 풍광이 바뀌고 있다. 문화, 소비 시설들이 포화상태에 이른 인사동, 삼청동의 대안으로 통의동을 꼽는 이들도 늘었다.
2~3개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 추진 중
그 변화의 중심은 통의동과 창성동의 경계인 영추문길이다.
3년여 전부터 길가 양쪽에 갤러리 쿤스트독, 브레인팩토리, 갤러리팩토리 등 젊은 작가들의 대안공간이 들어서더니, 지난해부터 디자인 공방 ‘워크룸’과 갤러리 카페, 소화랑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효자로에서 영추문길로 꺾어드는 길목인 옛 보안여관 건물과 일제 적산가옥, 한옥 골목길 등지에는 재력가들이 참여한 2~3개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2006년 12월 출판 편집자, 디자이너, 사진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협동공방 ‘워크룸’과 수입 아트가구를 전시 판매하는 가구 카페 ‘MK2’가 생기면서 젊은 관객들 발길이 부쩍 늘었다.
출판물 디자인을 주로 하는 워크룸은 출판사 안그라픽스 출신의 실력파 디자이너들이 만든 공방. 실비로 젊은 작가들의 도록 작업을 해주고 파격적인 디자인의 박물관 도록 등을 내놓는 한편, 젊은 디자이너 전시도 병행하고 있다.
이 공방 에디터 박활성씨는 “강남, 삼청동 등과 달리 분위기가 차분하고, 상업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작가나 애호가들의 눈을 끄는 것 같다”며 “공방과 화랑들이 다 한 길가에 있어 자연스럽게 소통되고 하는 일도 서로 엮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갤러리팩토리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간이 경매도 종종 열린다. 공방 건물을 끼고 위쪽으로 꺾인 골목에는 삼청동에 있던 갤러리 자인제노가 두 달 전 옮겨왔다. 갤러리 카페인 ‘고희’도 자리를 잡았다.
좀더 윗길인 솔바람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 2층 떡집을 개조한 갤러리 ‘아트다’가 세 달 전부터 기획전을 벌이고 있다.
9월에는 평론가 오광수씨가 카페 고희 뒤편에 사저를 신축하면서 1층을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창성동 북쪽 끝에는 한 건축회사가 아트센터 활용 등을 위한 신축 건물을 짓고 있기도 하다.
워크룸 공방 맞은편에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있다.
국내 미술판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소장한 기록전문가 김달진씨의 아카이브 전시관으로 9월 정식 개관전을 열고 미술인들을 끌어들일 참이다.
이 일대를 출퇴근로로 삼았던 옛사람들
전경의 단골 경비 구역인 남쪽의 경복궁역 동네 들머리도 풍광이 바뀌었다.
유명한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검회색빛의 육중한 고도빌딩이 지난해 연말 완공돼 화랑 등의 문화공간 임대 채비를 하고 있다.
바로 위쪽 건물에는 ‘갤러리 차’가 두 달 전에 입주해 젊은 신예작가들의 작품전을 벌이는 중이다.
뒤이어 기존 건물인 대림미술관과 통의동의 터줏대감인 진화랑이 있고, 옛 열린책들 사옥(현 씨네마서비스 사옥)도 자리잡고 있다. 자연스럽게 들머리부터 효자로와 영추문, 솔바람길을 따라 문화시설의 동선 축이 형성된 셈이다.
이 지역 부동산 전문가인 김준섭씨는 “화랑주는 물론 대기업, 컬렉터 수십 명이 미술관, 화랑터를 물색하기 위해 부탁을 해오거나 직접 돌며 터를 찾고 있다”며 “앞으로 2~3년 사이에 효자로 주변 일대가 급속도로 풍경이 바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의동 일대가 각광받는 데는 삼청동, 인사동에 비해 월등히 싼 임대료와 집값이 직접적 원인이다.
하지만 이 지역이 지닌 독특한 문화적 전통과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원래 통의동, 창성동 지역은 조선시대 중·후기 왕궁에 고기, 소금, 땔감 등의 생필품을 대던 사재감이 있었다.
경복궁 서쪽에 궁궐의 관료 행정기구인 궐내각사가 있었기 때문에 고위급 관료들은 영추문으로 출퇴근하면서 통의동 일대를 출퇴근로로 삼아 생활문화를 꽃피웠다.
그래서 자연히 이를 다루는 중인과 공방 사람들의 생업 터전으로 활기를 띠었던 곳이다.
조선 중·후기 중인들이 시사 모임을 결성하며 꽃피웠던 여항(閭巷)문화의 본산지도 바로 이곳 통의동과 옆의 옥인동 일대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문화촌 형성 과정은 삼청동, 인사동과는 다분히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새로 들어서는 문화시설들이 상업 화랑 등의 영리시설보다는 미술관이나 문화인들의 모임터를 겸한 자영 화랑, 갤러리를 겸한 카페 등을 주로 지향한다.
문화공간끼리 공간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공동 활동을 벌이는 점도 눈에 띈다.
지난 2월 워크룸 공방과 갤러리팩토리, 건축가 서승모씨 등이 공동 출자해 만든 열린 가게 ‘가가린’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정한 연회비를 내고 회원에 가입해 소장한 책이나 생활 물품들을 다시 파는 재활용 가게인 가가린은 현재 회원이 100명을 넘어섰고 하루 이용객만 40~50명에 달한다. 이 가게를 전시 장소로 임대하고, 서너 달에 한 번씩 문화 이벤트 등을 열겠다는 복안이다.
정부청사를 문화시설로
통의동의 앞날에는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카페, 레스토랑 등의 소비시설이 집중되면서 상업소비지구로 변질된 삼청동, 인사동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옥보존지구 등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토박이 주민들 상당수는 생업과는 거의 연관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문화지구화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건축가 황두진씨는 “주민들의 삶과 연계되는 것을 전제로 어느 정도의 공공적 개입이 필요하다”며 △영추문의 개방 △영추문길 들머리 정부청사 별관의 문화시설 활용 등을 제안했다.
디자이너 김형진씨는 “문화시설 운용자들의 개인적 의지를 잘 추슬러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며 △영추문길의 주말 차 없는 거리화와 일방통행로 보장 등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통의동은 왕궁의 주요 물산과 인력이 오가는 출입 공간으로 번영했지만, 일제시대 동양척식회사의 사택터로 무단 개발되면서 역사성을 단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최근의 변모가 통의동의 역사성, 주민들의 생활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진척될지 지켜볼 일이다. ▣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세련된 웰빙 공간’ 변신…‘고급 주택’ 지위 격상 | |||
신(新) 한옥 전성시대 | |||
어린 시절 우리들 집은 작은 한옥이었다. 나무 대문을 삐걱하고 열면 조각난 햇볕이 드는 작은 마당이 보이고 부엌, 마루, 방이 기역자 모양으로 앉아 있던 집. 빨간 샐비어와 반들반들한 장독대, 강아지 ‘쫑’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런 소박한 한옥이 요즘 최고로 ‘잘나가는’ 주거 양식이 됐다면 믿어지는가. 한옥이 첨단 주상복합 뺨치는 ‘21세기형 고급 주택’으로 변신하고 있다. 일부 인기 지역에선 몸값이 천정부지다. 금이야 옥이야, 지자체가 나서서 애지중지 보살피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재개발·재건축 바람은 한옥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한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보급되면서 ‘살기 불편한’ 한옥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기와가 너덜너덜한 한옥 밀집지는 재개발 대상 1순위에 올라 가차 없이 불도저에 밀렸다. 현재 서울시 전역에 남아 있는 한옥은 2만 채가량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2년 전인 지난 2006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한옥은 종로구 성북구 동대문구 등지에 2만4000여 채가 있다. 골목길을 중심으로 50채 이상의 한옥이 군집한 곳은 98여 개 지역이다. 수치로 보면 아직 제법 많은 수의 한옥이 서울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재개발 등의 개발 대상 구역에 속해 있어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조사 시점이 2년이나 지난만큼 그동안 적지 않은 폭의 감소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아현동과 창신동 등은 뉴타운 같은 대규모 재개발사업구역에 속해 있고 신공덕동 공평동 익선동 등은 도심재개발구역에 속해 있어서 그 운명이 풍전등화 격이다. 청량리동 홍제동 등도 균형발전촉진지구에 속해 있다. 시정개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총 98개 한옥 밀집 지역 가운데 62개 지역이 일부 또는 전체가 개발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개발 예정지에 포함된 한옥은 전체의 48.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남아 있는 한옥들도 개발 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북촌 ‘핫 플레이스’로…새 단장 ‘한창’ 이처럼 한옥이 급속도로 줄고 있는 현실 이면에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옥이 전에 없는 인기를 구가하면서 첨단 주상복합 아파트 뺨치는 트렌디한 주거 공간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는 유행을 가장 빨리 반영하는 방송 드라마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일일 드라마 ‘아현동마님’의 주인공 가족은 한옥 저택을 대가족의 생활 터전으로 선택한다. 소나무로 지은 황금색 한옥의 웅장함과 넓은 정원은 시청자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SBS 드라마 ‘온에어’에서는 연예인 매니지먼트사의 사옥이 한옥으로 설정되기도 했다. 원칙을 고수하지만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가 한옥 사옥과 잘 매치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2006년 서울 시장 임기를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가회동 한옥으로 이사한 것도 한옥에 대한 이미지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대선 출마 이전 이 대통령은 가회동 한옥에서 각종 방송, 잡지 인터뷰를 진행해 전통 가옥을 사랑하는 우아한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이처럼 한옥은 방송과 유명인을 통해 여러 사람이 선망하는 주거 공간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배경에는 ‘북촌’이라는 한옥 밀집지가 자리 잡고 있다. 드라마 속 멋진 한옥이 있는 곳도, 이명박 대통령이 살았던 곳도 모두 북촌이다. 북촌은 서울에서 한옥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지칭하는 북촌은 두 군데 대궐 사이에 있다고 해서 ‘양궐 사이’라고도 한다. 현재 가회동, 삼청동 등 9개 동에 900여 채의 한옥이 남아 있다. 북촌은 한옥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피는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서울시가 대표적인 한옥 밀집지인 북촌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하고 2001년부터 북촌가꾸기사업을 시작한 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첫 번째 계기가 됐다. 이후 2006년까지 800여억 원의 지원금이 풀리면서 새 단장하는 집이 하나둘 늘어났다. 서울시 북촌사업추진반 관계자는 “지금까지 300여 건의 한옥 개·보수 지원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두 번째 계기는 입소문에서 비롯됐다. 북촌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 블로그를 장식하는 1인 미디어가 많아진 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북촌 초입의 A부동산 관계자는 “주말에 카메라를 들고 북촌을 찾는 젊은이들이 바로 북촌 홍보대사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의해 북촌이 구석구석 소개되면서 ‘서울의 명소’로 거듭났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을 추억하는 이들에겐 한옥이 가진 친환경적인 장점이 첫손 꼽히는 매력이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자연 친화적인 집이라는 점은 요즘 유행이라는 웰빙과도 정확하게 매치된다. 박명덕 동양공전 건축과 교수는 ‘한옥’이라는 책에서 “한옥은 자연 속 선경에 어울려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박 교수는 또 “마당을 통해 연결되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는 각기 개방성과 폐쇄성을 유지하고 마루와 온돌은 여름과 겨울이 있는 한반도 기후에 가장 적합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한옥 건축업을 하고 있는 김장권 북촌HRC 대표도 “한옥의 자연 친화적이고 과학적인 설계가 가지는 매력이 대단하다”면서 “좋은 집을 찾다 보면 한옥이 정답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한옥이 가진 희소성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재개발 열풍으로 한옥이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한편에선 희소성에 주목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한옥이 많은 지역이 사대문 안 입지 여건이 좋은 도심이라는 사실은 재테크적 가치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한옥의 재테크적 가치를 역설해 온 고종완 RE멤버스 대표는 “북촌의 경우 입지 여건이 좋은 데다 희소성까지 갖춰 금상첨화”라면서 “한옥의 자연 친화적인 매력과 상품성에 눈을 뜨는 자산가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웰빙 생활에 투자 가치까지 ‘일석이조’ 도심 속 세컨드 하우스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도심 가까운 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원하는 고령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북촌 투자 움직임이 늘고 있다”면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입지 여건이 좋은 데다 물량이 한정돼 있으니 가치 상승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러니 덩달아 땅값 집값도 뛰고 있다. 서울시가 북촌을 보존하겠다고 나선 2001년 3.3㎡당 500만 원선이던 땅값은 2006년 1000만~1500만 원선으로 오르더니 지금은 3000만 원선으로 뛰었다. 북촌 인근 안국부동산 관계자는 “아파트와 달리 시세가 공개되지 않고 물량이 달리는 통에 주인이 부르는 게 곧 값”이라고 전했다. 가회동에서만 30년 살았다는 D부동산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 한옥이 있는 가회동 31번지는 얼마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높이 형성돼 있다”면서 “가회동 터줏대감들도 지금 가격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체부동 통의동 등 경복궁 왼쪽의 한옥 밀집지는 가격이 다소 낮은 편이다. 최근 한옥 보존 필요성 때문에 재개발이 불허된 체부동의 경우 3.3㎡당 2000만~2200만 원선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김연주공인중개사 대표는 “다른 지역 같으면 재개발이 불허되면 즉시 집값이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체부동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한옥 보존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는 얘기다. 한옥 재개발 등 지자체 지원 ‘팍팍’ 지금으로선 한옥만큼 귀하게 취급되는 주택이 없다. 강남 재건축이 맥을 못 추고 종합부동산세에 양도세가 주택 경기를 짓누르고 있지만 한옥만큼은 무풍지대다. 오히려 뒤를 팍팍 밀어주는 지원 정책에 눈이 돌아갈 정도다. 특히 서울시가 한옥 밀집지 보존에 팔을 걷어붙인 데다 한옥의 장점을 잘 알지 못하는 20~30대 젊은 층에서도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도 주가가 계속 올라갈 조짐이다. 특히 서울시는 북촌을 한옥 재개발하겠다는 구상까지 내놨다. 서울시가 구상하는 한옥 재개발은 낡은 한옥을 허물고 아파트 등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한옥을 다시 짓는 새로운 재개발 방식을 말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주택국 내에 한옥 재개발 테스크포스팀을 설치하고 대상 구역 설정, 방식 등을 연구하고 있다. 주택국 관계자는 “한옥 재개발은 멸실 방지 대책과 함께 추진된다”면서 “서울의 전통성을 회복하면서 웰빙 주택인 한옥의 보급을 확산시키는 쪽으로 사업이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서울시는 한옥보존지구를 삼청동 팔판동 일대로 확대하고 한옥 외의 주택을 신축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옥 재개발의 전초 작업을 한 셈이다. 이로써 한옥보존지구는 가회동 계동 등 64만5000㎡에서 107만6302㎡로 커졌다. 서울시의 한옥 프로젝트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옥 소유자가 주택을 팔 경우 장기 전세 주택인 시프트나 일반 분양 주택을 특별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서울시가 사들인 한옥은 외국인 게스트하우스로 위탁 운영하는 등 한옥마을 운영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는 2002년부터 한옥 개·보수와 신축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개·보수의 경우 전체 비용의 3분의 2 이내에서 최대 3000만 원까지 무상 지원된다. 또 2000만 원을 연 1% 이자 조건으로 융자받을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등 일반에 개방하는 한옥인 경우는 최대 6000만 원을 무상 지원받을 수 있다. ‘껍데기만 한옥’ 곱지 않은 시선도 하지만 서울시의 북촌가꾸기사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살던 평범한 마을 북촌이 인위적인 개·보수와 신축 정책에 휘둘려 ‘무늬만 한옥마을’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남산 한옥마을처럼 껍데기만 남아 관광객을 위한 전시장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시가 무상으로 개·보수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콘크리트에 기와를 올린 가짜 한옥’을 양산한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북촌에 살던 영국인 데이비드 킬번 씨가 서울시의 북촌가꾸기사업에 반대하다 시공업자 등과 몸싸움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당시 킬번 씨는 “한옥 개·보수를 한다면서 전통 한옥의 구조를 무시한 공사가 공공연하게 벌어져도 별다른 규제가 없다”면서 분통을 터뜨렸었다. 북촌가꾸기사업 때문에 북촌 일대가 부동산 투기장화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나와 있다. 실거주 목적보다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한 투자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촌 D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 손바뀜된 한옥 가운데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꽤 있다”면서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시세 차익 목적으로 사 두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김장권 북촌HRC 대표는 “한옥은 갑자기 생긴 새로운 주택이 아니다”면서 “한동안 버려두었던 것에 다시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전통 가옥에 대한 애정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인바·치과·호텔 등 다양…‘색다르네’ 요즘 서울 삼청동과 가회동 등지에 가면 한옥의 ‘트렌드’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평범한 가정집이었을 한옥들이 세련된 인테리어를 입고 속속 변신 중이기 때문이다.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은 의상실 찻집 레스토랑 한식당이다. 여기에 와인바 치과 호텔에 이르기까지 한옥에 둥지를 트는 추세다. 김영사와 로그인투어 등은 북촌 한옥에 사옥을 두고 있다. 한옥 레스토랑 중에서는 인사동의 민가다헌, 삼청동의 두가헌, 레시피, 카델루포 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대부분 한옥의 멋스러움을 그대로 살리면서 단정하고 세련된 서양식 인테리어를 가미,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특징이다. 민씨 일가의 찻집이라는 뜻의 민가다헌(閔家茶軒)의 경우 원래 명성황후의 친척인 민익두 대감이 살던 집이다. 지난 2001년 와인나라 이철형 대표가 인수, 현관을 내고 복도로 방과 마루를 길게 연결해 레스토랑으로 바꿨다. 지금은 외국인 접대 장소로 인기가 높다. 가회동에는 한옥 치과도 있다. 깔끔하게 개량한 한옥 방을 진료실로 꾸며 색다르면서도 편안한 공간으로 이름이 높다. 경주에선 한옥 특급호텔이 문을 열었다. 경주시 신평동의 라궁(羅宮)이다. 신라 궁궐을 뜻하는 라궁은 삼부토건이 지은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있다. 1만6525㎡(옛 5000평) 부지에 회랑으로 연결된 한옥 독채 16채가 들어서 있다. 라궁의 96㎡ 스위트형 한옥 숙박료는 46만 원선. 아침 식사, 저녁 식사, 신라밀레니엄파크 입장료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일반 주택보다 비용·기간 ‘2배 이상’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 집을 한옥으로 지으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하지만 한옥을 전문적으로 짓는 업체를 찾기가 어렵고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비용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는 낡은 한옥을 개·보수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선 한옥 시공 전문 업체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 한옥은 일반 건물과 달리 거의 모든 공정이 사람의 손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콘크리트로 건물을 지을 때는 철근을 엮어서 거푸집을 만들고 레미콘을 부으면 기초공사가 끝나지만 한옥은 그렇지 않다. 거푸집 대신 나무를 사용하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세밀한 과정을 이어나가야 한다. 한옥 시공 전문 업체에 대한 정보는 문화재청 홈페이지(www.ocp.go.kr)에서 구할 수 있다. 또 문화재청에 등록된 고건축 전문 설계사무소를 통해 소개받는 방법도 있다. 한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바로 ‘비용’. 한옥 100여 채의 설계와 시공을 담당해 온 김장권 북촌HRC 대표는 “한옥은 집의 설계 양식, 형태, 자재 등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므로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일반 주택을 짓는 것보다 비용이나 공사 기간이 2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만일 평균 수준의 자재와 설계로 짓는다면 3.3㎡당 1000만 원선을 웃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일반 주택의 건축비가 3.3㎡당 300만~40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높은 셈이다. 개·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3.3㎡당 700만 원선을 잡아야 한다. 한옥의 건축비용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인건비다. 모든 공정에 사람 손을 타는 데다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이다. 나무 등 자재비 비중도 높다. 기둥으로 쓰는 나무를 향이 좋은 금강송(춘향목)으로 사용한다면 비용이 또 달라질 수 있다. 서울시에서는 북촌가꾸기사업을 통해 등록된 한옥에 대해 개·보수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 범위는 종로구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일대 107만 6302m2의 한옥이다. 이 지역의 한옥 소유자 또는 한옥 신축 예정자가 등록 신청을 하고 비용 지원을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수선 등에 소요되는 비용 최대 30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융자금은 최대 2000만 원이다. 취재=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eesj@moneyro.com | |||
입력일시 : 2008년 7월 30일 12시 40분 40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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