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죄는 건방진 죄"
옛날 조선이 망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민심가실 사심불가실(民心可失 士心不可失)' 즉, '민심은 잃을 수 있어도 선비들의 지지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지배이데올로기다.
이 말은 지배층의 '오만' 을 상징한다. 민심은 늘 어리석고 때문에 지배층(혹은 지도층)은 늘 그들을 계도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이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지식인들은 '어리석은 대중'으로, 지배층들은 '무지한 백성'으로 시민사회를 폄훼한다. 하지만 국가경영뿐 아니라 사회운동마저도 민심을 얕잡아보면 반드시 실패한다.
제정러시아의 '브 나르드 운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다. 당시 지식인들은 '가자 민중의 속으로, 민중이 입는 옷을 입고 민중이 먹는 것을 먹고 민중 속으로 가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농촌으로 들어가서 야학을 열고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고발한 사람들은 그들이 돕던 대중이었다. 대중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우월감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떨어진 옷을 입고 딱딱한 빵을 씹고 농기구를 들고 들판에 나섰지만, '어리석은 대중을 구원한다'는 그들의 사명감은 결국 대중을 얕잡아보고 계도의 대상으로 여긴데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고 결국 러시아는 지식인이 아닌 대중의 손에 의해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국가를 경영하건, 사회운동을 하건, 엘리트주의의 교만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항상 실패로 끝난다.
최근 벌어진 광우병 파동 역시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는 '섬김'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섬김의 바탕 위에 혹시 '교만'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지금 사태악화의 원인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들은 모두 과장된 것이고 네티즌들이 항의하는 것은 모두 좌파의 선동이며, 정부가 말하는 것은 모두가 진실이라는 상황인식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정부가 처음부터 '국민들의 걱정을 충분히 할 만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대신 '이런 걱정들과 지적을 겸허히 귀 기울여 듣고 가능한 한 최선의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면 민심이 이렇게 악화되거나, 오해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민심은 바로 그 점이 섭섭하고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총선 후 '한국사회에 살인죄보다 무서운 죄는 건방진 죄' 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대충 웃어넘길 말은 아닌 것 같다.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8.05.0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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