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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마지막 밥상> 노경태 감독

by 진 란 2008. 4. 20.

 

"내 영화는 쓰고, 맛없고, 불편하다"

2008.04.17 / 김도형 기자

 

노경태 감독은 문학 중심의 영화에서 회화 중심의 영화로 무게중심을 옮겨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첫 발걸음인 <마지막 밥상>은 이런 의도에 더해 사회에 대한 강한 비난과 불만을 담았다.

KAIST 출신 공학도, 증권맨을 거쳐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이력이 특이하다.


KAIST를 졸업했지만 수학, 물리처럼 눈에 안 보이는 학문이 갑갑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증권사 전산팀에 입사했다. 당시로선 연봉 1,2위를 다툴 정도로 좋은 조건의 회사여서 평생 그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 근데 IMF가 터졌고 회사 주식을 강매당했는데 IMF가 끝나면서 평가수익이 1억 원이 됐다. 고민 고민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갔다. 어머니께는 MBA 공부하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영화학교를 선택했다. 한 번의 클릭으로 인생이 바뀐 거지. 평소에도 PD나 감독이 가장 이상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청운대학교에서 영화연출을 가르치고 있다.

실험영화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2년 정도 극영화를 공부했는데, 쉽지 않았다. 만드는 족족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실험영화 수업을 듣게 됐다. 전혀 모르던 분야를 알게 되면서 빠졌다. 그래서 교수 추천으로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실험영화 수업을 계속 들었다. 졸업을 하고 귀국해서 선배가 알아봐준 상업영화 조감독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영화가 중단됐다. 그 참에 1년 전에 써둔 <마지막 밥상>을 만들어보자 싶었다.

<마지막 밥상>은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됐다.
내가 노력한 건 아니고, E.D. 디스트리뷰션이 로테르담에서 영화를 보고 상영을 추진했다. 처음에는 몇 개월을 끌고, 또 그 후에도 개봉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참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개봉한 걸 보니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참 꼼꼼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준비했구나 싶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작품이 좋아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수한 열정이 <마지막 밥상>을 개봉하게 했다. 그 진지하고 순수한 마음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제목이 독특하다. 저녁이나 만찬도 가능했는데 왜 굳이 밥상인가?
밥상이라는 어감을 다들 싫어했다. 근데 이건 초고 제목 그대로다. 그 뒤로 고친 적이 없다. 밥상이라는 단어는 낯설지만 촌스러운 느낌이 좋았다. 영화 속 캐릭터들과도 맞는 단어다.

쉽게 이해되는 영화는 아니다.
핵심 내용은 가족의 단절에 관한 것이다. 두 가족의 단절된 삶을 통해 가족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소통의 부재, 미디어의 폐해를 다뤘다. 현대사회의 우울한 정서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마지막 만찬을 하는 가족이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 지구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무겁게 담고 싶었다.

현대사회에 대한 비난은 평소 감독의 시선인가?
그렇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친 두 번째 작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썩게 만든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썩은 우리는 결국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사회가 계속 굴러가지만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느리게 만든 이유는 세상이 잘 안 돌아가고 있는데 모든 게 맞다는 식으로 우리의 삶에까지 관여하는 망가진 사회를 거리를 두고 보게 하고 싶어서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느리게 한참을 보여주고 싶어서 처음에는 2시간 30분짜리로 만들었다.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지.(웃음) 영화도 고통스러운데 물리적인 고통까지 주지는 말자 싶어서 짧게 줄였다.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며 맞서 싸우는 심정?
제대로 안 굴러가는데 제대로 굴러가는 척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미디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다. 뉴스나 인터넷 등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아이디어나 아이템은 어떻게 얻나?
캐릭터를 만들고 줄거리를 만들고 하는 영화가 아니어서 이야기 구조 자체가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미지만 따로 모았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쇼킹한 상황, 감동적인 상황 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얘기를 늘 메모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카펫 터는 여자도 우리 동네 여자가 모델이다. 자기는 청소한답시고 카펫을 터는데 그 먼지가 다른 사람들 집에 다 들어간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써먹었다. 다양한 상황들을 놓고 그 안에 캐릭터를 설정한 다음 이것들을 퍼즐처럼 끼워 맞췄다.

영화 곳곳에 회화적인 비주얼이 많이 눈에 띈다.
보통의 영화가 문학에서 오는 것이 많은데, 내 영화는 회화에 뿌리를 둔 거라 그저 이미지를 따라가는 게 주요 관심사다. 김재청 미술감독의 역할이 컸다. 회화적이라는 칭찬은 모두 미술감독에게 돌리고 싶다. 나는 그저 초현실적으로 해달라거나 사람이 공간에서 떨어진 듯한 느낌을 달라는 식으로 추상적인 주문만 했는데, 미술감독이 밤낮으로 작업해 구체화시켰다. 독일에서 현대미술 전공하고 와서 이런 실험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어 했는데, 잘 된 것 같다. 돈은 고작 200만 원밖에 못 줬는데.(웃음)

정지된 카메라로 아무 감정 없이 이미지를 담는다.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이, 유리창 밖의 다른 세상 구경하듯이 카메라에 힘 빼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세상인 거다. 싸우는 장면이나 우는 장면, 컷을 붙여서 이미지를 만들면 안 된다. 뭐든지 깊게 오래 바라봐야 깨어나는 거다. 처음에는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 그저 지켜볼 뿐이지만 오랜 시간 지켜보다 보면 환상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실제 주변 현실과 연결시키게 된다. 보통의 상업영화는 맛있는 사탕이다. 보면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눈물이 나는 등 마음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내 영화는 마음이 차가워지고 머리가 뜨거워진다. 살아가는 주변 얘기를 통해 영화가 더 이상 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카메라 움직이는 걸 싫어하나?
싫지는 않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제대로 봐야 한다면 정지된 카메라여야 한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다면 정지된 카메라로 지켜보는 것이 좋다. 카메라가 이동하고 컷이 나눠지면 아름다운 순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정지화면과 함께 롱테이크(길게 찍는 기법)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도 롱테이크를 좋아하지만 가만히 오래 보면 그 안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대사도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대사가 적으면 의미 전달이 잘 안 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을 텐데.
이미지를 강조하려고 의식적으로 대사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원래 대사가 없는 영화다. 시나리오도 ‘할머니가 장독을 닦는다’가 한 신일 정도로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제출하면 어디든 다 떨어질 수밖에.(웃음) 이렇게 써놓고 로케이션하면서 이미지를 구체화시켰다. 말로 표현하기보다 분위기에 맞는 장소나 공간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대중과 호흡하는 것이 중요한 예술이다. 이런 실험영화를 연출한다는 건 그런 점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지 않나?
그림이나 사진과 같은 것들은 꼭 팔려고 만들지는 않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예술로 생각한다면 극장에 관객이 몇 명 올지 계산해서 만들지 않는다. 상업영화라면 그 반대로 철저히 계산하고 예측해야겠지. 근데 난 아직 내 의도대로 찍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 걸었을 때 관객이 없다면 속이 많이 상한다.(웃음) 그래서 두 번째 작품은 실험성의 수위를 조금 낮추려고 시도하다 확실한 색깔을 잃은 것 같다. 내 덫에 내가 걸린 셈이다.

일그러지는 사운드의 음향 효과는 인상적이었다.
실험을 하고 싶었다. 대사를 많이 안 해도 어떤 상황인지 안다면 굳이 사운드가 필요 없겠다 싶어 대사보다 실험적인 사운드를 넣어봤다.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는 장면도 내용보다 그 상황이나 환자의 심리를 표현하는 사운드를 넣고 싶었다.

할머니의 섹스나 뚱뚱한 여자의 나체 등 낯설고 파격적인 비주얼이 등장한다.
파격적인가?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다지 파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은 할아버지와 이혼을 시도하는 할머니의 설정에 관해서도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런 상황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한테 너무 시달린 할머니가 남편이 죽은 뒤에 법적으로도 완전히 그 존재를 지우고 싶은 심정이랄까. 그리고 할머니의 섹스 장면은 성욕에 관한 것이다. 할머니도 성욕이 있다. 동화 속 왕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 왕자를 실생활에서 보고 채소 팔아서 모은 돈으로 그 남자를 사는 거다. 일종의 꿈을 이루는 그런 장면이다.

완성도에는 만족하나?
돈이 없어서 못한 것들을 뺀다면 대체로 생각대로 만들어졌다. 편집에서 크게 손볼 데가 없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다.

초저예산이라 작업이 힘들었겠다.
자랑은 아닌데, 정말 최악이었다. 근데 난 한국에서 장편을 처음 찍어봐서 그런 것도 몰랐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작업했지만, 다시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은 제작비가 2배로 뛰었다.(웃음)

상업영화 제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부산에서 상 받고 2편의 상업영화 제의가 있었는데, 시나리오가 나랑 맞지 않았다. 근데 상업영화에 관한 내 생각이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른 것 같다. 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밀양> 이런 영화를 상업영화라고 했더니 다들 웃더라.(웃음)


촬영이 끝났다는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영환가?
제목은 <허수아비들의 땅>이다. 촬영 끝내고 편집이 잘 안 돼서 고민하고 있는데 3년 전에 찍었던 <마지막 밥상>이 개봉해 인터뷰를 하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후반작업비가 없어서 진행이 중단된 상태라 기분이 좀 씁쓸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공격적인 시각은 여전한가.
그렇다. 세상아 엿 먹어라 컨셉이다. 굉장히 우울하고 안티적이다. 맛있고 달콤하고 소화 잘 되는 것들과 철저하게 반대로 만들었다.(웃음) 쓰디 쓴 한약도 좀 먹어봐야지. 근데 이번 작품은 잘 모르겠다. 지인들 반응은 별로 좋지 않다.(웃음)

실험영화는 한국에서 여전히 낯설다. 실험영화에도 갈래가 다양한데 특별히 당신이 추종하거나 지향하는 방향이 있나.
솔직히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직도 배우고 있는 상태다. 해석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추종하는 감독들이 있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이나 로이 앤더슨, 페드로 코스타, 유진 그린 같은 감독의 영화를 끊임없이 찾아본다. 눈물 날 정도로 이 사람들 영화가 좋다. 그리고 무작정 이런 감독들을 닮아가고 싶다. 나도 그저 시네마키드일 뿐이다. 말도 안 되게 과한 욕심이긴 한데, 프랑스에는 브레송이 있고, 러시아에는 타르코프스키가 있고, 그리스에는 앙겔로풀로스가 있고, 포르투갈엔 페드로 코스타가 있으니, 나는 그들과 같은 영역에서 한국을 대표해보자 하는 생각. 브레송의 영화는 5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나를 뜨겁게 만든다. 그런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다.

영화 외에 관심 있는 분야는?
개념예술이나 컨셉아트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개념예술가들하고 비평을 많이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과가 나눠지지 않아서 같이 수업을 듣곤 했는데, 비평 수업을 할 때는 각자 자신의 영역을 기준으로 얘기를 해 흥미로웠다. 나 외에 모든 사람들이 정지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그들에게서 영향도 많이 받았다. 나는 2000 프레임 정도로 내 생각을 전하지만, 그들은 단 한 장으로 그들의 생각을 표현한다.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예술을 이해하게 됐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훗날 정지영상으로 예술을 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해 그런지 <마지막 밥상>에 대해서는 해외에서 다양한 평가들이 나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평가는 버라이어티의 평이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건 프랑스에 상주하고 있는 한겨레 기자님의 블로그 내용. 근데 그보다 예전에 영화가 막 나온 3년 전 국내에서 <마지막 밥상>에 대한 비평이 딱 한 번 실린 적이 있었는데, FILM2.0 김영진 평론가의 글이었다. 사실 문학 중심의 영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런 영화가 낯설어서 제대로 된 얘기 하기 힘든데, 김영진 평론가는 그 또래 다른 분들과 달리 영화를 제대로 평해주셨다.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술 한잔 대접해드리고 싶다.(웃음)

 

 

프로필
1972년생 | 카이스트 졸업 | 콜롬비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예술학교 졸업 | <마지막 밥상>(2006) 각본, 연출


사진 백지연
장소협찬 홍대 갤러리 카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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