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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여성, 영화 그리고 인생 시네마 in 차이나

by 진 란 2008. 8. 14.

중국, 영국, 체코, 독일의 "여성감독들"

- 여성, 영화 그리고 인생 시네마 in 차이나

 2008/06/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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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여성, 영화 그리고 인생

4월의 서울은 유난히 화창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즐기러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이 내뿜는 열정 때문이다 축제의 현장에서 중국, 영국, 체코, 독일 여성감독들과 나눈 여성, 영화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Peng Xiaolian ●감독 특별전 펑 샤오리엔


FILMOGRAPHY


세 여자 이야기 1988 / 옛날옛적 상하이에서 1999 / 상하이 여인들 2002 / 상하이 이야기 2004 / 상하이 룸바 2006


상하이를 사랑하는 여자



올해 감독 특별전의 주인공은 중국 여성감독인 펑 샤오리엔이다. 장예모, 첸카이커 등과 함께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베이징’에 심취한 이들과 달리 ‘상하이’를 영화에 담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들은 돈이 있고, 나는 돈이 없어서 그랬다”라고 말을 시작한 그녀는 “사실 상하이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상하이만큼 내가 잘 알고,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없더라. 그래서 상하이를 무대로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며 ‘상하이 3부작’을 소개했다.

<상하이 여인들> <상하이 이야기> <상하이 룸바>에 이르는 ‘상하이 3부작’은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처음부터 3부작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고 <상하이 여인들>을 만들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어 이 작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사실적인 묘사로 유명한 그녀의 영화 속 상하이의 모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경제 분야에서는 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졌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 이념이 팽배한 상하이의 혼란과 갈등은 심화된다. “상하이가 많이 변했다. 미국보다 더 물질적인 것 같다”는 <상하이 이야기> 속 시오메이의 대사는 혹시 그녀의 진심이 아닐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발전한 지금의 상하이에도 그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곳을 무대로 영화를 할 계획은 없는 걸까? “차기작도 상하이 출신의 과학자 이야기지만 베이징을 무대로 한다. 약간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투자를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웃음) 제작비 걱정 없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기를 늘 바랄 뿐이다.”


Lisa Gornick ●<틱 톡 룰라바이> 리사 고닉


FILM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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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인은 절대 영화처럼 키스 안 해 1999 / 종교를 창시하는 12단계 2000 / 그래픽 러브스토리 2002 / 너를 사랑해? 2002


다른 이와 같은 소망을 가진 여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것에 있어서는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이성애자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뱃속에 아기를 품었다 출산하고, 기르고 싶은 욕망이 그들에게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것을 할 수 없어 슬픈 거다.”

<틱 톡 룰라바이>는 임신을 하기 위해 각자 섹스할 남자를 찾아 나선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다. 지난 7회 상영작인 <너를 사랑해?>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고민과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야기했던 리사 고닉은 이 영화에서 ‘아이 갖기’라는 한 주제에 포커스를 맞췄다. “여자라면 누구나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기대 혹은 책임감을 갖고 살아간다. 레즈비언 역시 그렇다.

하지만 성 정체성과 모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이런 애환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이 주제를 택했다.” 다소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틱 톡 룰라바이>는 유머가 넘쳐나고 경쾌하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주연을 맡은 그녀는 영화 속 만화까지 직접 그려 넣는 놀라운 재능을 선보인다. “만화 파트는 중요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내면에 있는 생각과 고민들을 끄집어내서 그린 것이기에 만화의 내용이 곧 이 영화의 부제라고 생각한다.”

실제 레즈비언인 그녀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주인공 커플이 아이를 입양해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우는 것으로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모가 되지 못하는 레즈비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런 고통과 애환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Helena Trestikova ●<마르첼라> 헬레나 트르제시티코바


FILM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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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터치 1981 / 리다 바로바의 달콤씁쓸한 기억 1997 / 세기의 전환에 서있는 여성 2001


26년간 슬픔을 좇은 여자


올해 상영된 다큐멘터리 중 최대 화제작인 <마르첼라>는 한 여성의 26년간 삶이 담긴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 마르첼라의 기구한 인생은 물론, 그토록 오랜 세월 그녀를 카메라에 담은 감독의 집념에 놀라게 된다. 헬레나 트르제시티코바는 1970년대부터 인생과 사회 문제를 다큐멘터리로 찍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르첼라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 여섯 쌍의 젊은 부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인데, 이들 중에 마르첼라 부부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본래 6년간 촬영할 계획이었다. 1987년 이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12년 후, 당시의 여섯 쌍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진 헬레나는 이들을 다시 찾는다.

이때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던 이가 바로 마르첼라였다. 그녀는 두 번의 이혼을 겪고 홀로 딸과 정신박약아 아들을 키우며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마르첼라>는 1980년대 제작한 TV 프로그램 중 그녀의 출연 부분과 12년 후 다시 찾아 2006년까지 촬영한 부분을 편집해 한 편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녀의 삶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당신이 나를 카메라로 찍고 나는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이 발달된 체코에서는 남녀 감독 비율이 1대 1을 이룰 정도로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여성감독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들 사이에서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은 ‘타임랩스 촬영기법’(Timelapse Shooting)으로, 일정 기간 동안 인물 혹은 어떤 현상의 변화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제 자신의 특징이 된 타임랩스 촬영기법을 여전히 고수하는 그녀는 앞으로도 마르첼라의 삶을 계속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다.


Ulrike Ottinger ●<서울 여성 행복> 울리케 오팅거


FILM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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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X 1977 / 프릭올란도 1981 / 12개의 의자 2003 / 프라터 2007


한국의 색에 매료된 여자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욕심을 부렸다. <텐 텐>이라는 10주년 기념 작품을 제작해 개막작으로 선보인 것. 국내외 유명 여성감독 여섯 명이 참여해 ‘서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단편영화를 완성했다.

여섯 감독 중 한 명인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 여성감독 울리케 오팅거는 이혜경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이 프로젝트에 관한 이메일을 받고 ‘이거 재미있겠는데’ 싶었다고 한다. “‘서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듣고 본격적인 구상을 위해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는데, 전통과 현대가 공존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잘 지어진 빌딩 사이로 보이는 전통 건물들이 참으로 멋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띈 것이 수많은 웨딩숍들이었다. 번화가에 쭉 들어선 웨딩숍들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결혼이 꽤 중요한 일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첫 인상을 바탕으로 그녀는 한국의 결혼 예식 절차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다.

한국의 전통 혼례를 따라 나선 그녀는 함을 싸고, 혼례 한복을 제작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한국의 미(美)에 매료됐다고 한다. “나의 영화에서 각 프레임은 곧 이미지다. 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래서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의 천과 의상, 각종 소품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또 촬영 기간 동안 예기치 않게 눈이 왔는데 하얀 눈과 빨간 천이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비주얼을 만들 수 있어 행복했다.” 이번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서울 여성 행복>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다음 작품에선 한국의 어떤 모습에 대해 이야기할지 기대된다.

무비위크=윤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