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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소식

<토지>의 박경리 선생님 가시는 길에

by 진 란 2008. 5. 14.
작년 5월 17일에 권정생 선생님을 보내고, 엊그제 또 다시 박경리 선생님을 떠나 보냈습니다.
『문학이, 그리고 작가가 이토록 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시금 절감합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인간과 사물에 대하여 따뜻한 시선이 남아 있다면 그건 순전히 선생님의 작품 덕분입니다.
학생들에게 직접 가르치지 않아도 교사 스스로 깊이 변화된다면 그게 바로 교육활동으로 녹아들겠지요.

원주 단구동에 있는 토지문학공원 : 토지 4, 5부를 완성한 곳.







박완서 선생님도 놀랄 만큼 쇠약해지셨습니다. → 딸 김영주→ 사위 김지하→ 큰아들→ 작은아들 차례



중1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음공해’의 작가 오정희씨의 추도문



“어머님을 통영에 모신다고 너무 섭섭히 생각하지 마시고, 어머니의 혼은 여전히 이곳 원주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흐느끼며 원주 시민들께 인사를 하는, 어머니와 꼭 닮은 외동딸 김영주씨.



원주 매지리에 있는 토지문화원, 그리고 거처하시던 집에서 노제





영정과 함께 집 주변을 함께 걷는 딸과 사위…



아, 통영!













선생님 가시는 길은 곳곳마다 작품 속 무대… 세병관→ 간창골→ 서문고개→ 충렬사





명정샘은 ‘김약국의 딸들’에 여러 번 등장하는 곳인데, 왜 운구 행렬이 이곳을 통과하지 않을까 의문스러웠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명정샘 위로는 시체나 상여가 지나가면 물이 흐려진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통영대교로 가는 길가에 선생님을 배웅하는 기특한 통영여중 학생들.



선생님 생전에 원하시던 곳, 미륵도 산양면 어느 농원 주인이 쾌히 기증한 1000평의 땅에 영원히 잠드셨다.







묘지에서 바라보니 코앞에 통영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극도의 고통과 고독이 엄습할 때에 사마천을 생각하며 힘을 얻어 다시 붓을 들곤 했다는,
그 사마천을 노래한 시비가 통영 시내에 세워져 있다.



명정샘 바로 옆에는 박경리문학관이 세워질 예정, 이미 공사를 시작한 듯하다. 장지로 가는 옆자리의
통영 시의원에게 들으니 문학관 건립에 약 2년을 계획하고 있단다.




마음은 아직도 부재감, 상실감, 슬픔에 목이 메입니다.
안 그래도 연가를 내려고 했는데, 마침 학교가 단기방학이라 이틀이나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외로워야 자유로운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육성 녹음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할머니 윤씨부인을 잃은 서희가 자꾸 자꾸 떠오릅니다..
선생께서 25년에 걸쳐 <토지>를 쓰셨다면, 저는 25년에 걸쳐 <토지>를 읽었습니다.
그리곤 인간과 역사를, 그리고 사랑과 슬픔과 분노를 배웠습니다.

  • 글쓴이: 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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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바다 울음

     

    -박경리


    바다 우는 소리를 들었는가
    어떤 사람은
    울음이 아니요
    샛바람 소리라 했지만
    나는 지금도 바다울음으로 기억한다

    수평선에 해 떨어지고
    으실으실 바람이 불면
    바다는 물을 치고
    울부짖었다







    문필가

     

    -박경리



    붓 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 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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