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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風景

검은등뻐꾸기-홀딱벗고

by 진 란 2008. 2. 18.
우체통에 둥지를 튼 새와 보낸 한 달

초여름 가리왕산 골짜기는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입니다

 

▲ 우체통에 둥지를 튼 새집. 6개의 알을 낳았다. ⓒ 강기희


밤새 내리던 비가 잠시 주춤합니다. 이미 일주일 가까이 장맛비가 긋다 붓다 했던 터라 가리왕산 골짜기의 계곡물 소리가 제법 큽니다. 물소리가 멀리까지 퍼지는 요즘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골짜기는 산새 소리와 매미 소리로 시끌합니다.

아저씨, 우체통에 새 집 있어요!

막바지에 오른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이번 비로 인해 단 맛을 잃었습니다. 검게 익은 오디를 따 먹는 일은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떠올리게 합니다. 빨갛게 익은 수리딸기도 제 맛을 잃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집 입구에 놓아 둔 고목나무 등걸에 새 둥지가 새로이 들어섰습니다. 알은 네 개나 됩니다. 그곳에 회양목 한 그루를 심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부화가 되고 날아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집 근처에 새 둥지가 많습니다. 처마 밑으로 들락거리는 새들은 저마다 집 한 채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 가리왕산 자락엔 홀로 나는 새는 없습니다. 다들 짝을 지어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르느라 바쁩니다.

새들이 집 짓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며칠이면 근사하고도 단단한 집 한 채를 짓습니다. 집짓기의 명수들입니다. 그 많은 지푸라기들을 언제 물어왔는지 새들의 정성이 대단합니다.

지난 번엔 집 마당에 있는 우체통에 새가 집을 지었습니다. 처음엔 매일 배달되어 오는 우편물로 인해 위험하다 싶어 집짓기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새는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고 며칠 사이 번듯한 둥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새는 우체통에 여섯 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우편 배달부가 일주일 꼴로 바뀌는 탓에 우편물은 따로 두라고 말하는 게 당시의 임무였습니다. 책 같은 우편물은 새들에겐 흉기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우체부 아저씨가 탄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 맨발로라도 뛰어나가야 했습니다.

새가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새를 품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재빨리 둥지를 벗어났습니다. 알을 품는 새 때문에 마당을 오가는 일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 인간이나 새나 서로 긴장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체통을 새집으로 만든 새가 어떤 종류의 새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새는 작은 소리로 '삐삐 삐삐' 하고 우는 소리를 냈습니다. 인터넷으로 새 울음소리를 비교해 보니 밭종다리와 멋장이새 우는 소리와 비슷했습니다.

 
▲ 세상 소식 전해 주는 우체통에 새 둥지가 들어섰다. ⓒ 강기희
 
▲ 다들 "엄니, 배 고파요!" 하는데 늦둥이는 아직 고개도 가누지 못하고 있다. ⓒ 강기희


어느 사람은 딱새라고 했지만 확인하니 우는 소리가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시골살이에서 새 이름 알면서 사는 이들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제법 멋진 소리를 내며 우는 새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 새를 '홀딱벗고' 새라고 합니다.

쉴 새 없이 먹이를 나르는 어미새의 지극한 모성

우는 소리가 '홀딱벗고'라는 소리와 같다는 겁니다. 확인 결과 그렇게 우는 새의 이름은 붉은등 뻐꾸기였습니다. 뻐꾸기를 홀딱벗고 새라고 하니 그 표현이 재미있지 않는지요. 그저 들리는 대로 이름 붙이며 사는 게 시골살이의 맛입니다.

그러하니 우체통에 둥지를 튼 새의 이름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흔 다섯인 어머니도 모르다는 새를 이제 마흔 넘은 아들이 어찌 알겠는지요. 더구나 단 한 번도 가까이에서 살펴 볼 기회가 없으니 어떤 새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가슴팍에 붉은 털이 있다는 것밖에 확인하지 못했으니까요. 새알을 발견한 지 보름쯤 지났을까요. 알이 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새들이 하나둘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솜털이 보일 듯 말 듯한 새들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미새와 아비새가 바빠진 것은 알이 부화를 한 이후부터였습니다. 둘은 연신 벌레를 물어와 새끼 새들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하루종일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카메라로 확인하니 새는 다섯마리였습니다. 알 하나가 부화를 못했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다시 확인하니 여섯마리 모두 입을 쩍 벌리면서 먹이를 기다렸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간이 벌레라도 가지고 온 줄 알았나 봅니다. 그런 순간엔 미안함만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새들의 몸에 털이 수북하게 나기 시작했습니다. 새의 모습을 갖추자 어미새는 더욱 바빠졌습니다. 그런 속내도 모르고 우체통 근처에서 풀을 뽑고 있자면 새는 둥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삐삐 삐삐' 하고 저들끼리 경계의 신호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럴 때면 새들 때문에 풀 뽑기도 멈춰야 했습니다. 둥지 안에 있는 새끼 새들의 먹성도 대단했습니다. 먹이를 많이 받아 먹은 녀석은 작은 둥지를 제 것인 양 다 차지했습니다. 둥지가 비좁다고 생각할 정도로 덩치가 커진 녀석들은 먹이를 서로 먹기 위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먹이를 물고 온 어미새. ⓒ 강기희
 
▲ 둥지에 들어가기 전의 새. 경계심이 많다. ⓒ 강기희
 
▲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녀석들이 여드레만에 이처럼 성장했다. 여섯 마리 모두 무사하다. ⓒ 강기희


생존 경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생존 경쟁에서 탈락한 새는 결국 죽음에 이르는데, 우체통의 둥지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둥지를 확인하니 세 마리만 남고 다들 둥지를 떠나고 없었습니다.

살아남지 못한 새는 한 마리, 다들 무사히 살아줬으면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죽어 있었습니다. 카메라로 확인하면 보이다 안 보이다 하던 녀석이었나 봅니다. 두 마리 중에서 한 녀석은 이미 둥지 밖으로 나와 우체통을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기줄에 앉아 있던 어미새는 새끼 새를 향해 무슨 신호인가를 끊임없이 보냈습니다.

아마도 사람이 접근하니 조심하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도 아니면 어미새가 자신에게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스스로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둥지를 벗어났던 새 한 마리가 우체통을 벗어나더니 십여미터 정도 날았습니다.

아직 둥지를 벗어나기 이르다 싶어 붙잡으려 하는데 개가 먼저 발견하고는 앞발로 턱 잡았습니다.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얼른 다가가 개를 쫓으며 새를 조심스럽게 잡아 둥지에 넣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남아 있던 녀석이 위험을 느꼈던지 또 둥지를 벗어나 밖으로 날았습니다. 이번 녀석은 제법 멀리 날았지만 역시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어 보였습니다. 녀석을 찾아 다시 둥지에 넣고 저녁 무렵이 될 때까지 우체통 근처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 슬그머니 다가가 둥지를 확인했더니 두 마리의 새마저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습니다. 처음 새알을 발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새들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자연 속에서 발견한 생명의 힘이라는 게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함께 떠나지 못하고 남은 새입니다. 모두가 떠난 빈 둥지엔 죽은 새 한마리만 덩그러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미새는 한동안 죽은 새를 깨우기라도 하듯 전기줄에 앉아 계속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숨이 끊어진 새는 더 이상 깨어나지 못했고 우체통을 떠난 새들도 둥지를 찾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들려오는 '삐삐 삐삐' 소리를 들을 때면 녀석들이 우체통에서 자란 새들일까, 하는 생각에 눅눅한 마음이 따듯하게 채워집니다.

이번에 발견한 고목나무 등걸의 새 둥지가 더욱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등걸 안에 둥지를 튼 새가 이번엔 네 개의 알을 다 부화시켜 모두들 힘차게 하늘을 날기를 소망해 봅니다.

▲ 쉴 새 없이 먹이를 나르는 어미새. ⓒ 강기희

▲ 한 녀석은 날개를 펴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사인은 의문. ⓒ 강기희

 

 

 

딱새 


손세실리아


 

숲해설가와 함께 방태산 미산계곡에 들었다

낱낱의 사연과 생애가 사람살이와 다를 바 없어

신기하기도 뭉클하기도 하다 하지만 발을 떼는 족족

소소한 것들까지 시시콜콜 설명하려드는 통에

골짜기 깊어질수록 감동이 반감되고 만다 게다가

비조불통 기막힌 풍광 앞에서는 소음과 진배없다

상호간 불편한 기색 감추기에 급급할 즈음

새 한 마리 물푸레나무 허공을 뒤흔들어댄다

검은등뻐꾸기라며 강의를 재개하려하자

누군가 볼멘소리로 막아선다

딴 건 몰러두 갸는 지가 좀 알어유 홀딱새여유

소싯적부텀 그렇게 불렀슈 찬찬히 함 들어봐유

홀딱벗꼬 홀딱벗꼬... 어뗘유 내 말이 맞쥬?

다소 남세스럽지만 영락없다

육담이려니 흘려들었는데 아니다

기막힌 화두다


생의 겹겹 누더기 훌훌 벗어던지고

가뿐해지라는


 

 

- 손세실리아: 전북 정읍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기차를 놓치다』가 있다.
- 발표지면: 『시에』2007년 가을호

- 재수록지면: 『시향』 2007년 겨울호

 

 

 

 

 

 

“홀딱벗고, 홀딱벗고.”

울어예던 검은등 뻐꾸기도 울음소리 멈추고 산으로 숨어버렸다.

 

생뚱맞게 들리는 울음소리가 있으니 그건 ‘홀딱벗고, 홀딱벗고’ 우는 검은등 뻐꾸기이다.

모습은 좀체 보여주지 않고 울음소리만 들린다. 어느 나무 언저리에 있는가 싶어

고개 들어 찾아보면 이내 저만치 떨어진 나무에서 울음소리만 보내온다.

 

그 울음 소리가 독특하여 이 녀석이 울면 금세 화젯거리가 된다.

 ‘홀딱벗고’ 운다고 하여 ‘홀딱새’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새다.

또 보리를 여물어 벨 때 운다하여 ‘보리새’라는 이름을 덤으로 갖고 있는

이 새 이름은 ‘검은등 뻐꾸기.’ 분명 뻐꾸기인데 여느 뻐꾸기의 등이 회색빛인데 비해

이 녀석은 검은색을 띄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여름새로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우리나라 산천을 찾아와 번식을 한다.

가을이 되면 새 터전을 찾아 멀리 떠나는 철새란다.

 

“홀딱벗고 라고 울지 않냐?”

그럼 꼭 아니라고 손사래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홀딱벗고는 무슨. 빡빡깎고 빡빡깎고 그리 울구만.”
“빡빡깎고라고? 아니야. 작작먹어 작작먹어 그리 울잖아.”

 

듣는 귀에 따라 조금 달리 들리는 녀석의 지저귐.

신록의  오월에는 녀석 울음소리 원없이 들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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