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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앨튼 존에게 ‘소나무’를 팔다

by 진 란 2008. 4. 20.

앨튼 존에게 ‘소나무’를 팔다

 

» 소나무 연작. 배병우는 조선 산수화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배병우(58)는 세계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주제는 소나무, 바위, 오름, 바다지만, ‘소나무 사진가’로 가장 이름이 높다.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작품을 사면서 화제에 올랐고, 지금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미술품 경매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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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연작.
소나무 척 보면 출신지역을 알아

그가 찍은 소나무는 수묵화 같다. 소나무 핀 솔숲은 안개에 머문다. 그리고 햇빛은 안개를 찌르고 들어오고, 배경은 뿌옇게 사라진다. 곧이어 프레임은 흑백의 세계로 전화된다. 이제 안개와 빛은 화선지가 됐고, 소나무는 주인공이 됐다. 배병우의 사진을 보는 사람은 소나무의 곡선과 질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 만난 배병우는 갑자기 겸재 정선의 화첩을 꺼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보세요. 100그루 가운데 99그루가 소나무에요.”

예부터 한국에서 소나무는 관솔불로 어둠을 밝힌 서민 생활의 도구이자, 절개를 중시하는 사대부의 예술적 소재였다. 심지어 조정은 소나무에 벼슬을 내리기도 하지 않았나. 배병우 또한 소나무를 한국적 특성을 잘 살리는 오브제로 생각한다. 그가 얻은 세계적 명성도 이에 힘입은 바 크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군집한 소나무는 프레임의 상하를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대나무의 수직 프레임과도 같지만, 아래위를 구불구불 잇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건 흡사 몰려든 군중 같다. 비틀거리는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을 부축하는 사람, 싸우러 가는 사람, 늙은 어미를 돌보는 사람. 그러함에도 소나무의 곡선은 한없이 강인해 보인다. 아마도 곡선이 직선보다 강하다면 불규칙한 소나무의 곡선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소나무는 그 나라, 그 지역 사람을 닮았죠.”

배병우는 이렇게 말을 받았다. 한국 사람과 유럽 사람이 다르듯 한국 소나무와 유럽 소나무가 다르다. 뭍사람과 바닷사람이 다르듯 금강송과 해송이 다르다. 바닷가 소나무는 까맣고 거칠고 뒤틀렸다. 내륙의 소나무는 곧고 밝다. 같은 내륙의 소나무라도 해의 위치·토양·지형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다.

» 바다 연작. 그의 고향 여수 바닷가에서부터 그는 바다와 친근했다.
» 바다 연작. 그의 고향 여수 바닷가에서부터 그는 바다와 친근했다.
» 오름 연작.
그는 1980년대부터 전국의 솔숲을 샅샅이 뒤졌고, 84년부터 소나무를 작업 소재로 선택했다. 그래서 그는 안면도 송림과 울진 소강리, 경주 남산의 소나무 한 그루만 봐도 한눈에 출신지를 구분할 수 있다. 가로세로 비율인 1대2인 린호프 카메라를 들고 그가 최종적으로 매달린 건 경주 남산의 소나무다. 그는 “남산의 소나무는 왕의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도록 도와주고, 더 이상 왕이 세상 일에 관심 갖지 않도록 막아준다”고 말한다.

배병우는 스페인 문화재국의 의뢰로 계절마다 한 번씩 2주 가량 안달루시아 알람브라 궁전에서 머물며 작업한다. 내년 봄 쯤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스페인이 낯선 동양 사진가에게 알람브라를 내준 이유는 정원 한가운데 소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그가 속삭였다. “알람브라 뒤편 언덕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솔숲이 나와요”

조선 산수화에서 세계적 보편성 획득

» 배병우(58)
그가 찍은 모노톤의 소나무들을 바라봤다. 알람브라의 소나무는 직선으로 뻗었다. 유럽의 귀족이 나오는 흑백영화에 나오는 숲속 같았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를 둘러싼 안개를 보며 신라의 왕이 생각났다면, 알람브라의 소나무들은 서양의 영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달랐지만 같았다. 배병우는 “알람브라 작업이 끝나면 2년째 작업하는 창덕궁 소나무와 함께 ‘궁전의 소나무’를 주제로 기획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평론가 김승곤은 배병우의 사진은 “조선 산수화를 재현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배병우는 조선 산수화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적 산수화에서 착상한 배병우의 사진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긴 어렵진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보편의 경지에 올랐는지 모른다. 크리스티, 소더비에서 이미 고가에 팔리지 않는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작품사진 배병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