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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푸르기만 하던 숲들이 조금씩 색감을 달리하더니,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의 능선들도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지난여름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햇볕도 이제는 제 그림자를 한층 더 길게 드리우고 가을 속으로 기울어듭니다. 가을은 모든 사물들을 제자리로 찾아들게 합니다. 혼신을 다해 생명력을 뿜어 울리던 숲들이 몸을 낮추고 포효 같던 바다의 아우성도 잠잠히 가라앉습니다. 유난히 분주히 오가던 새들마저 한껏 낮은 몸짓으로 날개를 퍼덕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참 넉넉하고 편안한 가을 정취들입니다. 치열한 젊음의 열기가 여름이라면, 가을은 이제 막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접어든 것과도 같습니다. 치열한 젊음에 무한한 생명력과 신비한 감동이 있다면, 성숙한 여인의 모습에서는 넉넉함과 안온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벗이 보듬고 껴안아주는 그 넉넉함에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따스함을 항상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매일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반복은 없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때 단 한 번뿐인, 늘 새로운 삶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도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1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부질없는 생각과 부질없는 일에 매달려 귀중한 삶을 낭비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합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말이죠. 이제는 앞으로만 질주하는 자동차가 아니라 속도를 좀 늦추고 주변의 사물들도 고즈넉이 바라보는, 더러는 쉬었다가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목덜미에 자꾸 감겨드는 실바람의 기척, 푸른 하늘에 한가롭게 떠 있는 새털구름, 조그마한 기척에도 연방 까르륵대는 풀솜 같은 아이들의 웃음, 단풍나무 가지 위에서 부지런히 수선대는 산새들…. 모두가 가슴 가득 빛으로 담기는 가을날입니다. 우리는 흔히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말합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 눈빛 속에서 모든 걸 읽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 사랑한다’는 ㅡ 수없이 내뱉는 그 말보다도 침묵으로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에서 더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 가을에는 그런 눈빛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간 살면서 내가 했던 그 수많은 말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공허하게 했는가를…. 침묵 속에 저만치 떠 있는 가을, 이 가을에는 날마다 그냥 스쳐가던 사물들에서도 그 어떤 생명력을 지닌 기운을 느낍니다. 모든 이들의 마음에 이 가을이 스며들어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인연들이 함께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단풍드는 그런 가을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단풍잎) 뭐예요? 그녀석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솜털 보송보송한 얼굴에 얹히는 바람결에 연방 까르륵대던 소연이는 그날따라 참 예뻤습니다. 가을이 바람이 솔솔 부는 보문호는 그날따라 주님의 품결처럼 포근하고 평안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대자연을 우리에게 주신 뜻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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