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튼 존에게 ‘소나무’를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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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찍은 소나무는 수묵화 같다. 소나무 핀 솔숲은 안개에 머문다. 그리고 햇빛은 안개를 찌르고 들어오고, 배경은 뿌옇게 사라진다. 곧이어 프레임은 흑백의 세계로 전화된다. 이제 안개와 빛은 화선지가 됐고, 소나무는 주인공이 됐다. 배병우의 사진을 보는 사람은 소나무의 곡선과 질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 만난 배병우는 갑자기 겸재 정선의 화첩을 꺼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보세요. 100그루 가운데 99그루가 소나무에요.”
예부터 한국에서 소나무는 관솔불로 어둠을 밝힌 서민 생활의 도구이자, 절개를 중시하는 사대부의 예술적 소재였다. 심지어 조정은 소나무에 벼슬을 내리기도 하지 않았나. 배병우 또한 소나무를 한국적 특성을 잘 살리는 오브제로 생각한다. 그가 얻은 세계적 명성도 이에 힘입은 바 크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군집한 소나무는 프레임의 상하를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대나무의 수직 프레임과도 같지만, 아래위를 구불구불 잇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건 흡사 몰려든 군중 같다. 비틀거리는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을 부축하는 사람, 싸우러 가는 사람, 늙은 어미를 돌보는 사람. 그러함에도 소나무의 곡선은 한없이 강인해 보인다. 아마도 곡선이 직선보다 강하다면 불규칙한 소나무의 곡선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소나무는 그 나라, 그 지역 사람을 닮았죠.”
배병우는 이렇게 말을 받았다. 한국 사람과 유럽 사람이 다르듯 한국 소나무와 유럽 소나무가 다르다. 뭍사람과 바닷사람이 다르듯 금강송과 해송이 다르다. 바닷가 소나무는 까맣고 거칠고 뒤틀렸다. 내륙의 소나무는 곧고 밝다. 같은 내륙의 소나무라도 해의 위치·토양·지형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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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는 스페인 문화재국의 의뢰로 계절마다 한 번씩 2주 가량 안달루시아 알람브라 궁전에서 머물며 작업한다. 내년 봄 쯤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스페인이 낯선 동양 사진가에게 알람브라를 내준 이유는 정원 한가운데 소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그가 속삭였다. “알람브라 뒤편 언덕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솔숲이 나와요”
조선 산수화에서 세계적 보편성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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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론가 김승곤은 배병우의 사진은 “조선 산수화를 재현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배병우는 조선 산수화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적 산수화에서 착상한 배병우의 사진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긴 어렵진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보편의 경지에 올랐는지 모른다. 크리스티, 소더비에서 이미 고가에 팔리지 않는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작품사진 배병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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