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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만남Giuseppe Verdi/Don Carlos

by 진 란 2008. 10. 16.




★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만남 ★
Giuseppe Verdi/Don Carlos

      베르디(Giuseppe Verdi:1813-1901)가 작곡한 많은 오페라들 가운데서 가장 무겁고 장엄 하고 깊이 있는 작품이 바로 <돈 카를로Don Carlos:1867>다.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 러(Friedrich Schiller:1759-1805)의 원작 희곡을 오페라로 만든 이 작품은 실제로 스페 인 왕실에서 있었던 최대의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다. 스페인의 왕자 돈 카를로(Don Carlos, Prince of Asturias:1545-1568)는 프랑스의 공주 엘리자베타(Elisabetta of Valois:1545-1578)와 약혼한 사이였다. 그리고 (실제는 알 수 없으나) 오페라에서 두 젊은 남녀는 이미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자베타가 돈 카를로가 아닌 상처하고 혼자 있던 돈 카를로의 아버지 인 스페인 왕 필리페 2세(Philip II, King of Spain:1527-1598)에게 시집가야만 하는 상 황이 벌어지고 만다. 그 후 스페인 왕실에는 오직 슬픔과 의심과 질투와 갈등만이 계속 될 뿐이다. 이 작품에서는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타 그리고 필리페 2세 이외에도 돈 카를 로의 친구인 로드리고(Rodrigo) 후작과 에볼리 공녀(Princess of Eboli) 그리고 종교재 판관까지 가세하여 6인의 인물들의 상호간의 복잡한 관계가 그랜드 오페라(Grand Opera: Five Acts)식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주역 6인은 성악적으로도 자신의 성부에서 가장 뛰 어난 수준의 가수들이 동원되어야만 오페라의 중량감과 심오함을 살릴 수 있는 무척 장 엄한 작품이다. 오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장한 아리아와 이중창을 끊임없이 펼쳐보이 면서 인생의 의미와 운명의 존재감을 베르디와 쉴러라는 두 거장의 펜 끝을 통해서 중언 (重言) 또 부언(附言)하는 대작이다.

Elisabetta de Valois:The Third Wife of King Philip II of Spain, 1565 She was an eldest daughter of King Henry II of France and Catherine de Medici, mother of Infanta Isabella Clara Eugenia of Spain and Infanta Catalina Micaela of Spain, Museo del Prado(Madrid). by Sofonisba Anguissola(1532-1625:Italian Mannerist Painter) Infante Don Carlos, 1564-65 by Alonso Sanchez Coello(c.1531-1588:Spanish Painter)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졸지에 그 아버지와 결혼해야만 했던 비운의 공주 엘리자베타, 하 루아침에 연인을 어머니라 불러야 했던 왕자 돈 카를로. 시집 온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는 부인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왕 필리페 2세. 오페라 <돈 카를로>는 벗어나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옥죄어 오는 운명의 덫에 걸린 불행한 인물들의 실화를 그린 드라마다. 오페라 <돈 카를로>는 베르디의 오페라 27편 중 23번째 작품이다. 이른바 오페라 작곡가로서 대가의 명성을 구가했던 원숙기의 결정판이 었다. 오페라 <돈 카를로>는 쉴러의 희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희곡 형식의 원작을 오 페라 소재로 즐겨썼던 베르디는 쉴러의 작품으로서는 이전에 이미 <잔 다르크>, <군도>, <루이자 밀러>의 세 작품을 썼으니, 이로서 베르디가 작품화한 쉴러의 작품은 모두 네 편에 이른다. 이 작품은 프랑스가 주최했던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파리 오페 라 극장에 올리려는 목적으로 기획된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박람회 같은 국제적인 행사 를 기념하기 위해 오페라 작곡을 의뢰하고 공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바로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이집트 정부의 의뢰로 작곡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King Philip II in Armor, 1551 by Tiziano Vecellio(c.1485-1576:Italian High Renaissance Painter) Portrait of Philip II in Armour, 1557 by Anthonis Mor(c.1517-1577:Netherlandish Painter)

      당시 파리는 나폴레옹 이래 유럽 문화를 선도하고, 이른바 다국적 문화가 집중되는 멜팅 팟(Melting Pot)이었다. 사상에 있어서 자유로웠던 프랑스에서는 검열이 엄격하지 않았 던 탓에 1800년대 중후반의 프랑스 오페라는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보다 다양한 소재를 다룰 수가 있었다. 이 시절 프랑스 오페라는 프랑스어의 서정성을 살리고 합창을 부각시 키면서 소위 '그랜드' 오페라라는 한껏 화려하고 장대한 프랑스 특유의 오페라 형식을 이룰만큼 융성했다. 하지만 파리 오페라 극장은 지나치게 관료적인 탁상공론만 일삼는 무능한 극장에 불과했다. 프랑스 오페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비제의 <카르멘>, 마 스네의 <마농>,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등이 하나같이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올려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극장이 얼마나 음악가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는지 잘 알 수 있다. 베르디 역시 이 극장을 위해 <돈 카를로>를 작곡하면서 그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오페라 <돈 카를로>는 비록 연주 시간은 좀 긴 편이지만 사건의 긴박한 전개, 등장인물 의 뚜렷한 개성과 인물간의 입체적인 갈등 관계로 인해 관객들을 잠시도 편안히 내버려 두지 않고 비극으로 치닫는다는 점에서 무척 짜임새 있고 음악적으로도 수려한 수작임에 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일부 비평가들에 의해서는 음악적으로 통일된 양식이 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파리 오페라 극장의 말 많은 행정가들 때문이었다.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형식을 따라 5막으로 이 루어진 이 작품은 초연 직전,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 때 갑자기 앞부분을 15분 정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유인 즉, 파리 근교에 사는 관객들이 자정 좀 넘어 출발하는 막차를 놓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지그프 리트>나 <신들의 황혼>같이 대여섯 시간씩 하는 긴 오페라가 으례 그렇듯 공연 시작 시 간을 초저녁으로 당기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당시 파리 오페라 극장은 말 많고 돈 많은 단골 관객들이 오페라 때문에 느긋한 만찬을 포기하고 더둘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게 할 수는 없다면서 오페라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나섰다. 극장 관계자들은 한술 더 떠서 역사적인 비극을 노래하는 이 오페라에 생뚱맞게 발레 장면을 넣으라고 강요했으니 베르 디로서는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후 베르디는 또 다시 파리 오페라 극장 으로부터 오페라 작곡 의뢰를 받았지만, 파리 오페라 극장에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비꼬면서 단칼에 거절했다. 이렇게 극장과 작곡가가 불협화음을 일으켜서였는지 이 오페라의 초연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1867년 프랑스 초연 이후 100년이나 지난 뒤 1967년에야 다시 프랑스 무대에 올 려질 만큼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 초연 직후 이탈리아 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음악적으로 말끔히 정돈되면서 이 작품은 이탈리아 내에서는 예상외로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베르디는 억지로 넣어야만 했던 발레 장면 등 못 마땅하던 부분들을 삭제하고, 1막을 생략하며 전체 5막짜리 오페라를 4막짜리로 단축하 는 등 몇 번이나 수정을 했다. 그리고 삭제했던 막을 1886년 이탈리아 모데나 공연을 위 해 다시 복구해 넣어 5막으로 다듬어진 최종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Emperor Charles V at Muhlberg, 1548 by Tiziano Vecellio Prince Don Carlos of Austria, c.1558 by Alonso Sanchez Coello

      주인공 돈 카를로는 스페인의 국왕으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칼 5세(Holy Roman Emperor Charles V칼 대제:1500-1558)의 손자다. 돈 카를로의 아버지는 칼 대제의 아들 필리페 2세였고 당시 왕가에서는 손자 돈 카를로를 할아버지와 구별하여 '어린 카 를로(Infant Carlo)'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로 된 4막짜리 버전(소위 '밀라노 버전')에 서 생략된 1막은 돈 카를로가 약혼자로 정혼되었던 프랑스의 공주인 엘리자베타를 퐁텐 블로 숲에서 해후하는 장면으로 이 비극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순간을 노래하는 장면이다. 엘리자베타의 아름다운 자태에 돈 카를로는 첫눈에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왕자는 그녀의 마음을 떠 볼 요량으로 왕자의 신분을 감추고 자신은 왕자의 시동이라고 속였다. 엘리자베타가 자신의 신랑이 될 왕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조바심치자 그 녀에게 왕자의 초상화를 보여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그가 건넨 왕자의 초상 화를 본 엘리지베타는 방금 전에 시동이라 말했던 젊은이가 바로 자신의 걸혼 상대인 돈 카를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뛸 듯이 기뻐했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두 젊은이는 행복에 한껏 들떴다. 그러나 사랑의 기쁨도 잠시, 이내 퐁텐블로 숲에는 프랑스와 스페 인 간의 국혼이 성사됐다는 축포가 울린다. 그 국혼이란 다름 아닌 엘리자베타와 돈 카 를로의 아버지 필리페 2세와의 결혼이었다.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은 장기간에 걸친 전쟁 으로 피폐해져 두 나라 모두 하루 빨리 강화하고 싶어했고, 그 해결책으로 두 나라는 프랑스의 공주 엘리지베타와 돈 카를로가 아닌 아버지,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를 정략 적으로 결혼시킴으로서 전쟁을 끝내고자 했던 것이다.

Philip II(Felipe II) Holding a Rosary, 1565 This portrait was made while Philip(Felipe) II was married to his third wife, Elisabetta de Valois. Sofonisba Anguissola was one of the queen's ladies in waiting as well as her painting teacher./Prado Museum, Madrid, Spain by Sofonisba Anguisciola(c.1532-1625:Italian Renaissance Painter) Portrait of Elisabetta de Valois by Alonso Sanchez Coello

      사랑하는 여인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새어머니가 되어 매일 아버지 옆을 지켜야만 하는 모습을 돈 카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독선적이고 완고했던 아버지 밑에서 유난히 심약했던 그는 태산 같은 조부 칼 대제를 그리며 그의 무덤이 있는 산 쥐스트 사 원에 매일같이 틀어박혀 있었다. 돈 카를로의 귀에는 기도하는 수사들의 목소리조차 할 아버지의 음성인 듯 환청이 들렸다. 한편 왕은 왕비가 결코 자기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국모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왕비였지만, 그녀 의 영혼은 이미 증발해 버린 듯 엘리자베타는 언제나 걸어다니는 종이 인형 같았다. 졸지에 아들의 연적이 되어버린 왕은 아들에 대한 증오심이 점점 더 불어나기만 했다. 궁정 안에서는 어디 마음 한 구석 의지할 데 없었던 돈 카를로에게 유일한 위안은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 로드리고 후작이었다. 로드리고는 왕비를 향한 왕자의 사랑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신교도가 창궐하고 있는 북부 플랑드르 지방 순시를 마치고 스페인으 로 돌아오자마자 돈 카를로와 왕비 엘리자베타의 밀회를 주선했다. 내궁에서 단 둘이 만 난 엘리자베타는 사랑을 하소연하는 돈 카를로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진정으로 당신이 나를 차지하고 싶으면 당신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 묻은 손으로 나를 결혼식 제단으로 안내하라..." 왕자의 고뇌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로드리고 는 왕자에게 스페인을 떠나 플랑드르로 가서 함께 그곳을 다스리자고 제안했다. 로드리고는 그 길만이 감내해 낼 수 없는 숙명의 굴레에서 돈 카를로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다. 비록 드러내진 않았지만 로드리고에게는 장차 왕위를 계승할 왕자의 권위를 빌어 부상하고 있는 플랑드르 신교 세력에 대한 통치권을 장악하겠다는 개인적인 야심도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아들은 급기 야 부왕 앞에서 칼을 빼들고 반항하기에 이르렀다. 로드리고는 돈 카를로를 말려 왕을 향해 뺀 칼을 거두게 했고, 이 사건으로 아들도 못미더워하게 된 왕은 아들 대신 로드리 고를 신임하게 되었다.

Princess of Eboli(1540-1592) Ana de Mendoza y de la Cerda She is reputed to have lost her eye in a dual at the age of 14.

      한편 왕비의 시중을 들던 에볼리 공녀는 돈 카를로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사실 에볼리는 귀족의 딸이면서 당시 관습에 따라 입궁하여 최근 거리에서 왕비의 시중을 드는 수석 수 행 비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타와 결혼하기 전 필리페 2세는 영국 튜더 왕가의 메리 여왕과 혼인한 적이 있었다. 메리 여왕은 엘리자베스 왕의 배다른 언니로서 헨리 8세의 첫째 딸이엇다. 이렇게 스페인과 영국 간의 혼인이 성사됨으로써 스페인은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를 비롯해 네덜란드까지 아우르는 대강국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비록 결혼은 하였으나 필리페는 스페인, 메리는 영국을 다스려야 하는 관계 로 둘은 함께 살지 못했다. 여행을 싫어했던 필리페 2세는 스페인을 떠나지 않았고 곁에 둘 누군가가 필요했던 필리페 2세에게 암암리에 안주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에볼리 공녀였던 것이다. 왕자와 왕비가 한때 열렬한 연인 사이였다는 것, 왕자가 아직도 왕비 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볼리는 질투에 복받쳐 급기야 왕비를 모함하게 되었다. 왕비는 퐁텐블로 숲에서 왕자를 처음 만난 순간 왕자로부터 건네받은 초상화를 그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에볼리는 왕자의 초상화가 들어 있 는 왕비의 보석함을 슬쩍 왕의 침실에 놔둬 일부러 눈에 띄게 함으로써 왕의 질투심에 불을 질렀다. 정부와 아내가 모두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였으니 필리페 2세의 신세도 참 으로 기구한 것이었다.

Portrait of a Cardinal, c.1600 by El Greco(1541-1614:Greek-born Spanish Mannerist Painter)

      로드리고는 왕과 왕자, 왕자와 왕비, 왕자와 에볼리 사이에서 엘리자베타라는 한 사람의 존재에 의해 형성된 긴장 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해 낼 수 있는 무게중심을 이룬 인물이었 다. 그는 그런 극한 상태의 애증의 고차방정식에서 돈 카를로를 빼내 사태를 조용히 수 습하려 애썼다. 하지만 모든 인물의 수를 읽는 노회한 종교재판관의 등장은 결코 행복한 결말에 이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필리페 2세는 드디어 아들을 죽일 결심을 했다.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왕은 선대 칼 대제 때부터 섭정했던 종 교재판관과 독대했다. 당시는 종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종교재판으로 모든 시비 를 가리던 시대였다. 종교재판관은 오히려 아들 대신 로드리고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는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할 위인인 왕자는 죽여봐야 소용없고, 오히려 그에게 힘이 되어 신교도를 부추길 로드리고를 죽인다면 일거에 아들의 날개도 꺾고 신교도의 반란 세력까지도 발본색원할 수 있다는 계산까지 마쳤던 것이다. 그는 왕자와 로드리고를 함 께 플랑드르로 보낸다는 건 장차 필리페 2세 사후 가톨릭 제국을 고스란히 신교도의 손 에 넘겨주는 실책이라는 걸 간파하였던 것이다. 그 직후 로드리고는 이름 모를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제 친구까지 잃고 할아버지의 묘가 있는 사원에 틀어박혀 있는 돈 카를로에게 엘리자베타는 간곡하게 당부했다. 서둘러 왕을 떠나 플랑드르로 가서 북부를 다스리라고. 둘은 노래한다. "탄식과 슬픔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에서 우리 의 사랑을 다시 이루리..." 아버지 필리페 2세는 신교도 반란의 조짐을 눈치 채고 아들 을 잡기 위해 사원에 도착하였으나, 순간 칼 대제의 무덤에서 선대왕의 망령이 나타나 돈 카를로를 가로채 간다.

Portrait of Friedrich Schiller, 1808-09 by Gerhard von Kugelgen The Inquisition Tribunal(종교재판), 1812-19 by Francisco de Goya y Lucientes(1746-1828) Spanish Rococo Era/Romantic Painter and Printmaker

      이 작품은 유럽 북부의 <니벨룽의 반지>(바그너 작)에 필적하는 남부의 최고 수작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장중한가 하면 서정적이기도 하고, 무거운가 하면 경쾌하기도 한 변화 무쌍한 음악을 구사한 베르디의 공도 크지만 역사적 실화를 더없는 드라마로 만든 쉴러 의 재주가 이 작품을 그 어떤 역사물보다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쉴러는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의 손에서 사소한 설정 하나가 가감되면 역사 는 절묘하게도 드라마가 되었다. <돈 카를로>, <마리아 스튜아르다>, <투란도트>, <윌리 엄 텔> 등 쉴러의 손에서 태어난 수많은 희곡들이 오페라로 재탄생하였다. 이 작품은 로드리고라는 인물을 축으로 등장인물 간의 얽히고설킨 긴장 관계가 구성된다. 즉, 구교도와 신교도(국왕과 플랑드르), 종교와 정치(국왕과 종교재판관), 연인 부부 및 내연의 여인 간의 긴장 관계가 로드리고를 중심으로 하여 입체적으로 엮이는 걸 볼 수 있다. 그래서 로드리고라는 인물의 동선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긴 작품의 구조가 한눈 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쉴러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단, 로드리고만 빼놓고. 가공으로 설정해 넣은 로드리고는 잠시 등장했다가 종교재판관의 사주에 의해 죽어 사라 지게 되어 있다. 쉴러가 로드리고라는 인물 하나를 더한 덕분에 그는 역사적 사실을 왜 곡하지 않으면서도 그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배경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 게 된 것이다. 역사물을 표방하면서도 등장인물만 빌려온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흔해 빠 진 마당에 이 작품은 사실에 의거한 긴장 관계에 인간적인 긴장 관계까지도 함께 녹여 내어 더욱 역동적인 드라마로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이 작품은 스토리 못지않게 인물 간의 음악적인 조화 또한 무척 입체적이다. 고음역에는 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애절한 사랑(테너와 소프라노), 그 밑으로 필리페 2 세와 에볼리의 질투(베이스와 메조소프라노), 그리고 심연의 저음부에서는 권력을 향한 끝없는 암투를 벌인 종교재판관과 로드리고(베이스와 바리톤)의 긴장 관계가 문학적으로 나 음악적으로 더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작이다. 사실 로드리고 같은 중심인물을 바리톤에게 맡길 수 있었던 여건이 종전 테너 중심의 벨칸토 오페라와는 달리 바리톤을 축으로 플롯을 발전시켜 나가는 베르디의 선호와도 꼭 맞아 떨어졌다. 이 작품은 이렇게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 메조소프라노, 두 명의 베이스까지 모든 등 장인물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에 쉽게 무대에 올려질 수 있 는 작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이른바 당대의 쓰리 테너 모두 가 돈 카를로 역을 열연하여 걸작을 남겼다. 최근에는 그 대를 잇는다는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Roberto Alagna)와 롤란도 비야존(Rolando Villazon)까지 영상물을 내놓았다. 이른바 호화 캐스팅이라고 손꼽을 수 있는 영상물도 최소한 여섯 개 이상 된다는 사실만 으로도 이 작품이 얼마나 오페라 가수와 제작진들에게 도전할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숭 상받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최고의 테너들과 거물급 지휘자들이 참여한 영상물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기는 무척 어렵 지만, 적어도 어떤 테너가 주인공 돈 카를로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잘 묘사했는지를 본다 면 단연 호세 카레라스가 으뜸이다. 그의 목소리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목소리라 고 칭하기도 한다. 올라갈 듯, 못 올라갈 듯하면서 겨우겨우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마치 오르가즘을 향한 그 순간을 연상시킨다면서 열광하는 여성 팬들이 많다는 것이다. 카라얀이 지휘한 돈 카를로 영상물(비인 슈타츠오퍼, 1986년, 소니)에서 카레라스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그의 음색과 창법은 햄릿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섬 세하고 날카롭고 상처 받기 쉬운 여린 영혼을 지닌 돈 카를로 역에 꼭 들어맞는다. 그는 당시 유럽 최강의 스페인 제국 왕위를 계승할 왕자였지만 권력 하나 갖지 못한데다 가, 오히려 엘리자베타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의 눈 밖에 나 조금도 운신할 수 없는 가여 운 왕자였다. 호세 카레라스는 이런 왕자 역을 정말 잘 소회해 냈다. 로마 월드컵을 기념하여 처음으로 열린 쓰리 테너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상물에서, 느긋 한 파바로티의 옆에 서서 발꿈치를 들어가며 안간힘을 쓰는 카레라스의 힘겨운 모습은 막힌 속을 뚫어주는 듯 통쾌하게 발성하는 파바로티에 가려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던 것 이 사실이다. 하지만 평소 카레라스의 창법에 다소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도 <돈 카를로> 에서만은 가슴속 깊이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견뎌내야 하는 절절한 심정을 전달하기에 그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열창을 할 때면 일그러지는 그의 눈썹과 과장된 눈의 연기조차도 거대한 벽에 갇혀 있는 그의 울화를 표현하는 데 절묘한 역할을 해낸 듯하다. 최근에 러시아 출신 안나 네트렙코와 함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서 <라 트라비아타>를 불러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롤란도 비야존의 영상물(리카 르도 샤이,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에서 비야존은 도밍고와 같은 미성과 카레라스 와 같은 연기를 한 번에 선보여 현재까지 최고의 돈 카를로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데니스 디드로(Denis Diderot:1713-1784), [경제와 정치의 백과사전], 엘리자베타와 필리페 2세, 1751 Elisabetta(Isabelle) de Valois, 1568 by Antonio Mor Portrait of Phillip II, c.1585-1595 by Alonso Sanchez Coello

      열네 살에 시집 온 엘리자베타는 비록 과거에 돈 카를로를 사랑했지만 친정이었던 부르봉 왕가의 가르침에 따라 온화하고 후덕한 왕비의 역할을 무난히 해냈다. 디드로의 저서 [경제와 정치의 백과사전]을 보면 필리페 2세는 소젖을 짜고 엘리자베타 는 소에게 풀을 먹이는 그림이 있다. 그림에서까지 왕을 돕는 왕비의 모습이 화목하게 그려졌던 걸 보면 아마도 엘리자베타는 말 그대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부르봉 왕가 의 여인답게 왕비로서의 소임을 성심껏 해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젊은 나이에 요절했 지만 엘리자베타는 필리페 2세와의 사이에 두 명을 딸(Isabella Clara Eugenia and Catalina Micaela)을 낳았다. 자신과 결혼하려거든 아버지를 죽이고 그 피 묻은 손으로 결혼식의 제단으로 이끌라고 하던 결연한 여인.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아름다운 비탄 으로 장식되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만 남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림으로 남겨진 엘리자베타의 평온하고 완벽한 일상의 모습에서는 어딘지 모르 게 오히려 그녀의 깊은 인고의 상처가 느껴지는 듯하다. 글: 조윤선/<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2007) 中에서

The Infanta Isabel Clara Eugenie, 1579 First Daughter of King Felipe II of Spain and Elisabetta de Valois by Alonso Sanchez Coello The Enfante Isabella Clara Eugenia with the Dwarf, Magdalena Ruiz, 1585-88 by Alonso Sanchez Coello Portrait of Catalina Micaela, Duchess of Savoy Second Daughter of King Felipe II of Spain and Elisabetta de Valois by Alonso Sanchez Coello(c.1531-1588:Spanish Painter) Portrait of the Infanta Catalina Michaela of Austria, 1582-85 by Alonso Sanchez Coello Verdi/Opera 'Don Carlo' #1 Act I:'Fontainebleau, foresta immense...Io la vidi' (퐁텐블로, 광활하고 쓸쓸한 숲..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때) Don Carlos' Aria/Salvatore Licitra(Tenor) #2 Act III:'O don fatale, O don crudel' (오, 불운한 선물이여, 저주받은 미모) Eboli's Aria/Maria Callas(Soprano)/1959, Amsterdam Concert #3 Act III:'Ella giammai m'amo' (그녀는 결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King Philip II's Aria/Nicolai Ghiaurov(Bass) #4 Act IV:'Per me giunto' (나의 마지막 날) Rodrigo's Aria/Ettore Bastianini(Baritone) #5 Act V:'Tu, che le vanita conoscesti del mondo' (허무한 세상)The Monastery at St Yuste Elisabetta's Aria/Renata Tebaldi(Sopr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